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까치 설날은…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고운 댕기는 내가 드리고/ 새로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우리언니 저고리 노랑저고리/우리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우리들의 절받기 좋아하세요/

윤극영이 1942년에 발표한 동요 '설날'의 가사다. 창작당시보다 60여년의 세월이 더 흘렀으니 가사내용은 요즘세태와는 달라도 한참 다르지만 눈은 새것을 찾아도 귀는 옛 것을 찾는지 오늘따라 무던히 정겹다.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인 ‘설’은 우리 말, 우리 글은 물론 우리의 이름까지 빼앗겼던 일제시대에 양력설이 기준이 되면서부터 수난의 이름이 됐다. 신정(新正, 양력 1월 1일)과 구정(舊正)으로 나뉘면서 ‘설’은 시대에 뒤떨어진 농촌풍속 정도로 평가절하되기도 했고 이중과세(二重過歲)의 주범으로 몰리기도 했으며 ‘민속의 날’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름으로 바뀌기도 했다.

하지만 민초들은 공휴일이 아니어도, 오가는 길이 아무리 밀리고 힘들어도 꾸준히 '음력 설'에 세배 드리고 성묘하는 풍속을 이어갔고 마침내 정부도 ‘설날’이라는 이름으로 연 3일의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참모습을 되찾았다.

‘설’은 기개를 굽히지 않는 꿋꿋한 우리의 정신 같은 것이었고 한국 근현대사의 격변기에 생겨난 문화충돌의 현장에서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이자 문화계승의 지킴이였다는 평가다.

최근 고구려 역사와 독도의 영토주권을 둘러싼 한.중.일의 역사전쟁관련 소식을 염두에 두면 우리가 지키고 계승해야 할 전통은 민족주의(nationalism)의 차원이 아니라 정체성(identity)과 직결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밴쿠버 동포사회에서의 ‘설’은 팍팍한 이민의 삶 속에서 ‘뭐 그런 것 까지’하면서 애써 외면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참에 설과 한가위 같은 명절을 한복 입는 날로 정하는 것은 어떨까?

관공서는 물론 한인업소마다 태극기를 내걸 듯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은 우리의 생활자체가 곧 우리문화의 ‘알림이’이고 ‘지킴이’가 될 터이다. 이 땅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날이 어디 오월 마지막 토요일 ‘한국의 날’ 하루만 이겠는가?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