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왜'라고 묻는 할리우드… 힘들었다

파크시티(미국)=변희원 기자

최종수정: 2013-01-22 10:48

올해 영화계의 뜨거운 관심사 중 하나는 박찬욱·봉준호·김지운 '빅3' 감독의 해외 진출이다. 이 중 박찬욱 감독의 작품 '스토커(Stoker)'의 시사회가 20일(현지시각)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렸다. 17일 개막한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축제 제29회 선댄스영화제의 프리미어 부문 상영작이었다.

'스토커'는 미국 인기 TV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웬트워스 밀러가 시나리오를 쓰고 세계적 톱스타 니콜 키드먼(Kidman)과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별 미아 바시코프스카(Wasikowska)가 모녀(母女)로, 매튜 구드(Goode)가 키드먼의 시동생으로 나오는 작품이다. 제작비 1200만달러(약 127억원)가 들어간 할리우드판(版) 인디영화이다. 관객들은 시사회가 끝난 뒤 트위터 등에 "박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 "미친 것 같으면서도 황홀하다" "영상은 매혹적이지만 내용은 공허하다"는 등의 평가를 내놨다. 시사회 전 파크시티의 한 식당에서 박 감독을 만났다.

박찬욱(맨 오른쪽) 감독이 20일(현지시각)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 에클레스 극장에서 열린 영화‘스토커’시사회에 참석해 미아 바시코프스카, 니콜 키드먼, 매튜 구드(왼쪽부터) 등 출연 배우들과 포즈를 취했다. /AFP 연합뉴스
―괴기소설 '드라큘라'를 쓴 아일랜드 작가 브람 스토커의 이름을 제목으로 쓴 탓에 '뱀파이어가 나오는 영화'란 소문도 있었다.

"밀러의 시나리오 제목이 '스토커'였다. 주인공 가족에게 흐르는 피가 남들과 다르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지었던 것 같다. 나는 제목을 남자 주인공 이름인 '엉클 찰리'로 바꾸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등장인물이나 장소가 적은 소품이라 좋았다. 내가 쓰지만 않았다 뿐이지 한국에서 한 것과 비슷하다. 대사로 진행이 되는 시나리오가 아니라 시각이나 사운드 등의 영화적인 기법으로 표현할 여지가 많은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힘든 건 없었나.

"말이 잘 안 통하고 모든 배우와 스태프를 다 처음 만나니까 힘든 건 당연하다. 한국과 제작 시스템이 다르기도 하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가 납득이 안 갔고, 그다음에는 반발도 하고 논쟁도 했다. 그 과정을 다 거친 뒤에 스튜디오와 평화롭게 잘 지냈다."

영화 '스토커'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뭐가 납득이 안 가던가.

"한국에선 아주 중요한 문제만 아니면 '감독님 맘대로 하세요'라고 한다. 여기선 뭐든지 다 말로 해야 하고 논리적으로 납득을 시켜야 한다. 예술 작업이란 게 다 설명이 되는 게 아니지 않나. 감독에겐 나름 다 비전이 있는데 그냥 '난 이게 좋은데'라고 하는 게 안 먹히는 거다. (탁자 위에 있던 파란색, 분홍색, 흰색 포장지의 1회용 설탕을 하나씩 늘어놓더니) 예를 들어 이렇게 탁자 위에 뭔가를 놓을 때도, 내가 분홍색을 놓고 싶으면 분홍색이 왜 다른 색보다 좋은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럼 하고 싶은 걸 다 못했나.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완성할 무렵에 보니 하고 싶은 거 다 했더라. 한국에 있을 때와 비교해서 더 못한 건 없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대접받으며 편하고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미국에서 영화를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관객 때문이다. 한국에서 만든 영화가 여기(미국) 극장에 걸려도 (영어) 자막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려는 관객은 극히 제한적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흥행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다양한 관객을 만나고 싶어서다. 또 다른 이유는 다양한 배우와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배우와 일한다는 것은 그 배우가 이전에 함께 일한 감독들의 세계와 내 세계가 만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니콜 키드먼과 일하는 것은 (키드먼이 과거 작품을 찍었던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이나 라스 폰 트리에와의 만남인 것이다."

―김지운·봉준호 감독도 비슷한 시기에 해외에서 작업을 했다. 셋 중 누가 가장 고생했나.

"일단 봉 감독은 할리우드 스튜디오도 아니고 내가 제작자니까 나만큼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얘기 들어보니 김지운 감독은 스튜디오랑 죽이 잘 맞은 것 같다. 자기는 힘들었다고 하던데 내가 볼 땐 가소롭기만 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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