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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꽃 2018.05.30 (수)
 알버타 북쪽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길다. 딱 잘라 일 년의 반이 겨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우리 가족이 이곳으로 이사를 온 건 겨울 중에서도 가장 춥다는 1월이었다. 주위를 사방으로 둘러봐도 보이는 건 하얀 눈뿐이었다. 꽁꽁 언 이 땅에도 과연 봄이 오는 걸까? 그런 불안감이 들 때마다 난 이삿짐을 쌀 때 거듭 확인하며 챙겨 온 분홍꽃 꽃씨를 펴봤다.   우리 가족이 캐나다에 첫발을 내디딘 건 2000년이었다. 땅을 바꾸면...
박정은
아내의 밥상 2018.05.30 (수)
가만히 받고 보면 내 심장이 한상이다창조의 질서가첫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상큼하게 양념쳐 있다 밤과 낮채소와 자연사람의 생기까지반찬 하나에우주를 버무렸구나.                  ~•~•~•~•~•~•~입만 즐겁고자 한다면 밥상을 받아들고 할 짓이 못된다. 하나의 나물에 버무려진 바람과 태양, 물과 시간, 그리고 여인의 사랑까지 다 통과하지 못한다면 수저에 손을 올리지 말아야 한다. 제아무리 맛있는...
김경래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임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임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바위고개 피인 꽃 진달래꽃은 우리 임이 즐겨 즐겨 꺾어 주던 꽃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임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십여 년간 머슴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 집니다” 삼 년 전 가을 어느 날 모교인 숙명여고 동창회로부터 그 해 여름에 별세하신...
김진양
마른 꽃 2018.05.30 (수)
마른 꽃 한 송이차마 너를 버리지 못하네서걱이는 바람 소리작은 손바닥에 울리면어머니의 몸처럼가벼운 너진달래 꽃으로 피어나던 너의 봄은지금 어디에뻐꾸기 울음을 삼키던너의 슬픔은 어디에가벼이 떠도는 새털 구름 오늘 아침에도 찾아오신마른 꽃 한 송이
신금재
얼마 전 스페인 여행 중에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과 이와는 대조를 이루는 당나귀 택시가 있는 미하스의 하얀 마을을 다녀왔다.    피카소의 유명한 그림 중에 “게르니카(Guernica)”라는 것이 있다. 이 그림 속에는 하나같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사람과 짐승들이 처참한 모습을 하고 공포에 질려 있다. 그림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억울하고 분에 북받친 듯한 비명과 아우성이 들려오는 착각 속으로 빠져들게까지 한다....
권순옥
어느 봄날 2018.05.24 (목)
어느 봄날열다섯 소녀들의 국어 시간선생님은 봄이 좋단다난 가을이 좋은데또 말씀하신다봄이 좋아지면 늙은 거라고몇 해전부터봄이면 개나리, 진달래빛 스웨터를 입은소녀들이 예뻐 보이고나는 또 병아리처럼양지바른 곳만 찾아든다봄내음 가득한냉이국, 달래 무침이 상에 오르고아이들에게 묻는다어느 계절이 좋으냐고가을이란다마흔 아홉난 봄이 좋은데.
오정 이봉란
암에 대한 상식 2018.05.24 (목)
스티브 잡스가 재발한 췌장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링거액이 떨어지는 물방울을 쳐다보며 곧 죽게 되는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돈은 가져갈 수 없고, 사랑에 대한 기억은 가져갈 수 있으며,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건강에 관한 책을 읽지 않은 것이라고 술회했다.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듯이 암을 알면 암을 이길 가능성이 크다. 최근 주위에서 암으로 사망하는 지인들이 너무 많음을 목도하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특히 젊은...
尤善김명준
열대어 가게 안은 어둡고 촉촉한 습기가 가득했어요. 바닷속 같은 수족관에는 예쁜 열대어들이 수초 사이로 몰려다녔어요. 구석진 수족관에서 거북이들이 가게 안을 살필 때, 주인아저씨는 무언가를 망설였어요. “어쩔 수 없지, 작은 유리병을 사 올 때까지---.”열대어 가게에 팔려온 우리 베타 피시들은 한 수족관에 넣어졌어요. 그 전에 우리들은 작은 유리병에 혼자 살고 있었어요. 우리는 곧 서로 아름다운 꼬리를 뽐내며 자랑했어요. “잘...
조정
그 누구를 위해서일까그 무엇을 위해서일까 평생토록 하루도 거름 없이새벽을 깨우시는 우리 어머님 지난겨울 그 혹한 멀찍이 밀쳐낸 동구 밖어린 날 늘 내 귀가를 기다리시던우리 고향 마을 무릉도원 길 올해도 복사 꽃 흐드러져그 꽃불 미소환히 빛 밝히고 계시겠지 일제 치하 육이오 그 혹심했던 수난의 세월수선화보다 더 가냘팠던 어린 남매 데불고무명 잣기 명주 길쌈그 북채 실오라기 한 올 한 올 눈물 젖은 기도문들 촘촘히...
남윤성
최고의 밥상 2018.05.14 (월)
“천천히 마이 무라이, 거선 이런 거 묵기 힘들 낀데.” (천천히 많이 먹어라, 그곳에선 이런 음식을 먹기가 쉽지 않을 건데.)팔순 할머니가 막내 아들에게 아침상을 차리며 건넨 한마디다. 아침 일찍부터 어머니가 쌀을 씻고, 딸그락 딸그락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아직 시차에 적응을 못한 탓인지 일찍 잠이 깨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간, 멀리서 “두부 사려~, 비지”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도 두부 파는 아줌마의 정겨운...
정재욱
후회 2018.05.14 (월)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오후길을 걷는 발자국마다 몰라서 못했고알아도 못했던때 늦은 후회를 씻어내고 싶다.회색 빛 거리에 서면수 많은 생각들로방황하다 놓아버린기회의 순간들을 기억해위로 받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백세시대를 향해인생은 육십부터라는 외침도변명으로 들리는 아픔이 되면주름진 사이 사이세월의 갑질로 저당 잡힌 청춘의 외로운 발걸음들이온 힘을 쏟아내어열고 싶은판도라의 상자는 어디에?
장의순
생명을 죽이는 물 2018.05.07 (월)
이 세상 생명에 꼭 필요한 것은 태양 에너지와 산소와 물, 그리고 영양분이다. 먼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광합성을 하는 플랑크톤이나 식물에서 먹이 사슬이 시작된다. 그러니, 태양 빛은 모든 생명에 꼭 필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빛이 없는 캄캄한 깊은 동굴 속에 사는 생명이 있다. 만약 지구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 빛이 영원히 오지 않는다면 지구는 엄청 추워질 것이다. 그 정도로 지구 온도가 낮아진다면 햇빛 없이 살아 시각이 완전히...
송무석
사랑할 수 있다면 2018.05.07 (월)
뫼비우스의 띠그대를 만나고그대를 보내고늘 내 안에 있는 당신그대를 사랑해내가 외로울 때 별을 통해 사랑을 알려 주는그 순간 기억해판도라의 상자 속에세상이 숨어 있네오랜 시간이 흘러그리움의 시간이 길어졌네먹먹한 가슴에이젠 비가 되어 내리네판도라의 상자 속에추억이 숨어 있네사랑한단 말을 하고 싶어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줘너만을 사랑하고 있다고언제까지나판도라의 상자 속에서나는 아직도 사랑 찾아숨바꼭질하고 있네.
혜성 이봉희
지구 별 뒤편 2018.05.07 (월)
저기 저 등 구부리고 가는 이 누구인가그의 어깨엔 알 수 없는 그늘이 걸려 흔들리고강물 소리 강 언덕 저 너머로 멀어지는데길 잃은 새 떼들 겨울하늘에 원 그리며 간다나는 세상 안에서 세상 바깥에서문득문득 오던 길 되돌아보지만거기엔 움푹움푹 파인 발자국뿐발자국엔 빗물 같은 상처만 고여 길을 내고 길을 지운다풀잎 같은 목숨, 이 광활한 우주 한복판에서 먼지처럼 밀려가고 밀려오는 생, 생의 어깨들나는 어린 왕자 같이 마지막 지구별을...
이영춘
현관 등을 갈다 2018.05.07 (월)
현관에 등이 나갔다. 센서 등인데, 집 안에 있을 땐 전혀 불편함이 없다. 들어오는 순간, 그리고 나가는 그 순간에만 깜짝 놀랐다. 어둡다. 신발을 신으러 혹은 벗으러 들어선 현관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깜깜하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아, 등 갈아야겠다.’   그래도 집 안에 들어온 이후로는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등을 갈아야 한다는 사실은 잊어버린 채, 내 일을 하기 바쁘다. 아니 실은 회사를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남는...
윤의정
길 그리고 글 2018.05.01 (화)
주말 모처럼만에 문협 모임에 나가 오랜만에 반가운 문우들과 담소를 나누고 돌아왔다. 첫 화두로 나눈 것이 한국어의 순 우리말 가운데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중요단어들은 대부분이 1음절이며, 또한 ‘ㄹ’받침을 가진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다리로 걸으면 ‘길’이 되고, 손으로 써 내려가면 ‘글’이 되며, 생각을 담아 입을 열면 ‘말’이 되는 것이다. 내 정신을 ’얼’이라고 하며 내 모습은 ‘꼴’이라 하니 둘이 만나 하나를 이루면...
민완기
 “엄마도 그런 것 먹을 줄 알아?” 뼈 속까지 다 발라 주던 날도 멀리무겁다 못해 빈 껍질이 된 현실의 부모이기적으로 변하여야만 사는 세상인가꽃으로 뭉갤 생각 말라고 엄마는 미리 못을 박은 게다인내의 한계가 온 게다 한 것 분이 난 게다 공경(恭敬)의 시절은 캄캄히 멀어진고국의 지하철 안에서 놀란 풍경이 된 나아득하여 욱 멀미가 일고 천둥이 쳤다더 무슨 말을 하랴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했던그것을...
강숙려
시절을 거스르는 낯 선 땅 묻혀 살며축복의 오월 앞에 엎드린 그댈 본다롭슨 봉* 하늘을 찌른 오만함이 몇 자인가 햇살이 부쳐내는 화전이 그러하고바람이 쌓아 올린 공덕이 그러하듯이곳에 널린 야생 초 입술마저 고운 날 본분을 잊었는지 고산高山이 무너졌다골마다 도랑마다 빙하가 녹는 소리시간을 거스른 것들 여름을 쫓고 있다. *롭슨 봉: Mt.Robson 캐네디언 로키의 최고봉으로 3,954m임.
이상목
냄새 2018.04.23 (월)
가끔 머리 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말도 못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길 듣곤 했는데 그 날그 자리에서 내가 그랬다.산만하게 풀려버린 생각의 끈이 미처 동여매여지기도 전에 눈만 말똥거리다 맥없이 허를 찔린 기분이다. 아니, 전혀예상치 못한 뜻밖의 물음이라 질문의 요지조차 간파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옳다. 게다가 순발력을 발휘해재치 있게 받아 쳐보기엔 나의 사고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의외로 너무 이성적이다. 얼마 전에 나는 문학에 관심이...
섬별 줄리아 헤븐 김
강물처럼 살다가 2018.04.23 (월)
            이 땅에서 실향민으로 30년 ,  세월이 갔다            참으로 갈 곳이 없는 때도 있었다            무일푼처럼 허전한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노동 사이 사이            흙바람 부는 조국을 바라보며            시를 써댔다           시인이여, 시인이여 그대         ...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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