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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딸이 지난 5월 멕시코 칸쿤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5월의 신부가 되었다. 양가 직계 가족과 신랑, 신부 친구들 각 3쌍씩만 초대한 조촐한 결혼식이었다. 신랑, 신부 친구들은 7박 8일간의 모든 경비를 자비로 부담했다. 따로 청첩장도 만들지 않았고 축의금도 일체 사양했다. 반강제로 주시는 분들만 어쩔 수 없이 받았다.칸쿤 공항에 도착하니 수십 명의 제복 입은 직원들이 일렬로 도열해서 우리를 영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택시...
이현재
검푸른 바다 위로 내리 꽂히는Plunging over the dark blue sea이른 아침 태양의 광선Rays of the early morning sun총총한 윤슬이 별 무리되어Sparkling ripples become a group of stars고즈넉이 흐르고Quietly flows따라붙는 그 후광의 빛 줄기안에 Within the light of the halo that follows노 젓는 또 다른 나Another me rowing또렷한 내 그림자의 호젓한 동행The quiet companion of my clear shadow때를 만난 달덩이 물해파리 떼A swarm of Moon jellyfish met at the right moment내 발 밑에서 보란 듯이 몽실몽실...
김혜진
가난한 부자 2023.08.21 (월)
 지난 여름. 마치 홍역을 치르고 난 아이처럼 휘청거리는 다리로 과수원을 한 바퀴 돌았다. 아침 이슬이 파랗게 내린 풀 섶은 영롱한 구슬이 구을고 엊그제 씨를 넣은 열무 밭엔 씨를 물린 열무 잎이 속속 솟아나고 있다. 내가 아팠던 며칠, 상치는 냉큼 커서 꽃망울을 줄줄이 달고 섰고 땅을 기던 호박 넝쿨은 어느새 기어 올라 아카시아 나무 기둥을 칭칭 감았다.  가슴을 활짝 편다. 기지개를 켠다. 푸성귀 냄새 같은 바람이다. 달그므레한 젖 내...
반숙자
능소화 마을 2023.08.21 (월)
문익점 18대 손 문경호가 500년 전이곳 인흥 마을에 터를 잡았다그 뒤 같은 집안 대소 아홉 가구가이 마을에 자리를 잡고 산다붉은 흙 벽돌 흙 담들이골목 이쪽저쪽에 예스럽게 서 있다한옥의 기와 지붕과 어우러진 골목길언제나 변함없이 고풍스러운 멋을 보여준다그 흙담 위로 6월이면 능소화 곱게 핀다붉게 피어나는 꽃붉은 빛이 붉은 담과 어우러져 눈부시게 환하다양반 집 앞마당에 심는다는 양반 꽃붉은 빛이 여염 집 여인네처럼 보이지...
조순배
2023.08.21 (월)
또다시 나는 문밖에 갇혔다소용없는 줄 알면서 문고리를 흔든다열쇠가 오려면 한참,내 앞에서 열리지 않는 문 안의 모든 것들이가질 수 없으니 더없이 간절하다냉수 한 잔의 청량감과 낡은 소파의 아늑함목이 마르고 허리가 아파올수록간절한 것들이 때로 얼마나 하찮은 것들인지'가끔 문밖에 갇히는 것도 괜찮겠네'눈을 감고 콧바람 한숨을 웃는다 호두 알맹이처럼 쪼글거려야 할 나의 뇌 주름은날마다 밀려오는 파도에 바위가 깍이듯아침저녁 내...
윤미숙
   여느날 처럼 나는 일산 탄현에서 내 차로 서초동 사무실까지 갔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엘리베이터를 타러갔다. 출근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이 붐비고 있었다. 잠시 줄을 섰다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빽빽하게 들어섰다. 서로 몸을 비빌 정도로 콩나물시루가 되어 문이 서서히 닫혔다. 막 움직이려 하다가 쿵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어, 이거 뭐야’하는 표정들로 서로의 얼굴을 보는 듯했다.    곧 다시...
심현섭
  나는 성격이 매우 급하다. 아니, 급해졌다. 그리고 이런 내 성격이 나는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급한 성격은 사회생활을 통해 변해버린 것으로, 원래의 나는 아주 느긋하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마저도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의 이야기라 정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그때는 지금과 같은 고통스러운 마음이 한참 덜했던 것도 같다.어린 시절 부모님이 너무 느긋한 내 성격 때문에 ‘속 터진다’는 이야기를 곧잘 하셨다....
윤의정
할머니 꿈 2023.08.21 (월)
빨랫줄에 걸린 이불 홑청을 볼 때 마다할머니 생각난다풀 물에 담가서 마른 잎사귀처럼 바스락 거리던 홑청할머님의 신발과 지팡이를 치우던 날하얀 홑청이 눈물이 되어 한 장의 젖은 손수건이었다항상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시며고향으로 가실 꿈을 꾼 할머니손 마디 굵은 주름 구부러진 손가락삐뚤 빼뚤 오라버니 전 상서는어릴 적 하얀 이불 홑청 속숨바꼭질 생각난다는 할머니갈 낙엽으로 메말라진 몸매에도어릴 적 상상의 꿈을 간직한 소녀...
강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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