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해님이 뿔나온 세상 불났다꼼짝 마라곰 퇴치 법 전령이 내려지고치솟던 미루나무어깨 축 늘이고 죽은 시늉이다촐랑대던 너른 들판납작 엎드려 자는 척이다옆집 멍멍이긴 혀 빼 내밀고 숨 넘어 간다나 혼자눈망울만 굴려 보초 서고 있다아 미처 피하지 못한 한 조각 뭉게구름삼십육계 병법 잠시 떠올리다녹아 붙은 두 다리 잡고 금세 포기한다뻘겋게 달군 해님 뿔났다잡히는 대로 번쩍 꽝 따르르륵....장대 번개 총 소리앗! 최전방 뭉게가비틀비틀 먹...
한부연
노인이 걷는다. 누가 뭐래도, 초원에서는 볏짚으로 만든 신발만을 고집하는 노인이다. 그가 발걸음을 크게 떼면서 위엄 있게 들판을 천천히 걷는다. 오직 한 소년만이 노인의 뒤를 따르고 있다. 소년의 뒤는 작은 반달가슴곰을 닮은 태즈메니아 데빌이 따라 걷는다. 천 주나 되는 배롱나무가 잘 자라도록 잔 가지치기를 한나절 만에 끝낸 뒤다. 열이 난 몸을 식혀야 했다. 청회색을 띤 흰색의 매끄러운 줄기와 회녹색의 둥근 잎을 뽐내는 유칼립투스 나무...
박병호
모방과 표절 2022.08.03 (수)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던 말이다. 나쁜 의미에서의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작하기 위한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예술적인 작업이 창작이 아닌 우리가 주변에서 접하는 자연을 바탕으로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이 창작이 아닌 자연에 대한 모방으로 보았던 것이다. 실질적으로도 자연을 바라보면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고,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
정재욱
언제부터 인가 익숙한 습관처럼검은색 머리카락은 스스럼없이흰색으로 은근슬쩍 탈바꿈 하고머리칼처럼 제 각각인 시간의 흔적은기억 의 골목 골목을 누비다가새삼스러운 듯 거울 속을 낯설어 한다홀 씨처럼 가벼워 날아가기만 하는 시간은후회의 쓰라림에 오염 되어있어문득 서서 뒷걸음을 떼어보면달려왔던 길의 역주행처럼서툴고 새삼스러워 하네그런 것들이 모여 녹슨 지난 시간은머리칼에, 얼굴 위에다시는 펴지지 않을 깊은 주름을 접어...
조규남
소슬한 기다림 2022.07.26 (화)
기다린다는 것은 기대와 설렘이 동반된다.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를 떠오르게 하는 즐거운 유년의 소풍 가는 날, 설 날 추석날 새 옷 입고 세뱃돈 받는 날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 보고 싶은 친구의 소식,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늘을 보내면서 내일은 더 좋은 일만 생길 거라면서 또 희망을 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더 하고 상처도 크지만 기다림에 거는 기대 또한 크다. 사람을 설레게도 하고 무엇의 결과를 위해서 마음을...
김베로니카
날 저무는 창가에 홀로 앉아어둠을 맞는 시간어쩐지 사람이 그립습니다하얀 박눈같은 미소를 지녔음직한 잔잔함으로가슴 깊이 스며드는참 사람의 향기가 그립습니다.힘겨울 때 의지가 되고내 눈물 닦아 위로가 된 사람나의 허물 덮어주고내 부족함을 고운 눈길로 지켜주는 사람한번 밝혀둔 마음의 등불을 깨뜨리지 않는 사람인생의 여정을 함께 하며 진실한 의미가 되는 사람삶을 사랑하며사랑을 귀히 여기는 사람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한...
이봉란
할아버지 똥 지게 2022.07.26 (화)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 얼씨구 절씨구 차차차”함박눈 내리듯 소리 없이 사뿐사뿐 발을 내 딛으며, 움직이듯 움직이지 않는 듯 나비의 날개 짓 처럼 하늘 하늘 어깨 춤을 추며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시다가도, “이 노래는 잘못되었어. 젊어서는 일해야지. 놀긴 뭘 놀아” 하시며 역정을 내신다. 젊어서 부터 살기 위해 놀 틈도 없이 사셨던 할아버지는 젊은 사람들의 놀이와 게으름을...
박광일
별 뜨는 남대문 막장이 열린다희미한 불빛을 여는 포장마차가연체동물로 움직인다꼼장어 물 오징어 튀김 잡채 꼬치 안주가일렬로 늘어서 있다노동의 만찬이다.전등불 사이로 노숙자 이불도 덤핑 운동화도남대문 자정 풍경이다더러는 문 닫은 세상도 있고밤새도록 문 연 세상도 있다밤을 택배로 전국에 보내고 나면골목 장 길을 오토바이가 달리다가어둠 끌고 가는 곳은 족발 집이다그 식당 앞에서 구걸하는 아기 업은 여자는동전 한 잎...
강애나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