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빅토리아대 스포츠과학센터가 '엘리트 스트레스'를 분석했다. 실력있는 골프선수들의 침, 부신피질호르몬, 심장박동을 측정해 심리적·생리학적 불안상태(anxiety state)를 연구했다. 티오프 직전, 6번홀 직후, 12번홀 직후, 경기 종료 후까지 네 번을 쟀다. 불안수치는 경기 직전에 가장 높았고 경기 중에는 자신감이 떨어졌다. 리더 보드(성적순 선수 명단) 상위권 선수일수록 증세가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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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마스터스 골프대회 결과도 전형적인 엘리트 스트레스를 보여 줬다. 유럽의 '새로운 별'이라던 로리 매킬로이는 2위를 4타나 따돌린 1위로 마지막 라운드에 나섰으나 '1등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는 "63홀 동안 1위를 지킨 것을 위안으로 삼겠다"고 했다. 골프 평론가들은 "큰 무대 경험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

▶수영에서도 스타 선수들을 대상으로 엘리트 스트레스 연구가 활발하다. 실패의 두려움과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대처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역사적으로 엘리트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천재 과학자나 예술가 사례를 연구한 책들도 많다. 미국 MIT 학생들의 10만명당 자살 숫자가 한 해 20.6명으로 같은 연령대(17~22세) 미국 젊은이 평균치의 두 배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2002년 미스코리아 진이었던 금나나씨는 나중에 하버드대에 입학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금씨는 신입생 배치고사를 치른 뒤 학업상담국에 불려갔다. 한국인 유학생 중에서 '영어(논리적 작문)'가 최저 수준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금씨는 피나는 노력 끝에 올A를 받았고 졸업 후엔 컬럼비아 의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세 번째 책 '나의 네버엔딩 스토리'를 냈을 때 금씨는 "하버드가 준 가장 큰 선물은 '좌절'이었다"고 했다.

▶15년 전 열여섯 살에 카이스트에 입학했던 천재 소년의 자살부터 올해 카이스트에 이어지는 연쇄 자살도 엘리트 스트레스와 관계 있다. 심리학자들은 0.1% 안에 드는 수재들이 "처음으로 스스로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느낀 순간 갑자기 무기력증에 빠진다고 말한다. 수재들만 겪는다는 '낯선 좌절' 증후군이다. 여기 휘말린 본인들에겐 얼음 골짜기에 갇힌 것 같겠지만, 찬찬히 살피기만 하면 골짜기를 빠져나오는 숨은 길을 찾아낼 수 있다. 누군가 그들에게 길을 찾는 방향을 말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