타산지석(他山之石)

캐나다에 온 후 이전까지 별 관심 없었던 아이스하키를 완전히 새롭게 접하게 됐다. 처음에는 왜 맨날 TV에서 하키 중계를 하는지 이해가 안됐지만 선수와 규칙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캐나다의 하키는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문화적, 국가적 코드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총리가 아니라 하키황제 웨인 그레츠키 라는 사실에 동의하는 하키팬이 되면서 빠르고 강렬한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3피리어드 60분 동안 쉬지않고 종횡무진 링크를 누비는 선수들의 파이팅과 손바닥보다 작은 퍽을 스틱으로 기가 막히게 컨트롤하며 들어갈 틈도 잘 안보이는 골대에 집어넣는 모습은 짜릿함 그 자체 였다. 현란한 퍽 핸들링, 자로 잰 듯한 패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골, 육중한 바디체크 등은 하키만이 줄 수 있는 숨막히는 매력이었다.

또한 프로스포츠 중 유일하게 허용되는 '싸움'은 정해진 룰에 따라 스틱과 장갑을 벗고 남자대 남자로 '맞짱'을 뜬 후 넘어지면 중지하고 퇴장 당하는 것으로 폭력에 대한 거부감은 들었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구경거리 였다.

그리고 밴쿠버 커낙스는 한국에서의 프로야구 연고팀보다 더욱 애착이 가는 나의 팀으로 자리잡아 경기결과와 선수들의 뉴스에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됐다.

그런데 3월8일 벌어진 밴쿠버 커낙스와 콜로라도 아발란치와의 경기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은 커낙스 팀과 하키에 대한 애정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팀의 간판 스타 중 하나로 몸싸움에 밀리지 않고 의리있는 모습을 보여왔던 토드 버투지가 3주전 커낙스 주장을 쓰러뜨린 스티브 모어의 안면을 딱딱한 장갑을 낀 주먹으로 뒤에서 강타했고, 모어는 정신을 잃고 빙판에 얼굴부터 쓰러졌다.

모어는 10분 동안 움직임 없이 쓰러져 있었으며 목뼈와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 사건은 NHL 뿐만 아니라 캐나다 전체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으며, 무기한 출전정지를 당한 가해자 버투지는 10일(수) 눈물을 흘리며 모어와 하키팬들에게 사죄를 해야했다.

버투지는 밴쿠버의 슈퍼스타로 지역 언론의 찬사와 팬들의 흠모를 받아왔지만 그의 폭행에 대한 언론과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캐나다의 정신이 녹아있는 빙판에서 이러한 불상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그를 일벌백계 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순간적으로 자제 못하고 저지른 행동이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큰 과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

<김정기 기자 eddie@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