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 광부와 간호사가 외화 벌이(foreign currency earning)를 위해 독일에 파견된 지 60주년 되는 해다. 미국 외교 전문 매체 ‘디플로맷’은 당시를 교훈 삼아(learn lessons from those days) 현재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공정한 대우를 해줄(treat foreign workers fairly) 것을 권유했다.

 

“1963년 한독 협정에 따라 한국 광부들이 임시 이주 노동자(temporary labor migrant)로 처음 독일에 발을 내디뎠다(set foot in Germany). 비슷한 무렵, 간호사들도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갔다. 1970년대 중반까지 약 2만명이 건너간 것으로 추산된다.

 

광부·간호사 독일 파견은 훗날 한국의 경제 발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be closely tied to Korea’s later economic rise). ‘한강의 기적’을 일군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외자 유치에 의존했다(depend on attracting foreign capital). 박 대통령은 이를 위해 1964년 차관을 얻을 목적으로(in order to obtain loans) 독일을 방문했는데, 차관 상환 담보로 광부·간호사들의 임금을 제시할(offer their wages as collateral for the repayment of the loans) 수밖에 없었다.

 

해외 인력 송출은 세 가지 기능을 해줬다. 공급받는 쪽 국가들(countries at the receiving end)과의 관계 증진, 파견 근로자들의 고국 송금, 국내 노동시장 압박 완화라는 일석삼조(一石三鳥·killing three birds with one stone) 효과가 있었다.

 

해외에서의 국내 송금(remittance from abroad)은 외화 유입과 함께 가처분 소득(disposable income)을 증대시켜 국내총생산(GDP)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 훗날 중동 지역에 진출한 근로자 100만명 이상의 ‘오일 머니’도 경제 성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make significant contributions to Korea’s economic growth).

 

한국은 이제 선진 산업국가(developed industrialized country)가 됐고, 경제적 번영 유지를 위해(in a bid to maintain its prosperity) 외국 출신 이주 노동자들에게 의존하는(rely on migrant workers) 입장이 됐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거주·근로 조건에 대한 논란(controversy over their poor living and working conditions)이 불거지고 있다. 언어폭력(verbal violence)과 신체적 학대(physical abuse) 사례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 광부·간호사들이 머나먼 독일까지 가서(go all the way to Germany) 고생했던 건 고국의 가족을 부양하며(support their families back home) 한번 잘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다. 그때 경험을 되돌아볼(look back on the experiences) 필요가 있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그런 소망을 이루기 위해 낯선 땅에서 온갖 굴욕과 설움을 견디고(endure all sorts of humiliation and sorrow) 있는 것이다. 60년 전 한국 광부·간호사들 대하듯 해줘야 한다.”

 

[영문 참고자료 사이트]

 

https://thediplomat.com/2023/05/the-hidden-history-of-korean-labor-migrants-in-germ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