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해결이 쉽잖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을 이르는 영어식(式) 표현이다. 혼냈다간 되레 엇나갈까 봐 조심스레 대하게 되는 사춘기 청소년을 표현하기에도 적합한 말이다. 맛있는공부는 지난 24일부터 이틀간 혹독한 사춘기를 성공적으로 이겨낸 명문대생 학부모 3인〈참가자 명단〉을 만났다. 이들이 자녀의 질풍노도 시기를 겪으며 얻은 깨달음을 정리했다.

참가자 명단
△강순선(48·서울 금천구)|서울시립대 물리학과 1년 아들을 둠
△김은희(48·서울 도봉구)ㅣ성균관대 시스템경영학과 1년 아들을 둠
△이응남(50·서울 영등포구)ㅣ성균관대 독어독문학과 2년 아들을 둠


사춘기 해결 열쇠는 ‘부모’에게 있다

“내 자식이지만 정말 때리고 싶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절망’이란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기사 이미지(왼쪽부터)강순선씨, 이응남씨, 김은희씨. /김승완 기자·백이현 객원기자

인터뷰에 응한 학부모들은 자녀의 사춘기 시절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강순선씨는 아들이 중 3 때 ‘학교에 가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하루 무단결석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무작정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이응남씨의 자녀는 고 3 이후 진로 때문에 ‘뒤늦은 사춘기’를 겪었다. 현역 시절 합격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반수로 입학한 해군사관학교 등을 연이어 자퇴하겠다고 결심했을 땐 부모 자식 간 갈등이 극에 달했다. 김은희씨의 아들은 중 2 때 자신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는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틱 장애 증상을 겪었다. 고 1 무렵엔 내신 수학 시험 점수가 한 자릿 수일 정도로 학업에 소홀했다.

해결의 실마리는 부모에게 있었다. 부모가 자녀의 요구를 수용하고 행동을 바꾸자 아이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아들의 틱 장애 증상에 충격받은 김씨는 자녀에게 원하는 바를 진지하게 물었다. “딱 한 달만이라도 내 행동에 간섭하지 말아달라”는 답을 들은 후 그는 아이의 모든 행동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이때부턴 식사 시간마다 1시간 이상씩 이야기 꽃을 피울 정도로 가족 간 소통의 물꼬가 트였다. 2년 후인 고 1 때 아들이 ‘공부가 하기 싫다’며 또다시 사춘기 증상을 보이자 모든 학원 등록을 끊는 특단의 조처를 했다. 그랬더니 이듬해엔 아이 스스로 ‘공부할 테니 학원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자녀와 마음을 터놓고 나누는 대화는 사춘기 반항 행동을 절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강씨는 아들의 무단결석을 알게 된 날 직장에서 조퇴한 즉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곤 자녀와 한 시간 넘는 긴 대화를 나눴다. 듣고 보니 ‘굳이 학교에 다닐 이유가 없는 것 같다’는 게 결석의 원인이었다. “저도 학창시절 어머니의 과보호가 답답해 가출한 적이 딱 한 번 있었어요. 당시 제가 살던 집은 광주였는데, 등굣길에 무작정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죠.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학생인 제가 발붙일 곳이 없단 걸 깨달은 후 당일 저녁 막차를 타고 바로 집으로 내려왔어요. 이런 얘기를 들려주면서 ‘인생 선배로서 네 마음을 이해한다’고 강조했죠. 그날 아들은 ‘엄마와 아빠를 위해 공부하겠다’고 결심했대요.”

자녀의 뜻 수용하되 책임은 ‘자녀 몫’

자녀와 대화할 때 부모가 아이를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내비쳐선 안 된다. 이씨는 “아이 뜻에 무작정 반대하면 부모 자식 간 사이만 틀어진다”고 귀띔했다. “아이는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니 반대 의견을 표명하더라도 그 뜻만큼은 존중해야 해요. 단, 결과에 따른 책임은 자신의 몫이라는 점을 강조해주세요(실제로 이씨의 아들은 두 번의 반수를 모두 부모의 재정적 도움 없이 독학으로 치렀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양용하는 요령도 필요하다. 김씨는 학원에 보내달라는 고 2 아들의 부탁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 아들이 정말로 공부에 뜻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단, 세 번째 거절 땐 ‘몇 가지 조건을 받아들이면 학원에 보내주겠다’며 슬쩍 찬성 의사를 내비쳤다. 이후 아들의 성적은 무서운 기세로 올랐다. 전교 꼴찌에 가까웠던 성적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서 수리 영역 1등급, 언어 영역 2등급, 과학탐구 영역 1.5등급(2개 과목 기준)까지 향상했다.

부모가 자녀를 믿으면 사춘기 극복은 한결 쉬워진다. 김씨는 아들이 수능을 칠 때까지 집에서 공부하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내가 믿지 않으면 누가 내 아이를 믿을까’ 생각하며 잔소리를 꾹 참았다. 강씨는 “나와 내 아이를 믿기 위해 수시로 ‘할 수 있다’고 마음 속으로 되뇐다”고 말했다. 때론 아이를 내 품에서 놔 주는 ‘쿨(cool)’함도 필요하다. “어차피 부모 뜻대로 자라주는 자녀는 그리 많지 않아요. 누군가가 제게 ‘아들의 비행 행동이 걱정된다’고 상담을 요청해오면 ‘절대 말리지 마라’고 조언할 거예요. 부모가 그랬듯 아이도 직접 부딪히며 경험해봐야 세상을 알 수 있거든요.”(이응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