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책·컴퓨터 보고, 주말엔 밀린 예능프로 시청
선진국선 시력보호정책 시행… 시력 재활·눈 휴식 운동 등서울의 중·고등학생이 4명 중 3명꼴로 안경을 써야 할 정도로 시력이 나쁜 것으로 조사됐다.

4일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이 공개한 서울시교육청의 '2010년도 학교별 건강검진 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고교 1학년생 중 75.9%가 안경을 써야 할 시력교정대상(시력 0.6 이하)이었다. 또 전체 고1 학생의 절반 이상(51.2%)은 이미 안경을 쓰고 있었다.

▲ 4일 오후 서울 경복고 2학년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 이 학급 학생 절반 정도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중학교 1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같은 조사에서도 전체(10만9551명)의 74.1%인 8만1236명이 안경을 쓰고 있거나 써야 하는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수치는 선진국의 시력교정대상 학생 비율의 5배가 넘는다. 의학계에서는 미국 등 선진국의 아동 근시 비율을 10~15%로 추정하고 있다.

학교 성적이 중하위권인 중학교 1학년 최모(13·서울 강동구)군은 하루 2~3시간씩 게임을 한다. 오후 3시쯤 학교가 끝나면 집이나 PC방에서 게임을 하는데, 늘 얼굴을 모니터에 가까이 붙이고 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1.2~1.5였던 시력은 현재 0.5까지 떨어졌다.

같은 학교의 이모(13)양은 성적이 상위권이지만 시력이 왼쪽은 0.2, 오른쪽은 0.3이다. 안구건조증 때문에 종종 인공눈물도 넣어야 한다. 특목고를 목표로 공부하는 이양은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학원에 간 뒤, 밤에는 별도로 과외까지 받는다. 학원 가기 전 간식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눈앞에 있는 책만 응시하고 있다. 이양은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주말엔 밀린 TV 예능프로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디지털 세대'지만 우리 아이들은 외국에 비해 시력이 크게 나쁘다. 생활 방식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3년 전 자녀 교육을 위해 가족들을 캐나다에 보낸 김모(47)씨는 지난해 아들이 다니는 캐나다 학교를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교실에 앉아 있던 학생 30여명 중 안경을 쓴 학생은 아들을 포함해 단 2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매년 시력이 0.2씩 떨어지던 아들(15)도 재작년부터 시력이 유지되고 있다"며 "학습량이 적고 컴퓨터 게임 말고도 '스포츠 클럽' 등 놀거리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학생의 눈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국가적 차원에서 각종 시력 보호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2001년 '국가 근시 예방 프로그램'을 만든 싱가포르는 국가 차원에서 '비전 브레이크(Vision Break)'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30분 동안 TV 시청,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독서 등을 한 후에는 5분간 눈을 쉬게 해 주자는 내용이다.

스웨덴의 경우 4세 미만 어린이는 아동건강센터에서 연 5회 이상 안구 검사를 받고, 시력이 나쁜 학생들은 재활훈련을 통해 시력이 더 나빠지지 않는 방법을 배운다. 핀란드에서는 1세 미만 어린이는 연 4회 안과 검진을 받게 하고, 이후부터는 연 1회 검진을 받도록 한다.

박영아 의원은 "시력 등 건강관리에는 평소의 생활습관이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며 "이 문제를 가정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학교와 교육 당국이 책임지고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