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그리 정신

60년대에서 80년대 까지 한국에서 자주 쓰이던 말 중 '헝그리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헝그리 정신이란 말은 아일랜드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전 영국 학술원장인 찰스 핸디의 저서 ‘헝그리 정신(Hungry Spirit)'의 제목으로 쓰일 만큼 서구사회에서도 익숙한 말이다.

우리의 머리 속에는 주로 가난을 이기고 성공하기 위해 배고픈 배를 움켜쥐면서도 열심히 운동을 했던 권투선수나 육상 선수들이 떠오른다. 어쨌든 '헝그리 정신'의 기본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목표를 위해 최선의 노력과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캐나다에서 취업을 하려는 일부 한인 구직자들이다.

사실 캐나다 이민 초기의 한인들은 대부분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했다. 가지고 온 돈도 없고 비빌 언덕도 없던 선배 이민자들은 지렁이채집, 건물청소 등의 궂은 일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며, 조금씩 캐나다 사회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한국이 경제적으로 풍요해져서 그런지 캐나다의 한인들 중 '헝그리 정신'을 가진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최근 실업률이 8퍼센트가 넘어선 캐나다에서 영어가 완전하지 않은 한인 1.5세 젊은이들과 신규 이민자들의 취업문제가 큰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자신감 넘치게 구직에 나섰지만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한 이들은 "취업이 이렇게 어려울 지는 몰랐다"라며 당황을 넘어서 비명에 가까운 호소를 하고 있다. 사실 캐나다 대학을 졸업한 한인 1.5세, 2세가 실무 경험없이 들어갈 수 있는 기업체나, 이민자가 한국에서와 비슷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캐나다 직장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

하기야 지금은 캐나다 사회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은 한 교민도 처음 지원한 캐나다 회사 홈 디포에서 파트타임 케쉬어로 일하기 위해 인터뷰만 5번 봤다고 하니 이곳에서의 취업이 쉽지 않은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이곳은 일할 곳이 없고 마땅한 직업도 없다며 미국이나 한국으로 눈을 돌리거나 캐나다에 온 것을 후회한다.

그러나 과연 일을 할 마음이 간절함에도 그렇게도 일할 곳이 없을까? 현실을 가만히 살펴보면 구직이 어려운 것은 사회구조와 경제적인 영향도 있지만 본인의 마음가짐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밑바닥부터 시작해도 열심을 다하는 자세, 자신이 누려왔던 대우와 사회적 지위는 새로운 땅에서 과감히 던져버릴 수 있는 용기. 이러한 정신이 있는 한인들은 어떻게든 직업을 찾아 일을 시작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거쳐 올라가고 있다. 특히 돈을 벌지 않으면 본인이나 가족의 생활이 위태로운 사람들 중에는 그야말로 '투잡', '쓰리잡' 씩 동분서주 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 "당신은 신문사에서 편안하게 일하니까 쉽게 말할 수 있지, 직업 없는 사람의 심정과 어려움을 알기나 해?"하고 묻는다면 사실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최저 임금도 안되지만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운타운에서 전단지를 돌리거나 불법을 감수하면서 접시를 닦는 유학생, 한국의 가족에게는 비밀로 하며 닭공장이나 공사판에 나가 육체노동을 감수하는 이민자들이 우리 주위에 있음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과외비로 시간당 20~30 달러씩 받은 습관 때문에 밑바닥 일부터 해야 하는 곳은 꺼리는 대졸자, 가지고 온 돈이 있으니 괜찮은 직업이 나타날 때까지 천천히 관망하겠다는 이민자들이 있다면 '헝그리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김정기 기자 eddie@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