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 디자인 저널리스트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받아쓰기 빵점을 받아왔다. 다른 부모들이 유치원부터 자녀들에게 한글, 영어 공부를 시키는 게 유별나다 싶어 내 아들은 놀리기만 했는데 비상이 걸렸다. 저녁마다 아들은 긴장 속에서 무섭게 돌변한 엄마의 '공부 고문'에 시달린다. 집안에 긴장감이 너무 팽배해진 게 불편해 살살 좀 하라고 하면, "당신이 한번 가르쳐 보지"라는 말에 꼬리를 내리고 만다.

한 번은 내가 한글을 가르칠 일이 있었는데, 나도 그만 울화통이 터져서 소리를 치고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그 뒤로 나는 아이 교육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원래 나는 자식이 생기면 학원 같은 거 안 보내겠다는 주의였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고 지금은 체념한 채 아들 교육에 대한 높은(?) 이상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나마 내가 우리 애한테 기여한 것이 있다면, 세계의 웬만한 걸작 애니메이션을 다 보여줬다는 거다. 그것 때문에 아들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때면, 아내로부터 애니메이션 너무 많이 보여줘서 집중 못하는 거라고 잔소리 한 번 더 듣는다.

여덟 살이 된 우리 아들은 공부는 물론 육체적인 면, 도덕적인 면, 습득한 경험과 정보, 그리고 영양섭취와 청결상태에서 8살 적 나보다 적어도 5배는 훌륭한 거 같다. 그렇다고 내 아들이 부러운 건 아니다. 비록 '마징가'도 옆집에서 봐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만날 놀기만 해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던 내 어린 시절이 더 좋았다. 오늘도 아들이 아내한테 공부 고문을 당하고 있을 때, 나는 숨죽이며 내가 21세기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하늘 보고 감사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