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한 사람이라도 변화한다면 그걸로 감사할 뿐"

손상호 기자 ssh@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희망의 집'의 김용운 목사 (사진=손상호 기자)

가족, 친구들 다 함께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연말연시. 그 와중에도 거리에는 춥고 비 내리는 날씨에도 갈 곳이 없어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이웃들을 지나칠 때가 많다. 마약과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들. 과연 이들은 어떠한 사연이 있길래 정해진 장소도 없이 거리를 헤매는 걸까? 지난 95년도부터 한자리에서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우리 이웃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밴쿠버 마운트 플레전트(Mount Pleasant)에 위치한 희망의 집(Community of Hope)을 찾아가 답을 찾아보려 한다. 유명 한인 마트 옆에 위치해 밴쿠버 한인들이라면 한 번쯤 지나쳤을 법한 희망의 집은 지난 25년간 휴식 없이 매일 60여 명의 홈리스들을 위해 점심을 제공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의료와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 95년부터 희망의 집을 이끌고 있는 김용운(65) 목사를 만났다.

어떻게 희망의 집을 시작하시게 된 건지 목사님의 사연이 궁금해요.

제가 스무 살이었던 1975년 1월 15일(날짜를 정확히 기억했다)에 처음 캐나다에 왔어요. 아버지를 일찍 여의어서 저희 어머니랑 누나들과 함께 들어왔지요. 처음 와서 말도 안 통하고 외로운 데다가 가장이라는 책임감은 크지. 너무 힘들어서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었어요. 여러 고생하다가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SFU에 입학해서 심리학과 사회학을 전공했습니다. 20대 때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바텐더도 하고 식당일도 하면서 악착같이 학비를 벌면서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식당 비즈니스와 정신건강 카운셀링도 겸업하면서 돈도 꽤 벌어봤지요.

처음부터 목사가 되신 건 아니었군요.

어렸을 때 교회를 잠깐 다니긴 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원망이 들어서 그만 다녔어요. 바쁘게 살던 31살에 성령체험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신학 공부를 시작했죠. 공부하던 중 “나는 앞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겠다”라는 신념이 생기게 됐습니다. 그 당시 저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었을 때였는데 아내한테는 다른 공부를 한다고 속이고 신학교를 다녔어요.

그럼 목사가 되시자마자 홈리스 사역을 시작했나요?

처음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신학 공부를 하던 시절 이스트 해스팅 지역에서 아직도 많은 홈리스들을 돕고 있는 First United 교회가 있어요. 그 당시 그 교회 목사님께서 저의 슈퍼바이저셨죠. 그분은 캐나다의 큰 교회를 운영하시기도 하셨던 유명 목사님이셨는데 그 당시에 낡고 좁은 사무실을 쓰시면서도 너무 편안해 보이더라고요. 하루는 제가 “목사님, 왜 이곳에 계시는 건가요?”라고 여쭸더니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대답에 너무 감명을 받고 저도 홈리스 사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홈리스들을 돕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가족들, 특히 사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

오히려 서포트를 더 해줬어요. 지난 25년간 생활이 어렵기도 하고, 많은 일이 있었는데도 제 아내는 여전히 제 사역을 열심히 돕고 있어요. 아내가 저를 너무나도 사랑하나 봅니다.

희망의 집을 처음 열었을 때는 이웃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어요.

반대가 어마어마했죠. 심지어 죽여버린다는 협박도 듣곤 했어요. 희망의 집 때문에 홈리스들이 이 동네를 온다는 이유였죠. 사역 초반에는 불고기 같이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기도 했는데 이웃들이 냄새가 지독하다고 항의를 해서 더 이상 따뜻한 음식은 제공하지 못하게 됐어요. 매일 150명 정도의 홈리스들이 찾아왔는데 그 이후 반으로 뚝 끊기더라고요.

요즘은 어때요? 이웃들이 도와주기도 하나요?

물질적인 도움을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저 지금처럼 저희가 하는 일을 그냥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죠. 아직 따가운 시선이 있긴 하지만 초반처럼 반대는 하지 않고 있어요.

25년 동안 쉬지 않고 이 일을 하시는 동안 재정적으로 힘들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물론 재정적으로 힘든 적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감사하게도 항상 채워지더라고요. 오랫동안 자원봉사 해주시는 분들도 많고, 심지어 어떤 분은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몰래 8년간 후원을 해주고 계세요. 같이 운영하는 중고가게(Thrift Store)에서 매년 3개월 정도의 렌트비가 나오기도 하죠. 오랫동안 렌트비를 올리지 않고 있는 랜드로드에게도 참 감사해요. 연말연시에 후원을 많이 받는 편인데 올해는 경기가 어려운지 평소와는 다르더라고요. 그래도 걱정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많은 분의 후원과 봉사자들의 헌신이 없었으면 이렇게 오랫동안 운영하지 못했을 거에요.

지금까지 도운 홈리스 중에서 개과천선한 케이스도 많나요?

그런 분들이 있긴 하지만 사실 적어요. 그리고 마약을 끝내 내려놓는 사람들도 육신과 마음이 이미 다 해쳤기 때문에 일찍 세상을 뜨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도 다행인 건 돌아가시기 전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거죠.

25년 전보다 마약 중독 문제는 나아졌다고 생각하나요?

마약 중독은 오히려 늘었어요. 이스트 해스팅의 오펜하이머 파크(Oppenheimer Park)에 텐트촌을 만들고 사는 수 많은 홈리스들만 봐도 알 수 있죠. 정부에서 보조금이 나오긴 하지만 집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마약을 끊고 싶어도 주위 사람이 다 하다 보니까 끊지 못하고, 계속 반복되는 거죠. 그래도 다행인 건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 인식 자체는 나아지고 있어요. 마약 중독이라는 이슈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고, 상담센터와 같은 소통 도구도 많아졌지요. 앞으로 우리 사회가 함께 협력하다 보면 더 나아질 거로 생각합니다.

마약에 중독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전 한 번도 해보진 않았지만 마약이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본인 삶의 유일한 기쁨이라고 해요. 이들이 마약에 빠져서 본인과 가족의 삶을 완전히 놓아버리는 이유도 마약이 육체와 감정을 다 지배하게 되면서 모든 게 다 귀찮아지고, 그러면서 삶을 다 포기하게 되는 거죠. 이렇게 한 사람이 마약에 중독되면 온 가족의 삶이 고통입니다. 얼마 전 한 홈리스분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그의 가족에게 연락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가족들은 장례식조차도 참석하는 걸 거부하더라고요. 그만큼 많은 상처를 받았던 거죠.

어떠한 이유로 마약을 시작하던가요?

가족 문제와 호기심 때문에 10대 때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처음부터 마약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고 주로 술, 담배, 마리화나부터 시작하죠. 마리화나가 중독이 안 된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마리화나부터 시작해서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어요.

그럼 최근 기호용 마리화나 합법화에 대해서도 반대하시는 입장이겠네요.

마리화나가 물론 의료용품으로 이득이 있어요. 하지만 요즘 사회가 너무 앞서가는 느낌이에요. 기호용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면서 이득을 보는 건 결국 관련 기업밖에 없고, 사회에 득이 되는 건 없어요. 너무 조숙했던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홈리스들을 위한 ‘희망의 집’의 역할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희의 역할은 중독자들을 개조하고 무조건 못하도록 막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저도 마냥 끊으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아요. 그저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랑의 말씀을 통해서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전하는 게 우리의 몫이죠. 그들이 행패를 부리면서 저를 때리거나 욕하는 경우도 수없이 많았어요. 자존심 상할 때도 있지만 그들이 차라리 그렇게라도 소리 지르고 마음 속 응어리를 풀고 나서 소통을 위해 다가온다면 만족해요. 저희로 인해서 한두 사람 변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희망의 집과 함께하고 싶으세요?

욕심이라면 계속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요. 물론 이 동네도 점점 개발되는 추세라 빌딩 주인이 나가 달라고 하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죠. 만약 그렇게 되더라도 홈리스들을 위한 사역은 평생 하고 싶습니다.

김 목사는 올여름 고혈압으로 쓰러져서 한 달간 병상에 누워있던 적도 있었다. 앞으로 ‘희망의 집’을 위해서 건강을 더 챙기라는 메시지로 이해하고 최근 운동도 하면서 건강에 신경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인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항상 희망의 집에 대한 관심을 주시고 채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홈리스뿐만 아니라 이웃, 친구, 직장동료 중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을 거에요. 이번 연말연시에는 그런 이웃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리고 새해에도 꿈꾸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손상호 기자 ssh@vanchosun.com

희망의 집 (Community of Hope)

주소: 531 Broadway E, Vancouver

연락처: (604) 723-0523

웹사이트: www.facebook.com/comofhope

▲희망의 집에서 음식을 나눠주는 모습

▲예배 모습

▲ 김용운 목사와 자원봉사자들 (사진=희망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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