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BC 정부는 현 시류에 걸맞지 않은 젠더 용어(outdated gendered terms)를 포함한 138개의 조항을 삭제·개정했다고 밝혔다.

 

존 호건 BC 수상은 “시대에 뒤처진 젠더 용어를 없애려 몇 년간 노력을 기울였고, 지난해 발견한 600개의 구시대적 젠더 용어에 더해 이번 해 741건의 사례를 추가로 찾았다”며 “약 800개의 법 조항을 검토하며 잠재적으로 ‘이분법적인 젠더’ 구분 내용이 포함된 단어나 구절을 수정하도록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시대 변화 따라 진화하는 젠더 용어

 

‘이분법적 젠더(gender binary)’란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두 가지 젠더만 존재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점차 시대가 변화하면서 이 관념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데,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역시 ‘성별'과 ‘젠더'라는 단어에 차별을 두는 것이 그 예로 둘 수 있다.

 

본래 ‘성별'은 생식기의 해부학적 구조와 2차 성징의 형태에 초점을 둔 생물학적 분류이다. 반면, ‘젠더'는 사회·문화적인 분류로, 사회적 성의 특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개념이다. 현재 젠더는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뉘는데, 바이너리(여성과 남성), 논 바이너리(젠더퀴어, 젠더플루이드 등), 언젠더(에이젠더, 젠더리스)가 있다.

 

기존 BC주 대다수의 법 조항은 ‘그 혹은 그녀(he or she 또는 him or her)’와 같은 이분법적 젠더 용어만을 포함했다. 하지만, 해당 어절에는 논 바이너리와 언젠더(ungender) 시민들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는 해당 항목들을 넓은 젠더 스펙트럼을 포괄하는 용어로 바꾸었다.

 

예를 들어, ‘그’ 혹은 ‘그녀’를 ‘고용인(the employee)’으로, ‘두 성별(both sexes)’은 ‘어떠한 성별 혹은 젠더의 사람(persons of any sex or gender)’으로 교체됐다. 또한 BC 정부는 ‘어머니와 아버지(father and mother)’ 역시 이분법적인 젠더 구분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판단해 해당 항목을 ‘부모(the parent)’로 바꿨고, 비슷한 맥락에서 여성을 암시하는 ‘이모(aunt)’도 ‘부모의 형제자매(parent’s sibling)’로 대체했다.

 


사진출처=BC Government Flickr

젠더 용어의 반란··· UBC 학생들의 생각은?

 

이러한 변화에 대한 UBC 학생들의 시각은 현시대의 젠더만큼이나 다양했다. UBC 인문학부에 재학 중인 C모 학생은 “자신이 어떤 대명사로 불리고 싶은지는 개인의 자유이긴 하지만,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법 조항들을 개정할 만큼의 긴급한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머니’나 ‘아버지’라는 단어는 존경과 영예를 표현하기 위해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그러한 단어들을 없애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UBC 과학부의 K모 학생은 “이 변화가 사회적, 경제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경우 제재를 할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로서는 두드러지는 큰 악영향이 없기도 하고 BC 정부의 행동을 통해 이분법적 젠더 구분으로 사회에서 배척되었던 사람들은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됐다”면서도 “이모,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단어들은 구시대적 젠더 단어는 아닌 것 같은데 굳이 바꿔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변화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 학생도 있었다. UBC 인문학부에 재학 중인 M모 학생은 “사회가 드디어 다양한 젠더에 대해 의식하게 되어 기쁘다" 며 “한 사람에게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니라, 두 명의 아버지 혹은 두 명의 어머니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 다양성을 이제 존중해야 할 시대가 찾아왔다”고 반겼다.

 

이어서 그는 “모든 사람이 바이너리 젠더로 구성된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은 아니고,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온 이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포용적인 자세로 법의 언어들을 바꾸는 것은 좋은 선택"이라며 “정부의 역할은 개인의 젠더 다양성을 존중하고 사회에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젠더에 대한 ‘전통적’생각이 변화하는 단계

 

현재 UBC에 재학 중인 국제학생들의 시각도 들어보았다. UBC 인문학부에 재학 중인 T모 학생은 BC주의 이러한 선택에 대해 “내가 자라온 동양 사회에서는 트랜스젠더 등 바이너리 젠더 외 다른 젠더를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정부 주도적인 변화와 사람들의 인식변화는 큰 관련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며 “따라서 두 가지 모두 사회의 변화를 위해 중요한 관문이므로, 정부가 변화하면 사람들도 서서히 전통적인 사상에서 탈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UBC 인문학부의 N모 학생은 “‘어머니와 아버지'와 같은 말이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런 변화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바이너리 부모들을 두고도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이번 법 개정의 목표는 모든 젠더의 사람들이 BC주에 소속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BC주의 구시대적 젠더 용어를 법에서 지우겠다는 선택이, 주민들의 세금을 현명하게 사용해야 할 정부 기관으로서 내린 올바른 결정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사회인만큼, BC 정부 입장에서는 그들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으로 보인다.

 

UBC K.I.S.S 11.5기 하늬바람 학생 기자단

박유빈 인턴기자  habatara2@gmail.com

사진출처=Getty Images Ba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