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디자인은 덧셈 아닌 뺄셈

채민기 기자 chaepline@chosun.com

최종수정: 2011-12-19 09:32

지난달 30일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린 '대한민국패션대전'. 두 명의 모델이 런웨이(패션쇼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앞·뒤판을 한 장씩의 천으로 만드는 보통 옷과 달리 옷감을 여러 겹 겹치고 그 자락을 불규칙하게 엮은 옷을 입었다. 가죽을 쓴 원피스에는 빗질한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가는 주름이 잡혀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500여명의 응모작품 중 이 옷을 대상인 대통령상 수상작으로 뽑았다.

디자이너는 김아름(25·홍익대 의상디자인과 석사과정·사진)씨였다. 14일 만난 김씨는 자신의 작품을 "가체(加�t·옛 여성들이 장식을 위해 자기 머리에 덧붙이던 머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옷"이라고 했다. 그는 "전통적인 주제라고 해서 옷고름 같은 한복의 디테일을 사용하거나 전통 문양을 옷에 그려 넣는 건 식상하다고 생각했다"며 "가체의 형태를 그대로 옷으로 옮기기보다는 머리를 땋아 엮는 가체의 제작 방식처럼 옷자락을 겹치고 엮는 방법으로 옷을 만들었다"고 했다.

지식경제부와 한국패션협회가 연 패션대전은 신인 디자이너 발굴·육성을 위해 1983년 시작됐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디자이너 스티브J&요니P(2002년 동상), 이진윤(2000년 장려상) 등을 배출해 신예 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 불린다. 김씨는 상금으로 2000만원을 받았고 해외 패션 유학 기회도 얻았다. 김씨는 "창조적인 시각과 자유로운 소재 활용으로 한류를 새롭게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로 다른 소재를 여러 겹 겹쳐 만든 김아름씨의 작품. 가죽을 사용한 윗옷에는 가는 주름을 촘촘하게 잡아 머리카락의 질감을 표현했다. 가방(오른쪽)에는 구멍을 뚫거나 무늬를 넣어서 금관의 장식을 형상화했다. /한국패션협회 제공
올해 대회의 주제는 '한류의 재해석'이었다. 김씨는 '가체'를 테마로 잡은 이유로 "가체의 양면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품 주제를 구상하던 중 신윤복의 '미인도'에 나오는 가체를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가체는 본래 여성의 머리 장식이었지만 지나치게 무겁고 사치스러워지자 조선시대 조정에서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어요.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여성들을 힘들게 했던 거죠. 지금 한류 열풍 뒤에도 혐(嫌)한류 같은 반작용이 있습니다. 가체의 이중성과 이런 한류의 양면적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김씨는 이번에 옷 3벌과 가방, 신발 등 총 13점을 만들어 출품했다. "원하는 옷 모양이 나올 때까지 옷본을 고쳐 그리는 작업을 10번 이상 거쳤다"고 한다. 가방에는 불규칙한 모양으로 구멍을 뚫고 무늬도 넣었다. "금관(金冠)의 장식을 형상화한 무늬"이다. 신발에는 한류 열풍을 이끄는 K팝 스타들의 옷차림에서 영감을 받아 금속 징 장식을 붙였다. "가죽, 실크같은 고급 소재를 사용하느라 재료비만 450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패션대전을 준비하면서 장식이나 색채를 자꾸 더하기보다는 줄여나갈 때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며 "더 뺄 게 없을 만큼 간결하고 인상적인 옷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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