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향해 쏴라’로 명성을 날린(rise to fame) 폴 뉴먼은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한 명이었다. 말런 브랜도, 제임스 딘과 함께 미국 청년 문화를 상징했고, 여배우 오드리 헵번과 1960년대 할리우드의 자웅(雌雄)을 겨뤘다(vie for supremacy). 2008년 폐암으로 타계한(die of lung cancer) 그는 자상한 남편(attentive husband)이자 다정한 아빠(friendly dad)로도 유명했다.
무명 시절 첫 결혼에 실패한 후 동료 여배우 조앤 우드워드와 재혼해 50년 동안 금슬 좋은 부부로 살면서(live in conjugal harmony) 할리우드의 유례 없는 원앙부부(unparalleled lovebirds)로 불렸다. 자신은 절대 아내를 속이고 바람을 피우지(cheat on his wife) 않는다며 “집에 스테이크가 있는데 왜 햄버거를 사먹으러 가겠느냐”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의 가족 증언을 바탕으로 최근 제작된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be completely different in reality). 뉴먼은 지독한 술고래에 바람둥이(awful tippler and womanizer)였다. 아침에만 맥주 6캔을 마셨다. 매일밤 만취해 의식을 잃었고(get dead drunk and pass out), 침대에서 떨어져(fall out of bed) 머리에 피를 흘리며 의식불명으로 널브러져 있기(lie insensible with his head bleeding) 일쑤였다.
아내인 우드워드는 걸핏하면 ‘햄버거’를 먹으러 다니는 그의 엽색 행각을 혐오했다(loathe his philandering). 뉴먼이 언론을 상대로 “집에 스테이크가 있는데 왜...”라고 말할 때마다 자신은 그의 한 끼 고기 조각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feel like a piece of meat). 세 아이를 낳은 첫 부인을 속이고 자신과 바람을 피웠던 뉴먼이 언젠가 자신도 버리고 또 다른 바람을 따라갈 것이라는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live in the anxiety).
그랬던 뉴먼의 바람기가 사그라든 건 첫 부인과 사이에 낳은 외아들(only son)이 돌연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세 남매 중 맏이(eldest child)였던 어린 아들은 부모의 이혼(parents’ divorce)에 충격을 받아 불과 12세 때 접착제를 흡입하다 적발되는(be caught sniffing glue) 등 일탈을 거듭했고, 끝내 1978년 28세 나이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졌다(die in 1978, aged 28 from a drug overdose).
아들의 죽음 이후 뉴먼의 연기는 더 어두워지고 깊어졌다(become darker and deeper). 아들에게 속죄하는(atone for his wrong) 마음으로 약물 재활 센터(drug rehabilitation center), 중병 환자 어린이용 캠프(camp for desperately ill children), 자선 활동을 위한 식품 회사를 설립하는 등 술고래·바람둥이에서 할리우드의 대표적 박애주의자로 변신했다(turn into the most representative philanthropist).
뉴먼은 ‘내일을 향해 쏴라’가 개봉된 1968년엔 낸시 베이컨이라는 여기자와 염문을 뿌려 “이번엔 햄버거가 아닌 베이컨을 먹으러 다닌다”는 비아냥을 들었었다. 외아들이 죽기 10년 전, 자신이 죽기 40년 전이었다.
[영문 참고자료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