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게임 먼저 배우는 젖먹이들

김덕한 기자

최종수정: 2012-01-31 11:22

[게임, 또다른 마약] <1> 요람부터 게임 중독
돌 지난뒤부터 게임 몰입… 'IT 신동'은 착각, 언어습득 늦고 두뇌발달 해쳐
3~9세 週 평균 3.7회 게임… 10대 청소년보다 훨씬 많아
"병원 찾는 유아 게임중독자 매년 30% 정도씩 늘어"

경수(가명·서울 가양동)는 올해 네 살인데도 말을 잘 못한다. "물" "과자" "엄마"처럼 짧은 단어만 툭툭 내던질 뿐 문장을 만들지 못한다. 경수의 하루는 사실 말이 거의 필요 없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집에 친척이나 손님이 와도 쳐다보지도 않는다.

경수는 갓 돌을 넘긴 두 살 때부터 게임기를 만졌다. 유명 인터넷 카페 운영자인 엄마는 결혼 후 남편과 불화를 빚으며 컴퓨터에만 매달렸고, 경수에게는 닌텐도 같은 게임기를 쥐여준 채 혼자 놀게 했다. 지금 경수는 온라인 게임이든, 스마트폰 게임이든 자유자재다. 말을 배우는 것보다, 또래와 지내는 것보다 게임만 좋아했다. 늪에 빠져버린 경수의 심각한 증세를 엄마는 알아차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게임기를 빼앗으면 경수는 자지러지며 엄마를 때리는 난폭성까지 보였다.


온종일 게임에 젖은 경수의 뇌는 세상과 벽을 쌓았다. 언어를 익히고, 사회성을 배우고, 인성(人性)을 길러가고, 소질을 계발해야 할 경수의 뇌에 게임 외에는 아무 것도 자리잡을 수 없었다.

아이가 잘 가지고 논다고 별생각 없이 게임기를 쥐여준 부모, IT 기기를 잘 만지며 노는 아이를 'IT 신동'이라 착각한 부모, 게임에서도 다른 아이에게 뒤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유아 게임 중독'의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PC, 게임기, 스마트폰이 집집마다 넘쳐나면서 어린 자녀의 게임중독 때문에 '전쟁'을 치르지 않는 가정이 거의 없을 정도다.

기저귀 차고… 이제 두 돌이 막 지난 김시완(사진·경기 용인시)군은 8개월 전, 어머니 류혜영(35)씨가 스마트폰을 구입하자 그때부터 스마트폰에 푹 빠졌다.“ 한번 손에 쥐면 놓을 줄을 모를 정도”라고 한다. 동요가 나오는 애플리케이션 화면을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등 간단한 조작도 할 수 있다. 류씨는“나중에 커서 (게임에) 중독될까 봐 겁난다”며“될 수 있으면 스마트폰을 갖고놀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특히 게임을 처음 접하는 연령이 계속 낮아지고 있어 게임중독이 대한민국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어린 아이일수록 게임하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지난해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실태조사 결과, 게임을 처음 접하는 평균 나이는 2009년 5세에서 지난해 4.8세로 낮아졌고, 일주일 동안 게임을 이용하는 평균 횟수도 3~9세 유아·아동(3.7회)이 9~18세 청소년(3회)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주일에 7회 이상 게임을 하는 유아·아동도 13.5%로 청소년(11.4%)보다 많았다. ‘짱샘정신과상담센터’ 관계자는 “병원을 찾는 유아 게임중독자가 매년 30% 정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중독은 시력·성장발달 장애 등 신체적인 문제를 일으키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유아들의 뇌를 망친다는 점이다.

김현수 관동대 명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3~6세는 뇌 발달과정에서 뇌량(腦梁·좌우 대뇌 반구가 만나는 부분)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며 고차적인 판단력·사고력·주의집중력과 관련이 있는 전두엽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라면서 “유아기의 게임은 전두엽의 기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뇌의 비정상적 발달을 이끌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독성도 유아들이 훨씬 강하다고 지적한다. 디딤클리닉 노원점 최상철 원장은 “유아기 게임 중독은 성장과정에서 언제든 재발할 수 있을 만큼 중독성이 강하며 정신건강의 문제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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