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전 부부재산계약 취소할 수 없다

“혼인전 체결한 부부재산계약은 당사자의 자유의사에 의한 것으로 계약의 내용은 자유이며 일방 당사자가 취소할 수 없다”는 캐나다 연방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3월 26일 연방 대법원 합의부(주심 마이클 바스타라체)는 부부재산에 관한 합의(prenuptial agreement)의 변경에 대한 항소를 기각(6대 3)하고 사건을 원심으로 되돌려 보냈다.

법원이 공개한 사건 개요는 이렇다. BC주 변호사 로버트 하트숀씨는 부인과 결혼 전 ‘신혼 집으로 마련한 주택에서 나오는 이득의 3%만을 부인의 재산으로 한다’는 내용의 부부재산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남편 로버트씨는 160만달러 상당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부인은 빚더미에 올라 앉은 상태로 소유재산은 전무했다.

이들 부부가 이혼한 후 부인은 ‘계약을 맺은 것은 사실이지만 재산 분할비율이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고 하급심인 BC고등법원과 BC항소법원은 ‘남편 재산의 20%에 불과한 28만 달러만을 부인의 몫으로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원고인 부인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대법원은 “혼인전 부부가 그 재산에 관하여 따로 약정을 한 경우에는 그에 따라야 하고, 일방당사자가 이를 취소하거나 내용을 변경하지 못한다”고 판시, 판결을 뒤집었다. 법원은 또, “만일 부부의 일방 당사자가 합의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계약에 서명하지 말았어야 하며 서명한 이상 그 계약내용은 유효한 것”이며 “결혼후 자녀양육을 원인으로 취업기회를 잃어 입은 금전적 손실의 보상 부문에 대해서도 이혼한 남편의 부양보조금 증액으로 충분하고 이를 재산분할로 해결할 것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는 법원은 부부간의 합의가 강압이나 부당한 압력에 의한 것으로 진정한 의사표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관여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사적 자치의 원리인 계약자유의 원칙’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지역신문 밴쿠버선은 4월 12일자 사설을 통해 법원의 결정을 ‘자유의 승리’라고 표현하며 법원의 불간섭의지를 높이 샀다. 또 첫 이혼이후 전재산의 절반이상을 배우자에게 빼앗긴(?) 경력이 있는 로버트 하트숀씨의 입장에서도 같은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부부재산계약을 체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논지를 폈다. 연방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부부 재산분할의 판단기준에 대한 법원의 재량에 제동을 건 것으로 BC주 뿐만 아니라 캐나다 전역에 미칠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