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찜] 봄 산란 앞둔 늦겨울이 제철
과거엔 내던져 '물텀벙' 불려… 50년전 마산서 찜으로 탄생 배가 하얀 참아귀가 더 좋고, 무게 6~7㎏짜리 가장 맛나 요즘이야 귀하게 대접받지만 멀지 않은 과거, 아귀는 '물텀벙'이라고 불렸다. 어부들이 아귀가 그물에 걸리면 "재수 없다"며 도로 바다로 텀벙 내던졌다고 해서 붙은 별칭이다. 그 모습을 보면 그럴 만도 했다. 대가리가 엄청 크다. 몸 전체의 3분의 2나 된다. 바위처럼 시꺼멓고 거친 몸통에는 비늘이 하나도 없는 데다 점액질로 뒤덮여 끈적하다. 입속에는 이빨이 3중으로 나 있어 무서울 정도다.
아귀는 머리가 워낙 커서 잘 헤엄치지 못한다. 대신 사냥에 능숙하다. 대가리에 낚싯대처럼 길고 가느다란 안테나 모양 촉수가 있다. 등지느러미의 가시가 진화한 것이다. 바다 밑바닥에 바위처럼 꼼짝 않고 기다리다가 먹잇감이 접근하면 촉수를 살살 흔든다. 어리석은 생선이 먹이인 줄 알고 접근하면 큰 입을 벌려 삼켜버린다. 통째로 삼켜도 강한 소화력으로 녹여 먹는다. 영어로 아귀를 '낚시꾼 생선(anglerfish)'이라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조선시대 정약전도 '자산어보'에 아귀를 낚시하는 물고기라는 뜻으로 '조사어(釣絲魚)'라고 기록했다. 잠수 도구가 없던 조선시대 깊은 바다 밑바닥에 사는 아귀가 사냥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을 텐데, 정약전의 통찰력이 대단하다. 과거 어부들이 아귀를 홀대한 건 흉측한 모습도 모습이지만 팔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귀는 일본이나 서양에선 오래전부터 고급 생선으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귀를 먹지 못할 흉측한 생선이라며 꺼렸다. 한국 사람이 아귀를 먹기 시작한 지는 50여년에 불과하다. 1960년대 중반 경남 마산에서 아귀찜이 탄생하면서부터다. 아귀찜을 처음 만든 이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마산에 가면 '원조'로도 모자라 '진짜 원조'라고 간판에 새겨넣은 아귀찜 식당이 수두룩하다. 이 중 '오동동진짜초가집'은 마산 토박이들이 "옛날에 먹던 그 맛이 나는 아귀찜을 한다"고 인정하는 집이다. 이 식당 주인 박영자(85)씨에게 어떻게 아귀찜을 처음 만들게 됐는지 물었다. "마산에서는 겨울에 아귀를 말렸다가 탕을 끓여 먹었어요. 그런데 한 50년 전인가, 밤새 술 진탕 마시고 온 손님들이 '배는 불러서 탕은 못 먹겠으니 찜을 해달라'고 하는 거야. 혼자 생각했지. 어찌 해줄까. 되든 안 되든 해보자 싶어서 삐들삐들 말린 아귀에다가 된장, 고춧가루 넣고 냄비에 앉혀서 맵싸하게 찜 해줬어. 그랬더니 손님들이 맛있다고 하데. 아침에 먹고 간 손님들이 점심 때 또 먹으러 왔어. 그날 이후로 손님이 손님을 데리고 오고. 3년이 지나니까 (마산) 온 시내에 아귀찜집이, 5년이 지나니까 서울에도 아귀찜 하는 식당이 생겼다 하더라고." ☞'국민 음식' 아귀찜의 계보 대표적인 '국민 음식' 중 하나인 아귀찜에도 계보가 있다. 원조 격인 '마산식' 대 후발 주자 격인 '부산식' '인천식' '군산식'이다. 찜의 재료로 말린 아귀를 쓰느냐, 생아귀를 쓰느냐에 따라 경계가 생긴다. 아귀찜을 처음 만든 마산은 말린 아귀를 쓰는 '건아귀찜'의 본산이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잡히는 아귀를 열흘 정도 햇볕과 바람이 잘 드는 덕장에 내걸어 말린다. 잘 마른 아귀를 얼려뒀다가 요리 직전 녹이고 불려서 사용한다. 마산 사람들은 "말린 아귀를 써야 더 쫀득하게 씹는 맛이 좋고 구수하다"고 한다. 아귀만 사용하고, 재래 된장도 양념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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