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연인들' 남규리, 왜 착한 아내는 버려졌나

스포츠조선=임기태 기자

최종수정: 2012-09-19 09:15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던 박사출신 대학강사가 세미나에 참석하고자 지방에 내려가던 중, 뺑소니사고를 당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정체성을 잃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지 모를 정도로 도움이 절실했던 남자는, 한 여자를 만나 살림을 차리고 아들을 낳았다. 그렇게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 명의 아내가 생겼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기억을 상실한 지 7년이 지난 뒤, 남자는 현자의 남편 민영태(유동근)이기 전에, 나영(김희애)의 남편 한상진(유동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003년 방송된 드라마 '아내'의 스토리라인이다. 기억을 찾은 동시에, 남자의 고통은 시작된다. 자신을 대신해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했던 예전의 아내 나영은 행방불명된 자신을 7년간 기다려 주었고, 지금의 아내 현자는 신원이 불분명할 뿐 아니라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자신을 7년 간 보살펴주고 사랑해주었다.

두 아내 모두 남편이 옆에 있어 주길 원한다. 남자에겐 두 아내 모두 소중하다. 하지만 동시에 아내 둘을 가질 순 없다. 때문에 그도, 두 아내도 고민과 혼란을 겪게 되고, 결국 남자는 예전의 아내였던 나영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남자는 현자를 그리워하고, 그의 마음을 아는 나영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지켜보는 시청자조차 의견이 엇갈린다.

남자는 과연 누구를 선택해야 이치에 맞고 공감을 살 수 있으며, 행복한 결말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일까. 드라마 '아내'안에선 사실상 답을 찾기 힘들다. 결국 제작진조차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두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남자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수술대에 오르고, 남자의 죽음을 암시하며 52부작 드라마 '아내'는 끝이 난다. 두 아내사이에서 갈등하는 남편을 죽음으로 내모는 열린 결말이라, 돌이켜보면 다소 황당하지만 드라마라는 관점에서 일정부분 납득이 가고, 타이틀 '아내'라는 점에서 두 아내 김희애-엄정화에겐 공평한 결말이 된 셈이다.

18일 방송된 KBS월화드라마 '해운대 연인들' 13회를 보면서, 10년 전에 방송된 드라마 '아내'가 문득 떠올랐다. 전반적인 극의 분위기나 완성도면에선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으나, 드라마 '아내'의 소스를 '해운대연인들'에서 꽤나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중 이태성(김강우)은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남해가 됐다. 이태성에겐 진짜로 결혼한 아내 윤세나(남규리)가 있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해에게도 남들 눈을 속이기 위해 부부행세를 했던 가짜 아내 고소라(조여정)가 있다.

해운대연인들 13회에서 이태성은 기억을 완전히 되찾았다. 고소라를 짝사랑중인 최준혁(정석원)덕분에(?) 태성은 기억뿐 아니라, 죽은 해운대호텔의 사장 양만호의 친자임이 밝혀졌고, 양아버지와 아내 윤세나와도 재회했다. 즉 기억과 핏줄, 아내, 해운대호텔을 동시에 찾은 이태성으로선 모든 게 명확해졌다. 단 하나, 태성에겐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했던 가짜 아내 고소라가 가장 큰 난제로 떠올랐다.

여기서 드라마 '해운대연인들'은 시청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태성이 사랑이 아닌 부모님의 권유로 선택해야 했던 아내 윤세나에게 돌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현재 사랑해서 연인이 된 고소라에게 남아야 하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태성과 윤세나는 결혼식을 올렸고 신혼이나 공식적인 부부이기에, 세나에게 돌아가는 게 맞다. 이태성이 고소라를 통해, 예전에 갖지 못한 사랑을 느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이태성의 태도는 단호했고 그래서 아쉬웠다. 아무리 고소라를 사랑한다해도, 자신만을 애타게 찾고 그리워한 아내 윤세나를 차갑게 외면할 수 있는가. 한 치의 망설임없이 아내 세나에게 이혼을 통보하듯 얘기하고, 소라에게 달려가 내게 사랑을 가르쳐 준 '너만 있으면 돼.'를 말할까. 이태성의 그러한 태도가 마냥 멋있게 보이진 않았다.




여기에 착한 아내를 순식간에 악녀로 만드는 제작진의 독한 소스가 가미된다. 남편 태성을 찾자마자 만 하루도 안 되어 버림받은 아내 세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는, 법무부장관인 아버지의 권력을 남용해 태성의 마음을 되돌리려 한다. 소라에게 마음을 빼앗긴 남편 태성을 찾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강한 집착을 드러냈다. 그 착하고 순하던 천사표 세나가 순식간에 악녀로 돌변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서브여주인공의 비애로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제작진이 주인공 커플인 '이태성-고소라'를 아름답고 애틋하게 포장하기 위해선, 방해가 될 수밖에 없는 착한 아내를 악녀로 둔갑시켜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윤세나가 악녀였고 사생활이 방탕했다면 모를까. 착하고 순했던 아내를 저급한 술수나 동원하는 여타 드라마에 흔한 악녀로 탈바꿈시킨 건 개운치 않았고, 그동안 유쾌하게 진행됐던 해운대연인들만의 독특한 색깔도 빛바래졌다.

'해운대연인들'을 보면서 드라마 '아내'를 떠올린 건, 기억상실증을 겪은 남자와 두 여자(아내)라는 일부 닮은 설정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달랐다. 드라마 '아내'는 만드는 제작진도 보는 시청자도 답을 구하기 힘들었다. 덕분에 주인공 못지않게 시청자를 갈등하고 고민하게 만들어, 끝까지 긴장과 재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해운대 연인들'은 제작진이 질문속에 답을 제시해 선택의 여지를 없앴다. 바로 착한 아내였던 윤세나를 흔한 악녀로 둔갑시켰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청자의 고민은 사라졌지만 아쉬움을 남겼다. <한우리 객원기자, 대중문화를 말하고 싶을때(http://manimo.tistory.com/)>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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