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계 각국에서 경력을 쌓고 있는 한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코트라 해외취업성공기 공모전에서 밴쿠버 출신의 청년이 대상을 받았다. 밴쿠버 본사의 음악 레이블 몬스터캣(Monstercat)에서 UX/UI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소희(27) 씨가 그 주인공이다.

 

김 씨는 수기를 통해, 한국 2년제 대학 출신인 그가 밴쿠버의 유망한 기업에 취업하기까지의 힘들었던 과정을 자세하고 담백하게 담아, 해외 취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난생처음 느낀 영어 공부의 재미

 

김소희 씨는 한국에서 2년제 대학 졸업 후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약 2년간 최저 시급을 받으며 매일 같은 야근에 시달려야 했던 그 시절, 그는 본인을 스펙 중심의 사회에서 ‘루저’였다고 표현했다.

 

밴쿠버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요?

 

“원래 저는 해외에서 생활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학창 시절 영어 성적은 6등급을 왔다 갔다 할 정도로 평균 이하였고, ‘어차피 난 한국에서만 살 건데’라고 정신승리를 하면서 영어 공부를 외면했어요. 그러다가 모처럼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갔는데, 즐기고 싶은 게 많은데도 영어를 못하다 보니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마침 한국에서의 삶도 너무 지쳤겠다, ‘영어를 한번 배워보자’라는 마음으로 모아둔 돈을 모두 갖고 2019년 2월 밴쿠버에 오게 됐어요.”

 

영어는 금방 늘던가요?

 

“지금도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실력이 빨리 늘긴 했어요. 영어를 배우는 데 집중하려고 처음에는 한국인 친구는 전혀 사귀지 않았었죠. 그리고 언어를 배우려면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당시 학원 같은 반에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저 친구와 대화 한번 해봐야겠다!’라는 열망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실력이 금방 늘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조금만 잘해도 칭찬을 받으니 열심히 하게 되고, 성적도 항상 상위권이었고요. 난생처음으로 영어 공부가 재밌었어요.”

 

처음부터 밴쿠버에서 취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요?

 

“해외 취업은 꿈도 꾸지 못했죠. 그런데 밴쿠버 생활이 너무 좋다 보니까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돈을 벌어야죠!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고요. 그래서 2020년 2월 더글라스 칼리지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학교에서도 디자인을 공부하셨나요?

 

“아니요, 개발자가 되고 싶어 컴퓨터공학을 공부했어요. 사실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을 때는 개발자가 연봉도 높고 괜히 갑(甲)인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공부가 생각보다 저랑 맞지 않고 어렵더라고요. 그러던 중 북미 디자인 대회에 몇 번 참가하고 수상도 하면서 '내 적성은 역시 디자인이구나'라고 깨닫게 됐죠. 하지만 UX/UI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컴퓨터공학을 공부한 경험이 큰 자산이 됐어요.”





◇ 취업의 성공 길로 이끌어준 선배와 동료들

 

2021년 겨울 대학을 졸업한 김소희 씨는 지난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의 IT 업계의 상황은 악화돼 구인은커녕 다니던 직원도 감축하던 때였고, 그는 스무 번 이상 면접에 탈락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캐나다에서 취준생 생활은 어땠나요?

 

“영어 공부도 해야 하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도 만들어야 하는 데다가, 인터뷰를 봤는데도 계속 취업에 실패하니까 힘들었죠. ‘그래, 내가 뭐 그렇지’ 하면서 좌절하기도 했고요. 제 재정 상태도 좋지 않아져서 ‘식당에서 파트타임 잡을 알아봐야 할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일을 하면서 취업 준비까지 하면 에너지가 부족할 거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취업에만 올인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취업 준비를 할 때 도움이 됐던 프로그램이 있었다고요?

 

“지난해 3월 코트라가 주최한 멘토링 프로그램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인터넷 검색으로 나오는 정보는 최신 내용이 아닐뿐더러 믿을 수 없는 경우도 많잖아요. 하지만 코트라 멘토링에서 만난 선배님들을 통해서는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귀중한 최신 정보를, 그것도 한국어로 얻을 수 있었죠.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저와 같은 분야에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와 만나, 같이 공부하면서 정보를 공유했던 것도 큰 위안이었어요. 그리고 ‘KDD’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KDD’는 어떤 모임인가요?

 

“밴쿠버 한인 개발자·디자인 모임이에요. 현직에 종사하고 계시는 선배님들이 현재 IT 업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세미나를 통해 알려주기도 하고, 모의 인터뷰와 이력서 첨삭 등의 도움을 주셨어요.”

 

인터뷰에서는 본인의 어떤 점을 어필했나요?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다는 것은 우선 회사 측이 제 포트폴리오를 어느 정도 마음에 들어 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같이 일하기 즐겁고 편안하며, 생각이 열려 있는 사람이랍니다’라는 점을 최대한 어필하려고 노력했어요.”

 

영어 인터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 보니 인터뷰가 잡히면 정말 열심히 연습하고 준비했어요. 모든 예상 질문을 숙지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노트에 작성해 외우고 또 외웠죠. 그리고 인터뷰에서 받았던 질문과 답변을 다시 노트에 적어 연습을 했고, 그 연습한 모습을 영상으로 녹화해 영어 발음과 시선 처리를 점검했어요.”

 

격려 아끼지 않는 캐나다 직장 문화

 

약 두 달간 취업에 올인을 한 끝에 김소희 씨는 지난해 5월 밴쿠버를 본사로 둔 음악 레이블 ‘몬스터캣’의 웹디자이너로 취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수습 기간 성과를 내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결과, 입사 3개월만에 UX/UI 디자이너로 진급도 할 수 있었다.

 

UX/UI 디자이너라는 직종에 대해 설명 좀 부탁해요.

 

“웹사이트 및 디바이스 이용자가 더욱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분석하고 행동에 옮기는 직종이에요. 개발자와 클라이언트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해야 해서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획 역할까지 파악해야 하고, 소통과 관찰력이 상당히 중요하죠.”

 

한국과 캐나다 직장 생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뭔가요?

 

“한국과 캐나다에서의 경력이 그리 길지 않지만, 캐나다의 회사 문화가 더 수평적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고, 고마움을 많이 표현한다는 거예요. 피드백을 받더라도 칭찬이 동반되다 보니까 기분이 나쁘지 않고, 더욱더 열심히 일할 수 있더라고요. 제가 채찍보다는 당근이 필요한 스타일이라서 더욱더 그런 것 같아요. 아, 그리고 휴가를 눈치를 안 보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회사 생활 적응은 어땠나요?

 

“영어로 소통하는 게 어려웠어요. 직업 특성상 미팅을 자주 하는 편인데, 미팅을 하기 전에 미리 무슨 이야기를 할지 연습하고, 끝나고 나서는 내가 이해하는 내용이 맞나 같이 참여했던 동료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확인하기도 했어요. 그러면 동료들도 제가 영어 실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아니까 친절히 알려주었고요. 역시 모를 때는 아는척하는 것보다는 물어보는 게 훨씬 낫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죠. 주로 재택근무를 하지만 동료들과는 온라인에서는 매일 만나고, 정기적으로 파티나 해변 청소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함께 하다 보니까 금방 친해질 수 있었어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연봉 차이는 어떤가요?

 

“한국에서는 박봉이기도 했고 6~7년 전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게 무리이긴 한데… 세금 후 기준으로 2.5배 정도 더 받는 것 같아요.”

 

목표가 뚜렷해야 힘든 과정 버틸 수 있어

 

요즘도 본인의 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있나요?

 

“디자이너 친구들과 하루에 한 시간씩 온라인으로 만나 강의도 듣고, 복습도 하면서 스터디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영어로 된 디자인 책을 읽는 북클럽 활동과 화상 수업을 통해 영어 공부도 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취업 준비를 하면서 너무 힘들었을 때 코트라 멘토링 프로그램과 KDD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만큼, 저도 해외 취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최대한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리고 조금 더 넓은 곳으로 가서, 세계에서 모인 똑똑한 사람들은 어떻게 일을 하나 보고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해외 취업이라는 꿈을 갖고 있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해외에서 취업을 하려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목표가 뚜렷하면 과정이 힘들어도 내가 이 목표를 향해 가고 있으니까 이겨낼 수 있겠지만, 목표가 없을 때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내가 먼 곳까지 와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자괴감이 많이 들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제가 취업 준비로 힘들어서 ‘내가 과연 할 수 있는 건가?’ 걱정하고 있을 때 멘토분께서 ‘소희야, 될 때까지 하면 될 수밖에 없어!’라고 해 주신 말이 큰 힘이 되었거든요. 저도 그 말을 전달해주고 싶어요.”

 

* 김소희 씨가 해외 취업에 성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코트라 밴쿠버 상반기 멘토링 프로그램은 오는 3월 9일부터 4월 20일까지 진행된다. 6주간 금융, IT, 회계, 정부 기관 등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멘토들이 한자리에 모여, 취업에 도움이 되는 여러 정보를 공유할 예정이다. 신청은 www.kmovevan.org에서 가능하며, 신청 마감은 2월 26일(일)이니 서둘러야 한다.

 

손상호 기자 ssh@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