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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 그 조건은 무엇일까요”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6-04-08 13:19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43- 고(故)최귀암 장학금 최은선씨
비교를 통해 느껴지는 상대적 우월감 혹은 박탈감은 내겐 늘 경계의 대상이었다. 오직 나만을 들여다보니 내가 가진 수많은 것들이 축복처럼 다가왔고, 그것을 남과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됐다. 내게 주어진 능력, 기회, 건강의 수혜자는 나 뿐만이 아니라는 걸 감사히 깨달았다. 나에게는 사는 것이 즐거움이고, 또 그 무대가 캐나다라는 사실이 기쁨이다. 최은선씨의 고백이다.


“나눔이 곧 기쁨임을 아는 사람으로”

그녀의 남편은 화가였다. 한때 공과대 학생인 시절도 있었지만 캐나다 이민 후부터는 인생의 방향이 미술로 정해졌다. 남편은 훗날 이렇게 얘기했다. 

“이곳저곳 여행을 하다 한번은 노바스코샤에 가게 됐지. 그 곳의 한 해변가에서 그림 그리던 노화가를 보게 됐는데,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더군.”

이후 남편은 온타리오 예술대학에 진학했고 가난한 예술가의 길을 기꺼이 걸었다. 든든한 동행자는 약사로 일했던 아내 최은선씨였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배려”로 표현됐던 행복한 부부였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남편과 아내로 함께한 시간은, 적어도 이 땅에서는 “24년 9개월”에 멈췄다. 

지난 2006년 2월 홀로 산에 오른 그녀의 남편, 고(故) 최귀암 화백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행히 시신은 수습했지만, 아내는 그 흔한 무덤조차 만들지 않았다. 대신 남편의 이름이 기억되기를 바랐다. 아내는 비영리 단체인 포트무디 파운데이션에 기금을 기탁했고 그 결과 “최귀암 장학금"이 만들어졌다. 올해로 10년, 매년 한 명의 젊은 예술가가  장학생으로 선발돼 왔다. 남편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 중 매해 최소 한 사람은 최귀암이라는 이름 속에서 고마움이 느껴질 것이다.


장학 기금을 포트무디 파운데이션에 기탁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이 커뮤니티의 일부니까요. 포트무디에 살고 있고, 포트무디에서 10년간 약국을 운영하며 돈을 벌었어요. 이 지역 주민들로부터 제가 헤택을 받았다는 얘기죠. 그래서 그 일부를 돌려주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포트무디 파운데이션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데요.
경제부터 환경, 레크레이션 활동까지 포트무디라는 도시에 필요한 것을 찾고 지원해주는 단체에요. 구성원 모두 자원봉사자들인데, 이들을 통해 캐나다 사회의 대단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요?
한번은 이제 막 가족을 꾸린 젊은 변호사 한 명이 재단을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변호사 일에, 아이 돌보는 일에, 여러 가지로 바쁠텐데 자원봉사자로 일하길 원하더군요. 자기 남는 시간을 쪼개 남을 위해 쓰겠다는, 그 이유가 궁금했지요.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저 당연하다는 반응이 전부였습니다. 얼마 전 포트무디로 새로 이사왔는데, 이 도시를 위해 뭔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포트무디 파운데이션을 알게 된 것 뿐이라고….

언급하신 그 변호사만 유독 자원봉사 활동에 후한 게 아닐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제겐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딸이 두 명 있는데, 그 아이들도 자원봉사 활동에 무척 적극적이에요. 쉐프인 둘째 딸은 어제도 암환자를 위한 제빵 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로 참석했어요. 첫째 딸은 영국 런던의 한 발레단에서 기금 모금자로 일하는 중인데, 마찬가지로 봉사활동을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이 뿐만이 아니에요. 제가 약국을 운영했을 당시 한 직원은 주말이면 푸드뱅크를 찾았어요. 쉬는 날 가족이나 친구와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클 텐데도 말이죠. 나눔의 기쁨을 안다는 것, 이게 바로 캐나다의 문화,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최은선씨는 남편의 오래된 작품들을 끄집어 냈다. 이 그림들은 오는 4월 28일(목)부터 6월 2일까지 포트무디 아트센터에 “최귀암 10주기 회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될 예정이다. 29일(금) 오후 6시에는 전시회 리셉션이 마련된다. 2425 St. Johns St. Port Moody.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공부의 목적이라면…”

딸들이 어머니의 직업을 따라가지 않았군요.
전공 선택을 앞둔 아이들에게 한번은 이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어요. “엄마가 살아보니까 내 평생 좋아하는 걸 해야지, 돈만을 따라가는 건 아닌 것 같아. 이왕 공부할 거면 너희들도 행복하고, 너희들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지는 그런 일을 했으면 좋겠어.”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공부의 목적이라면, 그 길이 너무 건조할 것 같다는 게 제 의견이었어요. 

하지만 경제적인 부분을 아예 배제하고 산다는 게 가능할까요?
하루 여덟 시간을 자기가 원하는 일을 위해 산다면, 또 다른 여덟 시간은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꿈을 위한 일, 내 입에 들어갈 무언가를 위해 하는 일은 그게 무엇이 됐든 창피해야 할 필요가 없는 거죠.

캐나다에는 언제 오셨습니까?
1981년, 한국에서 약대를 졸업하고 한 종합병원내 약국에서 일하다 남편이 있는 캐나다로 오게 된 거였어요.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포기한 셈이었군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결혼 당시 전 이것 저것 재지 않았어요. 남편은 가진 것 별로 없는 가난한 미대생이었지만, 신혼 때의 우리는 “마음만은 부자”라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서로의 가치관이 많이 닮았던 모양입니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정원을 가꾸지 않으면 금세 엉망이 되듯이 결혼생활도 마찬기지에요. 노력이 있어야 재미와 행복도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 역시 서로 싸우곤 했지요. 하지만 그 흔한 권태기는 단 한 차례도 경험하지 않았어요. 서로 사는 게 참 재밌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남편과 24년 9개월을 함께 했어요.

결혼생활과 관련된 보다 세세한 조언이 있을 것 같은데요.
100% 마음에 드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자기 눈에 차지 않는 부분을 고쳐가면서 살겠다고 생각하면, 매 순간 싸워야 해요. 이런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 역시 상대에게 100%가 아닐텐데, 100%를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지요. 서로 봐주면서,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그렇게 사는 게 정답에 가까울 겁니다.

남편의 빈 자리가 컸을텐데요.
많이 울었지요. 백년 동안 울어서 내가 살 수 있다면 그렇게 계속 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너무 서러워서, 내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을 흘린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돌이켜 보면 나는 전혀 불쌍한 사람이 아닌데도 나는 계속 울고 있었어요. 내겐 나눔이 곧 기쁨이라고 믿고 자란 고마운 두 딸이 있었고, 약사로서의 일과 내가 챙겨할 직원들이 있었고, 나를 끌어안으며 위로해 주는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에 감사했어요.

“최귀암 장학금”을 통해 남편이 영원히 기억되는 것도 큰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그립지요. 그가 떠난 2월에는 밴쿠버에 있기 어려울 정도로 괴롭기도 합니다. 하지만 딸들과 약속했어요.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삶을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행복해져야 한다고.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다른 무엇과도 나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 이게 출발점인 것 같아요. 어떤 이민자는 한국과 캐나다를 습관적으로 비교하는데, 결코 옳은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땅에 살 수 있다는 걸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삶이 지금보다는 많이 달라질 겁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세요. 얼마나 많은 것이 내게 주어져 있는지, 그게 보일 거에요.

최은선씨를 앞에 두고 <행복의 열쇠>(최성원 작사·곡)라는 노래가 저절로 떠올랐다. 그 노래는 이렇게 끝맺는다. “비교는 바보들의 놀이/ 최선은 우리의 권리/ 결과는 하느님의 뜻/ 감사만이 행복의 열쇠”.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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