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한 이미지 때문에 내 열정 가려질까 걱정”

조선일보 이영민기자

최종수정: 2012-12-14 09:16

[영화 '반창꼬' 주연 고수]
마음 가는 시나리오 항상 달라… 방황하던 시기엔 '백야행' 욕심 없이 살 땐 '초능력자'
이번엔 일에 몰두하는 소방관, 요즘 연기 의욕 가득하거든요

배우 고수(34)는 질문에 답하기 전 꼭 10초 정도 고민을 했다. 대답 중간에도 "어…" 하는 소리를 내며 생각을 하는 터라, 대답이 마냥 길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술자리를 좋아하지만 반드시 10시에는 귀가한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한다" 같은 '교과서적인 생활 이야기'도 나왔다. 데뷔 시절 한 음료 광고에서 "지킬 건 지킨다"며 여자친구를 통금 시간 안에 데려다 주던 반듯한 청년은 10여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여전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고수를 만났다. 그는 19일 개봉하는 멜로 영화 '반창꼬'(감독 정기훈)에서 소방관 '강일'을 연기했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아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상처를 간직한 캐릭터다.

"강일이 3년 전 아내와 사별했다는 설정이에요. 3년이면 그 아픔을 마음속에 묻어놓고 자기 일에 몰두할 것 같다고 생각했죠."

 1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한 고수.“ 카메라 앞에서는 굴곡이 심한 인생을 연기하는 만큼 일상에서는 최대한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덕훈 기자
그렇게 고수는 겉으로는 까칠하지만 속으로는 잔정이 많은 인물을 표현해냈다. 취중에 죽은 아내를 떠올리는 장면에서는 가슴 찡한 눈물 연기를 펼쳐 시사회 때 호평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기존의 한국 멜로 영화와 달리 주인공의 사랑에만 초점을 두지 않는다. 소방관인 남자주인공은 구조 대상자의 목숨과 자신의 안전 때문에 갈등을 겪고, 의사인 여주인공(한효주)은 의사의 윤리적 책임에 대해 고민한다. 고수는 "공익근무 소집해제(2008년) 이후 했던 역할들이 대부분 실생활에서는 보기 어려운 캐릭터였다"며 "반면 강일은 자극적이지도 않고 아주 일상적인 인물이라 선택했다"고 했다.

"그때그때 제 상황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달랐습니다. '백야행'을 할 때는 저 역시 방황하던 시기라서 어두운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초능력자' 때는 영화 속 규남이처럼 변화나 욕심 없이 사는 것을 꿈꾸던 시절이었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해온 영화들이 스릴러, 전쟁액션, 멜로 등 각양각색이더라고요."

1998년 가수 포지션의 뮤직비디오로 데뷔한 고수는 '엄마야 누나야' '피아노' 같은 드라마로 인기를 얻었다. 그러다 군 복무를 끝낸 이후에는 주로 영화에만 출연하고 있다. 그는 "배우 생활 초기부터 영화를 하고 싶었지만 커다란 스크린을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며 "소집해제 후 용기를 내니까 단기간 집중해서 만들어내는 영화의 매력이 보였다"고 했다.

그는 "영화의 흥행은 단지 보너스 같은 것"이라며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촬영하고 작품에 대해 자부심만 가질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의미의 흥행"이라고도 했다.

고수는 최근 영화 시사회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영화가 관객 200만명을 넘기면 관객과 함께 데이트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범람하는 '흥행 공약 던지기'에 그도 동참한 것일까? 그는 "이벤트라기보다는 한국 영화배우로서 영화를 아껴준 관객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한 말"이라며 "집앞에서 기다렸다 만나서 같이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니며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다만 데이트하게 될 분이 나와 함께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라며 웃었다.

그의 모든 대답이 외모만큼 반듯했다. 그는 "3~5개월 주기로 새로운 일을 찾는 패턴 속에서 긴장하며 살다 보니 덜 늙는 것 같다"며 "하지만 (외모가 주는) 이미지 때문에 나의 진면목이 가려질까 봐 걱정도 된다"고 했다. "예전에는 제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캐릭터가 들어올 때마다 '난 아직 부족하고 준비가 안 됐다'며 회피했죠. 하지만 지금은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아요. 지금까지 많은 부분을 외모로 해왔다면 이제는 열정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한인 사회의 중요한 소식을 캐나다 서부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제보 이메일: news@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