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자살, 미국의 5배(10만명 당 19.7명)… 15년 동안 자살 3배 급증

김동섭 보건복지전문기자 dskim@chosun.com

최종수정: 2012-03-19 14:53

[김동섭 복지 전문기자의 심층 리포트] 1996~2010년 한국인의 자살 변화 분석
여성 자살률 OECD 중 1위 - 맞벌이·자녀교육 이중스트레스, 우울증인지 몰라 치료시기 놓쳐
노인 자살 28% 늘어 - 노인 빈곤 등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안 갖춰져 '극단' 선택
교통사고 사망자의 2.3배 - 남편사별 女·이혼男 자살 늘어… 월별로는 4·5월에 많이 발생

고교 1년생 이모(16)양은 작년 5월 학교에서 자살을 시도해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심한 우울증이라는 병원 진단이 나왔다.

이양은 왜 자살하려고 했을까. 이양은 보증금 400만원에 월 40만원짜리 지하 단칸방에 부모와 언니 등 네 명이 산다. 아버지는 막일을 나가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한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속내를 털어놓을 가까운 친구도 없다. 혼자 망상에 잠겨 '환청'에 시달리고 충동적인 생각에 곧잘 빠진다. 그러나 그를 도와주거나 상담해줄 사람은 주변에 전혀 없었다.

한국이 자살 수렁에 빠져 있다. 독일·덴마크·오스트리아 등 OECD 대다수 국가는 1995년부터 2009년까지 15년간 자살률이 30% 이상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한국은 오히려 같은 기간 자살률이 153%나 늘었다. 왜 한국만 자살률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일까.

◇자살자가 교통사고 사망자의 2.3배

한국은 1990년대 초만해도 자살의 무풍지대였다. 자살 사망률이 10만명당 7.3명에 불과해 자살은 개인적인 불행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자살이 급증해 2003년부터 교통사고 사망자를 앞지르기 시작, 지금은 교통사고 사망자의 2.3배나 된다.

본지가 19일 1996년부터 2010년까지 15년간 한국인의 자살 특징을 분석한 결과 여성과 노인 자살자가 급증하고, 고학력자·전문직·이혼자 자살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여성 자살자는 이 기간 동안 1853명에서 5237명으로 2.8배 늘어난 반면 남성은 2.5배 증가에 그쳤다. 한국 여성의 자살률은 2009년 10만명당 19.7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다. 그리스에 비해 무려 25배이다.

특히 미국·영국·독일 등 대부분 국가는 여성 자살자가 남성의 1/3~1/4에 그친 데 반해 한국은 여성 자살자가 남성의 절반(50.7%)이나 된다. 사승언 정신건강과 의사는 "한국도 1980년대 초만해도 여성 자살자는 남성의 1/3이었다"며 "여성 자살이 급증한 것은 우울증 유병률이 남자의 3배나 되고, 사회 활동이 갑자기 늘면서 경제적인 짊과 자녀 교육 등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받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울증인 줄 몰라 치료를 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많은 것도 주요 원인이라고 했다.

1996년에는 20·30대 자살이 많았지만 지금은 30대 이하는 줄고 40대 이상 자살자가 늘고 있다. 20·30대 자살이 사망원인 중 1위가 된 것은 교통사고 등 다른 사망원인이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65세 이상 자살자 비중이 10.5%에서 28.1%로 껑충 뛰었다. 노인 인구가 늘면서 노인 빈곤 등 사회 안전망 부재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고학력·전문직·관리직들의 자살도 늘어났다. 자살자 중 대졸 이상 비중이 12.9%에서 24.4%로 배 가까이 늘어났다. 미혼·기혼자의 자살 비중은 줄고 이혼자의 자살 비중은 5.7%에서 12.8%로 껑충 뛰었다.

특히 이혼 남성과 사별 여성의 자살이 크게 늘어나 이혼이 남성에게, 사별은 여성에게 치명적이란 사실을 보여준다. 자살률은 도시보다 농촌이 높아 충남이 가장 높았다. 농촌지역이어서 주변에서 자살 징후를 알기 힘들고, 의료기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게 원인으로 분석된다.

자살은 4월(하루 31.6명)에 가장 많았다. 이어 5월(31.5명), 6월(30.5명), 7월(29.1명)순이었고 1월(20.7명)이 가장 적었다. 전문가들은 "4~5월에 집중적으로 자살 예방 캠페인을 펼쳐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울증·조울증 증가가 큰 원인

보건복지부의 '2011년 정신질환 실태 조사'를 보면 자살을 고민한 적이 있는 사람은 100명 중 16명이고, 실제 자살을 기도한 것은 100명 중 3명이었다. 한해 10만8000명의 한국인이 자살을 기도하는 셈이다.

이는 정신질환 증가와 관련이 있다. 자살자의 90% 이상이 정신 장애가 있고, 그중 60~80%가 우울증을 앓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5.6%(2006년)에서 6.7%로 늘어났지만 실제 병원에 간 경우는 고작 15.3%에 그친다. 연세대 의대 민성호 교수는 "핀란드가 자살원인을 밝히는 '심리적 부검'을 통해 자살률을 크게 줄였듯이 우리도 정신질환 등 자살원인을 밝혀내 이를 근거로 자살 예방 종합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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