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싸는데는 도사입니다"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박종기 총영사가 “시원섭섭하다”며 한 말이다. 해외 공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일반 외교관들이 대표적으로 겪고 있는 일상적 고충의 하나가 ‘정들자 이별’이고 ‘가족과의 이산(離散)’이라지만 30여년의 공직 생활을 정리해야 하는 그로서는 이삿짐 사는 일에 이골이 날 법도 하다.

해방둥이(1945년생)로 내년에 정년을 맞는 박총영사는 “재임기간 동안 밴쿠버 한인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따로 스크랩했더니 앨범 1권 불량이 훨씬 넘을 정도여서 때로는 이렇게 많은 일을 했구나 여길 때도 있다”며 웃었다. 실제, 그는 2002년 부임이후 ‘마당발’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동포사회 구석구석을 누볐다.

한국과 캐나다의 수교 40주년이자 6.25 종전 50주년이었던 지난해 개최된 각종 기념사업과 문화행사를 무난히 치러냈고 BC주가 매년 5월 마지막주 토요일을 ‘한국의 날’로 지정할 수 있도록 노력 했다. 이를 계기로 밴쿠버 총영사관 관할지역인 캘거리에서 올해 처음으로 ‘한국의 날(Korean Day)’을 지정했으며 에드먼튼도 곧 한국의 날을 기념할 예정이다. 특히, 그는 ‘한국전 참전용사회(KVA)’ 활동에도 적극 참가함으로써 친한(親韓) 기반을 강화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그는, “대사(大使)까지 못해보고 은퇴하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육군소령(육사 25기)으로 예편해 다른 사람들보다 10년 늦게 시작한 외교부 생활에서 묵묵히 맡은바 직무에 최선을 다했으며 밴쿠버에서의 2년이 그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박총영사는 이번 인사가 언론의 보도때문이라는 항간의 시선에 대해, “보도와는 상관없이 이미 수개월전에 내정된 인사였다”면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烏飛梨落)”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일부에서는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외교부에 투서를 한다든가 공관을 찾아와 갖은 압력을 행사하려 했음에도 본인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지만 ‘어찌 할말 다하고 사느냐’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임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도 “저에게 베풀어주신 많은 관심과 애정을 후임 최충주 총영사에게 더욱 더 베풀어 주시기를 바란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2일 저녁 버나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이임리셉션에는 교민 200여명이 참석해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의 아쉬움을 함께 나눴다.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