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친구 구할 때, 선장은…진도=김경필 기자 news@vanchosun.com 선장·선원들, 승객은 뒷전… “빠져나오기 바빠 승객 구조는 생각도 못했다”
배가 침몰하는 2시간 동안 여객선 선원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던 것일까. 침몰된 세월호에서는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지만, "1호 탈출"을 감행한 선장을 비롯해 선박을 끝까지 책임져야 할 선원 상당수가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일찌감치 대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당시 세월호에는 선장과 1등 항해사 2명, 2등 항해사 1명, 3등 항해사 1명, 갑판장, 조타수 3명, 기관장 1명 등 직원 30여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들은 침몰 때까지 선내 안내방송을 맡았다 숨진 채 발견된 박지영(여·22)씨를 제외하곤 대부분 구조된 것으로 전해졌다.
목포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선장 이모(69)씨는 가장 먼저 탈출 행렬에 합류했다. 이씨는 최초 선박 좌초 신고가 접수된 지 40여분 뒤인 오전 9시 30분쯤 배 밖으로 나와, 오전 9시 50분쯤 해경 경비정에 의해 승객 50여명과 함께 구조됐다. 기관사 및 조타수 등 선원 6명도 이 첫 구조 그룹에 속해 있었다. 경찰은 이씨를 불러 사고 경위를 조사했고, 선박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그를 구조 작업에 동원하기 위해 사고 지역으로 다시 보낸 상태다. 선장 이씨가 당초 운항을 맡기로 했던 신모(47)씨를 대신해 사고 선박을 몰았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일부 네티즌은 "이씨가 대리 선장이어서 무책임하게 가장 먼저 배를 버리고 나온 것이냐"고 비난하고 있다.
생존자들은 "선원들이 승객들을 제대로 대피시키지 않았다"는 증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정복진(17·단원고 2)군은 "아무도 상황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려주지 않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반복했다"며 "본능적으로 헤엄쳐서 나오지 않았다면 배 안에 갇혀버렸을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다닌 사람들은 교사와 동료 학생들이었다. 임모(17)군은 "구명조끼를 입고 방 안에 있는데 선생님들이 오시더니 문을 열면서 즉시 바다로 뛰어들라고 하셨다"며 "바다로 뛰어들자마자 배 끝까지 물이 차올랐다"고 말했다. 이모(여·17)양은 "휴대전화가 터지는 아이들은 경찰에 전화를 하거나 친구들끼리 메신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다독였고, 여객선 밖으로 탈출할 때에도 서로 뒤에서 밀어주거나 손을 잡아줘 구조를 도왔다"고 했다. 김모(38)씨도 "헬리콥터가 오자 승객들끼리 서로 합심해 한 명씩 밧줄로 끌어당기면서 이송시켰다"고 말했다.
한인 사회의 중요한 소식을 캐나다 서부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제보 이메일: news@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