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없는 교실' 만드는 상원中
급훈 '세종대왕님 울고 계신다' - "예전엔 '씨×'이 사투리인 줄… 性的 의미 알고 너무 놀라"
TV·인터넷에 중독된 아이들, 방과 후엔 예체능 수업받고 아침엔 어제 쓴 욕 적고 반성

 

중고생 4명의 윗옷 주머니에 소형 녹음기를 넣어 언어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학생 1명이 4시간 동안 최대 385번 욕설을 한 것으로 조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이처럼 평범한 학생들에게도 욕설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일부 학교에선 '욕 안 쓰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 노원구 상원중학교 학생들은 매일 아침 10분간 '자기 관리 플래너(계획서)'를 쓴다. 학습 계획도 있지만 자신이 한 말을 돌아보는 코너도 있다. 한 2학년 학생은 계획서에 '어제 내가 한 부정적인 말' 칸에 '짜증 나. 너 정말 그것밖에 안 돼?'라고 쓰고, 그 아래 '별생각 없이 쓴 말. 이제 긍정적인 말만 써야지'라고 적었다. 계획서는 1주일에 한 번씩 담임교사가 검사한다.

▲ "내 언어생활 기록해요"… 지난 9월 30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원중학교 1학년 3반 학생들이 자기 언어생활을 기록한‘자기 관리 플래너’를 들어보이고 있다. 상원중은 학생들에게 매일 아침 10분씩 전날 쓴‘부정적인 말’과‘긍정적인 말’을 플래너에 기록하게 해 언어 습관을 돌아보게 한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각 교실에는 기존의 '급훈'과 함께 학생들이 직접 만든 '우리말 급훈'이 걸려 있다. '세종대왕님이 울고 계신다'(3학년 2반), '자나깨나 말조심!'(2학년 6반), '욕하는 순간 제명이 됐어요!'(2학년 1반) 등이다.

이 학교는 올 초부터 '욕 안 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교사들은 '이대로 방치하면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 욕을 줄이기 위한 전방위적인 노력을 시작했다.

우선 올 3월 초 욕 사용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교사·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교사들의 93.5%, 학생의 73.0%가 '욕 사용이 심각하다(자주 사용한다)'고 했다.

교사들은 또 아이들이 욕을 많이 쓰는 이유를 과도한 스트레스와 TV, 인터넷 등 자극적인 매체의 영향으로 보고, 문화 활동으로 정서를 가꿔주기 위해 방과 후 특기적성 활동을 강화했다. 기타·플루트·농구·사물놀이 등 특기적성 수업을 22개 반 설치하고, 교과목 수업을 듣는 학생이 특기적성 수업을 들으면 수강료를 절반(4만원)으로 줄여주는 등 참여를 유도했다. 그 결과 현재 특기적성 수업을 듣는 학생이 전체(1036명)의 4분의 1(26%)에 이른다.

'욕의 의미'를 정확히 알려주는 수업도 진행했다. 욕의 뜻을 풀이한 프린트물을 나눠주고, 교사가 단어 하나하나 의미를 설명해준 것이다. 많은 학생이 이 수업이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했다. 김시영(2년·14)양은 "그전에는 '씨발'이 방언인 줄 알았어요. 근데 수업 듣고 성(性)적인 의미라는 걸 알고는 너무 놀랐어요. 이제는 쓸 때 '아, 그게 그 뜻이었지'라고 생각하고 잘 안 쓰게 돼요"라고 했다.

학교는 이 밖에도 텅 비어 있던 복도 벽에 고흐·르누아르·밀레 등의 명화를 걸고, 운동장 주변에 꽃도 심었다. 지난달에는 TV 아나운서를 초청해 올바른 국어 사용에 대한 강연을 열고 '한글 사랑 UCC' 대회도 했다. 사회 수업에선 '욕설을 하는 심리'에 대해 토론을 하고, 정보 시간엔 '잘못된 통신 언어'와 '네티켓'에 대해 알아봤다.

이런 노력 끝에 교사와 학생들은 "욕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 학교 양인숙 국어 교사가 욕을 한 학생을 지도하면서 "우리 학교가 무슨 학교지?"하고 물었다. 학생은 고개를 푹 숙이며 "욕 안 하는 학교요…"라고 대답했다. 학생들 스스로도 학급 인터넷 카페 등에서 욕설 사용을 금지하고 너무 많이 쓰면 투표를 통해 자격정지나 퇴출을 결정하고 있다. 상원중 천영숙 교감은 "초등학교 때부터 서서히 길들여온 언어 습관을 단시간 내에 바꾸기는 정말 어렵다"며 "'느리지만 꾸준히'라는 것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학생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말'을 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