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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멍얼멍한 하늘을 보고 잠에서 깨어난다. 팀원들은 어젯밤 하늘의 비의(秘儀, 신비한 의식)에 초대받은 감동에 취해 꿀떡잠에 빠져있다. 레인저의 야트(천막집)가 있다 해서 주변 정찰을 나선다. 비치 중간쯤 푸드 캐치와 레인저 야트, 그리고 햇볕 채광판이 있다. 게시판에 붙은 타이드 스케 줄을 살핀 후 돌아와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하늘이 며칠 참았던 가랑비를...
글: 김해영 ∙사진:백성현, 홍메이
괜히 갔었잖아제 마음 텅 비어버렸으니사흘밖에 머물지 안했는데도십년은 더 흘러간 것 같고본디 제 마음알게 됐잖아어둠 속에 앉아 있어도어둡지 않고보이지 않던 것들 다 보이는빈 산의 바람소리에 젖어 들던 마음놓고 올 순 없잖아해 돋는 먼동에 슬픔 자우고달빛 닿은 마음으로 살아나던 그리움놓아버릴 순 없잖아비운 가벼움과 그 기쁨모르면 몰랐지알고 나면 놓을 수...
유병옥 시인
 빨간 우의, 파란 우의를 걸친 성현 씨 내외가 나란히 걸어온다. 등이 불룩한 한 쌍의 거북이다. 안개 속에 신혼의 기억들이 아련히 피어난다. 매쉬멜론처럼 살캉거리고 달콤하던 시절, 자줏빛 행복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지.  추억의 백사장이 끝나고 몇 개의 쪽비치 골목을 들락거리면 바다 쪽으로 고개 내민 톰볼로(Tombolo)에 이른다. 어려운...
글 김해영, 사진 백성현
산속의 린다는봄이 오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산모통이 돌아언덕 위의 나무숲에긴 해걸음으로 빛이 살고바람결에도 태초의 이야기가 숨쉬는 그 길에서는 언제나 열 네살 그 나이입니다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나무들이 자라나는 그 푸르름이 언덕을 넘어 갈 때산들이 말하는 이치를 조금씩 알아가면 어느덧 마음의 집은 산입니다늘 새롭게 저무는 노을이 찻잔에...
유병옥 시인
 다행히 크리슨튼 포인트(25.5km 지점)는 검은 자갈돌 아래 잔모래알을 품고 있다. 발치까지 물이 든 줄도 모르고 팀원들은 잘 잔다. 난 밀물과 빗줄기, 신발창 탈착증 염려에 잠 못 자 빨간 토끼눈으로 새벽에 일어나니 하늘이 울먹울먹하고 있다. 그도 밤새 고민했던 걸까? ‘괜찮아, 밑창 떨어질 때까지 가보는 거야. 포기는 언제든 할 수 있는 거잖아.’마침 가져온...
글 김해영, 사진 백성현
산이 깊어갈수록 소리는 잠들고잠든 산의 소리를 마음으로 듣는다마음 문이 열리면서 들려오는 소리그 옛 소리를 산은 지니고 있다소리 없는 산의 소리는 자연의 소리어둠이 사라지는 소리밝음이 다가오는 소리오늘이 물러가고 내일이 다가오는 소리에씻기어얼굴이 개어온다풀꽃 같은 웃음값없는 기쁨을 만끽한다한 바랑 지고와도 무겁지 않다.<▲ 사진= 늘산 박병준 >
유병옥 시인
싱싱한 파도소리에 일어나니 바다를 닮은 하늘이 감청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서녘을 바라보면 아침놀이 아쉽고 동녘을 바라보며 저녁놀을 그리워한다.  어제의 긴 숲길에 질린 벗이 해변길로 가자 떼를 쓴다. 물 뜨러 갔다가 들여다본 숲속길의 험난함이 떠올라 그럼1.5km만 해변을 걷다가 본 트레일로 돌아갑시다. 하고 물러선 게 병통이었다.  사람은 늘 가보지 못한...
글 김해영, 사진 백성현
산은 험한 길을 품에 하고 있다그 산길에 들어서면삶의 고달픔을 잊게 해 준다.나를 내려놓아야 들어오는 산그제서야 산은 내 안에 산길을 내어준다내가 나를 만나게 되는 산길아무도 하지 못하는 일을 산이 한다자연이 한다나를 찾아서 산에 가는 사람들산길은 그렇게 살아난다.<▲ 사진= 늘산 박병준 >
유병옥 시인
 케이프 스캇 트레일 입구(Cape Scott Trailhead)에 닿으니 진흙덩이를 단 여성 하이커 둘이 햇볕 아래  젖은 몸을 뒤척이고 있다. 케이프 스캇 트레일에 이어 노스 코스트 트레일 6km지점까지 갔다가 하도 험해 돌아왔다는 그네들의 볼에 보람이 흥건하게 고여있다. 이어서 달려 내려오는 젊은 하이커 넷. 역시 진흙에 절인 인절미다. 알러지와 땀띠꽃이 붉게 핀 엉덩이를...
글 김해영, 사진 백성현
 여름이 되면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해변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싶어 거친 야생으로 들어가곤 한다. 세포를 갉아먹는 좀을 몰아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험한 트레킹을 가느냐는 주변의 만류를 물리치고 노스 코스트 트레일(North Coast Trail) 행을 결심한다. 별이 무수히 쏟아지는 해변에 밤의 도포자락을 핥는 모닥불, 달빛을 받아 밤새 반짝거리는 플랑크톤의 유영,...
글 김해영, 사진 백성현
외로운 사람들이외로움을 밟으며 오르는 산길에서외롭지 않은 산을 만난다그 산에 피는 꽃들 외롭지 않고그 산에 사는 산새 울음 외롭지 않고흐르는 물소리 바람소리 언제나처럼그런 모습으로 다가선다 외로운 발걸음들이산을 만나 외로움을 푸는 곳제 마음이 되어간다<▲ 사진= 늘산 박병준 >
유병옥 시인
봄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놀미욤 들에게 물으니저 수채화 물감빛 하늘에서 오지 연둣빛 혀로 답한다아니야, 샛바람이 봄내를 싣고 와 겨울을 휘적여 놓던데회색빛 가신 하늘이 고개를 가로젓는다웬 걸, 나비처럼 팔랑거리는 여인네 옷자락에서 묻어나는 거야바람이 속삭인다 뽀초롬 연둣빛 혀를 물고 있는 들과한결 가벼워진 하늘빛,향내를 품고 있는 봄바람이정숙한 여인네를 꼬드겨 일으킨 반란인 걸 어드메서 오는지어느메쯤 떠나갈지아지 못하는...
김해영 시인
아직 밖이 어두워 잠자리에 있는데 전화가 ‘때르릉’ 울린다.이 시간에 전화하는 사람은 어머님이시다. 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음성이 전선을 타고 건너온다."눈이 많이 오고 있다. 꼼짝하지 말고 집에 있거라." 하신다.“예”하고 대답했는데, 이때 70넘은 아들은 초등학생이 된다.어머니는 지금 양로원에 가 계신다.집에 계실 때, 어머님 방은 2층에 있었다. 물 한 잔을...
늘산 박병준
내 몸은 천칭자칫 어느 하나를 욕심내면그만 기울어져 넘어지는 세상일에 치우치면시가 막히고글쓰기에 몰두하면세상 것이 우스워진다 어느 날 헤어날 길 없는 절망의 수렁에 빠졌다끝간데 없던 호기는 다 사라지고 절망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우울증인가 자가진단을 했다마음이 허해지자 몸에 병이 왔다 병이 들고 바짝 정신이 든다마음과 몸을 나란히 들고 저울질을 한다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다팽팽하다 아, 미루어둔 파릇한...
김해영 시인
간밤엔바람이 불었소미친 듯이 불었소땅 위의 모든 것을 다 쓸어버릴 듯이바람은 그렇게 불었소 헛된 아집의 각질과 빛 바랜 이름을명찰처럼 달고 있는 나무 둥치채찍처럼 후려치는매바람을맨 몸으로 견디어야만 했소 속이 꽉 찬 참나무처럼반듯하고튼실하게 살아왔다고허세 부리던 삶의 쭉쟁이를 아프게 아프게 훑어내야 했소 광풍이 헤집고 간 숲은고요하오……가만,귀 기울여 보오바람의 발자국이 또 다가오는 듯하오 <시작메모>간밤 미친...
김해영 시인
11월의 첫 날에  -  항암치료를 시작하는 날에 또닥또닥 빗줄기가 대지를 두들긴다남루한 몸을굽은 지팡이에 의지하여살아온 길을돌아보는 망설임과또 어둠을 헤쳐야 하는두려움이 배어있다슬픔이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이며좌절이 새로운 희망의 싹이라는 걸까마득히 모른 채걸어온 미망의 길타닥타닥 빗줄기가 새벽을 깨운다긴 밤 어두운 골목을 누비고 다니던 야경꾼의 얕은 기침소리저 짙은 절망 끝에는 여명이혼란의 뒤에는...
김해영 시인
                          위로 말하지 말 걸 네 아픔을 안다고어찌 속 빈 대처럼 허황한 말로 위로하러 들었던가뼈마디 자근자근 방망이질하고육신이 허물어지는 이 고통을…차라리 아무 말 말고 손이나 따스이 잡아줄 걸 아는 척하지 말 걸 사람살이가 다 그렇지겨울 지나면 봄이 오지 않겠느냐고대숲 훑고 가는 바람처럼 어찌 그리 허술히 대했던가비접도 제...
김해영 시인
2월처럼  이른 병상을 걷어내고 일어난나,바장이는 2월의 마음 계절의 모퉁이를 돌아오는님 발자국 소리에내닫는하얀 버선발 이른 봄볕의 입맞춤에서른 날을 채우지 못하고까르륵지어버린 선웃음 설익은 정분을매운 고추바람으로 다독여농 익힌 봄의 분내 <시작 메모>병상과 일상을 오가는 나, 2월처럼 겨울과 봄 사이를 서성인다.봄을 목말라 하는 2월은 차마 서른 날을 채울 수 없어 계절의 모퉁이에서 서성이며 이른 봄내를 풍긴다.  
김해영시인
                      햇빛 사냥 일요일 오후,문득 겨울비 장막이 걷히고안개가 길 잃은 고양이처럼 어슬렁거리는 골목을 나선다낙엽이 협궤열차처럼 뒹구는 길목에 서서서리 낀 잔디에 사금파리처럼 박힌햇살 조각을 응시한다 한가와 무료,자유와 혼돈,미답의 시간이 품은 두려움과 긴장,일탈의 편린들을 뒤로 한 채 햇빛 사냥을 나간다가슴에서 어린 꿈 하나 꺼내서금빛...
김해영시인
              삶의 능선에서            허위허위 오른 능선에는꽃 한 송이 없다번민 같은 안개를 헤치고아우성치는 자갈밭을 기어오르며고되게 오른 능선에는햇살 한 줌 없다여윈 몸을 휘감아 도는 채찍바람뿐…… 벼린 칼처럼 날캄한 능선에서 억새처럼 나부끼는 몸을 곧추 세워 먹구름이 몰려와눈보라를 흩뿌려도 괜찮다가슴이 옭죄고손발이 저미는 한기가...
김해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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