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사투리를 영리하게 사용하는 법

sadmin

최종수정: 2012-09-12 10:33

드라마가 사투리를 사용하는 법이 영리해졌다. 등장인물 특유의 말투를 나타내는 단순 사용법을 넘어서 분위기와 상황을 만들어나가는 역할까지 감당하며 극을 이끄는 주요 아이템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사투리가 과거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이 내뱉는 감초 언어로 사용되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 특히 최근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두 편의 드라마에서는 격한 사투리를 입에 단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함은 물론 멋스러운 캐릭터로 부각되며 사투리의 영리한 활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 ‘골든타임’ 긴박감 높이는 사투리의 힘
 
 MBC 월화드라마 ‘골든타임’(극본 최희라, 연출 권석장)에서 사투리는 극의 분위기를 만드는데 한 몫을 단단히 한다. 응급실을 배경으로 초보 의사의 성장담을 그리는 이 드라마에서 사투리는 경각에 놓인 외상환자들의 위급상황과 이를 치료해야 하는 의료진의 사명과 부담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긴장감을 높인다. 

부산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촬영되는 이 드라마의 주 언어는 경상도 사투리. 격하기로 으뜸가는 경상도 사투리의 어감은 특히 수술 장면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중상을 입은 외상환자들은 수술실에서 배를 가르자마자 쏟아지듯 피가 콸콸 흐르는 가운데, 지혈점을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의사들은 고함과 센 억양의 사투리로 수술장에 들어온 초보 의사를 다그친다.

이를 연기하는 외상외과 전문의 최인혁 역의 이성민은 경북 출신의 이점을 살려 진짜 다급한 상황을 맞닥뜨릴 때 나오는 짜증과 재촉을 리얼한 사투리로 내뱉으며 심장박동수를 높인다. 여기에 초보 의사 이민우 역의 이선균이 스승의 이 같은 짜증을 어쩔 줄 몰라 하며 더듬더듬 내뱉는 서울말은 강한 대조를 이루며 사투리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 ‘응답하라 1997’ 복고 분위기 만드는 사투리
 
tvN 주간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하 응답하라, 극본 이우정, 연출 신원호)에서 사투리는 시대를 재현하는 중요한 소품이다. 90년대 후반기를 고등학생 신분으로 보낸 인물들의 성장담을 그리는 이 드라마는 시대를 재현함에 있어 DDR, 삐삐, 다마고치 같은 당시 물품들과 ‘애송이의 사랑’, ‘슬프도록 아름다운’ 같은 당시 유행가를 적극 활용하는 것 외에도 부산 사투리를 인물들의 일상어로 배치하며 복고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표준어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녔다면, ‘응답하라’는 사투리를 이와 대척점에 두고 과거인 1997년의 부산을 재현하는 데 있어 경상도 말을 꺼내든 것. 이를 증명하듯 인물들은 이야기의 전개와 함께 2012년의 현재 서울로 이동하며 말투를 표준어로 바꾼다. 리얼 사투리를 구사하던 부산 상남자 윤제(서인국)는 대학졸업 후 서울에서 판사생활을 하며 말투부터 바꾸는 것으로 과거와 현재를 구분한다. 

# 사투리 쓰는 남자가 멋지다
 
두 드라마의 높은 인기와 더불어 함께 상승한 건 사투리 쓰는 남자들에 대한 호감도다. 과거 드라마 속 멋진 남자들의 전형이 부드러운 서울말씨에서 비롯된 다정함이었다면, ‘골든타임’과 ‘응답하라’ 속 인혁과 윤제는 투박한 사투리로 남성성을 표출한다.

물론 사투리를 쓰는 이유만으로 호감을 얻는 건 아니다. 두 캐릭터가 지지를 한 몸에 받는 건 바람직한 인간상이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골든타임’ 속 인혁은 안락에 젖어 병원 내 정치를 일삼는 여타 의사들과는 구분된 인물로 소신과 책임감을 갖춘 진짜 어른 같은 의사다. 수트를 입는 대신 라운드티셔츠 차림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으로 욕 같이 들리는 사투리를 내뱉으며 환자를 위해 백방으로 뛰는 인혁은 세련됨은 없을지언정 듬직하고 믿음직스럽다.

‘응답하라’의 윤제는 마음에 품은 여자에 대한 지극정성으로 첫사랑의 환상을 구현한다. 좋아하는 여자의 부름에 신발도 제대로 꿰지 못한 채 한달음에 달려오는 모습이나, 고백 실패 이후에도 6년을 간직한 일편단심은 순간의 다정함은 없을지언정 ‘순정마초’ 캐릭터로 여심을 자극한다.

sunh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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