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참전 용사(Korean War veteran) 한 분이 또 타계했다(depart this life). 1951년 3월 19세 나이로 왔다가 1953년 6월 21세가 돼 돌아갔던 영국군 제임스 그룬디(91)씨가 오랜 암 투병 끝에(after a long battle with cancer) 지난 10일 급성 폐렴으로 유명을 달리했다(join the majority). 참전 기간 ‘특수 임무’를 맡았던 그룬디씨의 유해는 본인의 유언에 따라(according to his will) 다음 달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될(be laid to rest) 예정이다.

 

그의 ‘특수 임무’는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하는(recover the bodies of fallen soldiers) 일이었다. 5명으로 구성된 ‘시신 수습 팀(Recovery Team)’에 자원한 그는 영국군 병사가 전사했다는(be killed in action) 연락을 받으면 한반도 어느 전쟁터든 급파됐다(be dispatched to all the battlefields). 십자가 위에 철모를 올려놓거나 푯말을 꽂아 놓은 지점을 찾아 흙을 파내고 시신을 꺼내 관에 담았다(lay them in a coffin).

 

그렇게 그가 직접 최전선(front line)에서 부산으로 옮겨 묻어준 주검만 90여 구였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현재 안장된(be currently interred) 영국군 전사자 884명의 약 10%에 달한다. 그는 시신을 묻을 때마다 “나는 당신을 잊지 않겠다. 내가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고(make a promise) 한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in order to keep his word) 1988년 보훈처 초청으로 방한한 이후 지난 30여 년간 매년 자비를 들여(at his own expense) 유엔기념공원을 찾아왔다. 결혼을 못 한 채 참전해 배우자는 없는 데다, 부모도 이미 세상을 떠나(pass away) 아무도 찾는 이 없게 된 묘지를 일일이 보살펴준 것이다.

 

최근 2년간 코로나 19로 방한하지 못했던 그는 암 투병으로 갈수록 쇠약해져(waste away) 마지막이 될 것 같다며 지난 5월 힘겹게 부산을 다녀갔었다. 그리고 불과 4개월 만에 70년 전 자신이 묻어줬던 전우들 곁에서 함께 영면하기 위해(in a bid to go to his final rest)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는 2010년 4월 7일 자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하루도 끔찍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온전한 시신이 드물었습니다. 한국군이나 민간인 시신은 근처 시·군청에 옮겨줬습니다. 굶어 죽은(starve to death) 사람이나 어린아이들 시신에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tear me apart). 그 끔찍했던 장면들이 수시로 떠올라 저는 지금도 악몽을 꿉니다(have a nightmare). 제 아내는 200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7명의 형제자매(siblings)도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가족이라곤 손녀 둘이 전부입니다. 그래도 부산에 수백명의 전우 가족이 있어 마냥 외로운 건 아닙니다.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제가 묻어준 전사한 전우(fallen comrade)들이 바로 영웅입니다.”

 

그룬디씨는 2019년 유엔기념공원이 위치한 부산시 남구의 명예구민으로 선정됐고, 오는 10월 5일 부산 시민의 날에 초청돼 명예시민증을 받을(be presented an honorary citizenship) 예정이었다.

 

[영문 참고자료 사이트]

 

https://edition.cnn.com/travel/article/un-cemetery-busan-korea-war-intl-hnk/index.html

 

https://unmck.or.kr/eng/05_board/?mcode=0505020000&mode=2&no=322&page=1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07/20100407000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