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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에서 의사로 “의대 입학, 성적만으론 불가능하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9-25 14:00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21 김홍찬
한인 2세 사이에서 의사나 약사는 꽤 흔한 장래 희망에 속한다. 그 꿈이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것이든, 아니면 스스로의 결정에 따른 것이든 말이다.

의료인의 길을 가겠다는 것은 어느 면에선 분명 현명한 선택처럼 보인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인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민자를 구직 시장의 스타로 각광받게 해 줄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전문 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 전문직의 꿈을 꾸고 있는 모두가 하얀 가운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노력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려면 공부만 잘해서도 곤란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직 약사이자 의대생(UBC)인 김홍찬씨(사진)가 그 질문에 답한다.



“10학년까지 성적은 평범 그 자체, 공부는 악으로 했다”

김홍찬씨의 일상에서 한가로움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의대에 들어간 후부터는 더 그렇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학교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가는 삶이 반복되고, 토요일에는 밴쿠버 다운타운의 한 약국에서 관리자급 약사로 하루의 절반을 보낸다. 일요일이라고 해서 팽팽했던 신경줄이 마냥 늘어지는 것은 아니다. 틈나는 대로 책을 읽거나 의료계 선배와 약속을 잡는다. 이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 채워진다고 그는 생각한다.

이처럼 전력투구 중인 그가 인터뷰를 위해 짬을 낸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이 그렸던 지도를 한인 후배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다. 일요일 아침, 다운타운의 어느 커피샵에서 접수한 그의 조언은 솔직담백했으며, 그리고 정밀했다.



공부는 물론 잘했겠지요?
글쎄요. 공부 쪽으로는 그리 내세울 게 없는 것 같은데요. 10학년까지는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수학만 A를 받았다 뿐이지 나머지는 영 아니었거든요.  

지금 하는 얘기, 미안하지만 약간 “사기”처럼 들리는데요. 
사실이에요. 수학 같은 경우도 열심히 한 건 아니었어요. 한국에 비하면 이곳 수학이 좀 쉽게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좋은 성적을 받게 됐을 거에요.

밴쿠버엔 언제 오게 된 건가요?
2000년, 그러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요. 

적응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처음 살게 된 곳은 메이플리지였는데, 학교에 한국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그래서 나름 애를 먹긴 했지만 덕분에 영어는 비교적 빨리 습득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학업 성적이 특출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공부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집안 분위기가 그랬어요. 저희 부모님이 이민을 결정하게 된 이유가 한국 학생들이 받는 학업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인지 공부하라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독서는 많이 권하셨는데, 저는 그것조차 소홀히 했죠. 대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틈나는 대로 캠핑을 갔고, 보이스카웃이나 축구팀에서도 활동습니다.

저절로 대학에 들어갔다, 이런 얘길 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공부에 대한 압박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지만, 11학년 때부터는 열심히 해야 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어떤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대학은 가야겠다, 이게 전부였어요. 결과적으로는 지망했던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어디였죠?
UBC에서 제너럴사이언스를 전공하게 됐어요. 당시 88점이 합격선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제 성적은 89점이었어요. 턱걸이로 대학에 들어간 셈이지요.

이른바 “놀았던” 학생이 얻은 결과치고는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는데요. 머리가 유난히 좋은 편인가요?
그렇지 않아요. 남들에 비해 저는 배우는 속도가 느린 축에 속해요. 하지만 끈기는, 어떤 “악” 같은 건 있었지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버틸 수 있다는 것, 이게 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교시절에 대한 후회 같은 건 없었겠지요. 잘 놀았고, 막판에는 공부도 열심히 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으니까 말이에요.
그것도 아니에요. 대학에 들어온 후에야 고교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했어요. 특히 영어 때문에 많이 힘들었습니다. 다른 코스들은 웬만큼 선방했는데, 영어 시험 앞에서는 늘 좌절이었어요. 이 탓에 전체 평점이 쭉 내려갔지요.




<▲ >



“대학 신입생에게 꼭 필요한 자세는 바로 이것”

고교와 대학의 공부 환경이 많이 달랐던 모양입니다.
한참 다르지요.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되니까…. 때문에 “자기 관리 능력”이 필요해요. 파티 등에만 푹 빠져 지내게 되면, 공부 쪽으로는 가망이 없어지게 됩니다. 어느 정도는 절제할 줄 알아야, 계속해서 자기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제가 볼 때는 대학 1학년 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약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게 된 건가요?
1학년 마쳤을 때였어요. 제너럴사이언스만 공부해서는 직업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아질 거라고 판단했어요. 석사나 박사 과정은 마쳐야 연구소나 기업으로 진출할 수 있을텐데, 그 과정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졌지요. 약대 4년 과정을 마치면 약사라는 확실한 직업을 갖게 될 수 있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거죠.

약대 입학, 물론 쉽지 않았겠지요?
제가 약대(UBC)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정원은 150명이었고 지원자는 1200명 정도 됐어요.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낮은 성적으로는 승부를 보기 어려웠지요. 평균 85점 정도는 받아야 하고, 피캐트(PCAT)라는 시험도 통과해야 하지요. 지금은 약대 정원이 250명으로 늘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마냥 쉽지는 않을 겁니다.

약사로서 일한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2년 넘었지요. 지금은 관리자급 약사로 근무 중이에요.

그렇다면 그 생활에 충분히 익숙해졌을텐데, 왜 다른 길을 생각하게 된 거죠?
약사는 분명 끌릴만한 직업이에요. 근무 시간이 일정하고, 휴가도 꼬박꼬박 쓸 수 있으니까. 보수도 괜찮은 편이에요. 신입 약사가 밴쿠버에서 일할 경우 시간당 보수는 35달러에서 시작하지만, 메이플리지나 칠리왁 쪽으로만 눈을 돌려도 이보다는 10달러 이상 더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의대 진학을 생각하게 된 건 일종의 욕심 때문이었어요. 약사로서 할 수 있는 일들도 물론 많지만, 의사가 되면 좀 더 다양하게 의료 서비스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요.

의대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습니까?
제가 결혼을 좀 빨리 한 편인데, 아내가 의사에요. 현재 한 종합병원에서 내과 전공의로 일하고 있지요.

아내의 조언이 컸겠는데요. 의대 진학과 관련해서 말이지요.
솔직히 아내는 제가 의대에 들어가려는 걸 전혀 원치 않았어요. 의사의 길이 마냥 순탄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그랬을 거에요. 저 역시 아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의대 3학년부터는 인턴십이 시작되는데, 그때부터는 말 그대로 고생문이 열리는 거죠. 늘 잠이 부족하니까요. 당직도 서야 하고, 깨어 있는 시간에는 책과 씨름해야 하죠. 개인 생활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아내가 공부했던 그 힘든 과정을, 저는 다 지켜봤어요.

또다시 “왜”라는 궁금증이 생기는데요. 의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매력적입니까? 그 고행을 감내할 만큼?
아까도 얘기했지만, 저는 환자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약사로 일하면서 의사 진찰이 늦어져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여럿 봤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컸지요.


“의대 입학을 위해 넘어야 할 산, 또 산”

의대 진학 과정이 궁금합니다. 의대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나요?
성적 부문(AQ)과 비성적 부문(NAQ)을 동시에 봅니다. 각각 50%의 비중이 있지요. 때문에 성적 부문에서 만점을 받더라도, 비성적 부문에 대한 점수가 부족하면 의대에는 진학할 수 없습니다.

과수석도 의대 입학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군요. 그렇다면 비성적 부문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준비가 필요할까요?
저 같은 경우는 의대 입학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는데 봉사활동이나 과외활동을 많이 했어요. 캐나다과학기술자협회와 약대 학생회에서 각각 회장과 부회장으로 일했고, 병원에서 시니어들의 말생대가 되어주기도 했어요. 노숙자 무료 급식소인 슾키친(Soup Kitchen)도 제가 몸담았던 단체에요.

의대(UBC)에는 통상 몇 명이나 지원하나요?
정원은 280명인데, 지원자는 2500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엠캐트(MCAT)이란 시험을 봐야 하죠?
예, 맞아요. MCAT은 50점 만점으로 알고 있는데, UBC의 경우 합격선은 32점에서 33점 정도에요. 

한인 학생들의 경우 인터뷰에서 많이 떨어진다고 들었어요. 너무 순해 보여서 의사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이런 평가도 있던데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굳이 말하자면 한국 사회에서는 공손하고 예의바른 게 미덕으로 통하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태도가 “자신감 없음”으로 비춰질 수 있을 거에요. 인터뷰 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신감이에요.

인터뷰에서는 의학적 지식에 대해서 물어보나요?
아니요. 학문적인 얘기는 일절 없어요. 왜 의사가 되려고 하는가?, 이런 식의 질문도 하지 않아요. 대신 한 사람의 인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을 무작위로 물어보죠.

질문을 예상하기 어렵겠군요.
맞아요. 하지만 대개 이런 식이에요. 변호사, 간호사, 과학자 중 한 명을 무인도로 데려가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이 질문을 듣고 7분 동안 답해야 해요. 인터뷰는 여러 장소를 돌며 진행되는데, 어떤 곳에서는 배우와 연기를 하기도 해요.

예상 답안을 외워봤자 큰 도움을 받을 순 없겠군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조언을 보태자면, 이런저런 경험을 해 본 친구들이 인터뷰에 임하기 훨씬 수월할 겁니다. 경험에 따라 답변의 질이 달라질테니 말이죠.

어떤 의사가 되고 싶습니까?
환자들을 잘 보살필 수 있는 사람. 전공은 외과나 응급의학과를 동경하고 있어요. 하지만 수련 기간이 너무 길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네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만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공부나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걸 해소할 수 있는 취미 같은 게 있었음 좋겠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 거에요. 그래야 끈기 있게 계속해서 매달릴 수 있을 테니까요.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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