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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사로 일하기까지, 내가 걸어온 길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11-15 14:21

써리메모리얼병원 배재현
의료분야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병원 속을 살짝 들여다 보면 의사나 간호사 이외에도 각양각색의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 한지붕 아래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이번 인터뷰에 얘기될 방사선사도 그 중 하나다.



“시험 통과하면 한국의 자격증 인정받을 수 있어”


써리메모리얼병원에서 방사선사로 일하고 있는 배재현씨는 ‘준비된 이민자’로 분류될 수 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캐나다에서는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지 등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이민을 결심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그 길을, 당사자인 배재현씨와 함께 복기해 보았다.


-밴쿠버와의 첫 인연은 언제였나요?
한국에서도 방사선사로 일했는데, 야간 근무다 뭐다 해서 당시 일이 꽤 고됐어요. 그래서 머리 좀 식히면서 영어공부나 할 목적으로 밴쿠버로 오게 된 거죠. 이때가 아마 2000년 무렵이었을 거에요. 

-어학연수생이었군요.
예, 그랬습니다. 그 생활이 꽤 즐거운 걸로 기억돼요. 유학생으로 사는 동안 밴쿠버가 점점 좋아지대요. 그런 탓인지 한국으로 돌아간 후부터는 캐나다 이민을 차근차근 준비하게 됐습니다.

-어떤 준비였죠?
우선 영어공부에 집중했죠. 저는 캐나다에 가서도 제가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캐나다방사선협회의 자격증 시험에 통과해야 했는데, 그 첫 관문이 영어였습니다.

-시험만 통과하면 한국의 자격증을 인정받게 되는 거군요.
맞아요. 그런데 그 시험이라는 게 그리 쉽지 않아요. 영어만 해도 꽤 까다롭지요. IELTS 기준으로 스피킹은 6.5 이상은 받아야 합니다.

-그 조건을 채우면 자격증 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아니요. 우선 서류심사에 통과해야 하는데, 한국의 대학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최소 1년간의 경력증명서를 제출해야 해요. 최근에는 심사 통과 기준이 훨씬 어려워졌다고 들었어요.

-어떻게요?
경력증명서 같은 경우에는, 예전에는 어느어느 병원에서 근무했다는 정도만 확인되면 심사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느 부위를 몇 번이나 촬영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묻더군요. 이전 직장 상사의 서명도 반드시 받아야 하구요.

-그 고비를 넘기면 자격증 받기가 좀 수월할 것 같아요. 한국에서 경력이 있다면, 방사선사 자격 시험이야 어렵지 않겠지요.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의 유형이 한국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에요.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시험에 단번에 붙기 어렵지요.





배재현씨는 ‘BC한인보건의료인협회’ 총무로 봉사하고 있다. 
이곳 사이트(www.medikorean.com)에 방문하면 방사선사 이외에도 
다양한 의료 관련 직업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진=최성호 기자 sh@vanchosun.com





“구직 지금은 어렵지만, 5년 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데요? 
한국의 시험 문제는 정답을 고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그래서 소위 ‘족보’만 제대로 암기하면 어렵지 않게 합격증을 받을 수 있지요. 그런데 캐나다의 시험 문제는 달라요. 이곳에서는 하나의 상황을 주고, 그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서술하라고 말합니다. 한국 시험 문제에 익숙한 한인으로선 어려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요.

-문제의 예를 좀 들어줄 수 있나요?
음… 이를테면 보행이 불가능한 응급 환자가 들어왔는데, 이때 방사선사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묻습니다. 엑스레이 테이블로 어떻게 옮겨야 하는지, 어느 부위를 어떤 식으로 촬영해야 하는지 등을 답해야 하죠.

-합격률이 높을 것 같지 않네요.
제가 시험 준비했을 때만 해도 한번에 붙는 경우가 드물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정보가 많이 쌓여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통과하는 것 같습니다.

-시험은 얼마나 자주 있나요? 떨어져도 재응시는 가능한 거겠죠?
5년 중 네 번의 시험 기회가 있습니다. 전부 불합격하면 학교에 재입학해서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 해요. 

-배재현씨는 언제 시험에 통과했나요?
2005년 9월에 이민왔는데, 그해 10월부터 방사선사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자격증은 이듬해 5월에 취득했지요.

-이후 구직활동은 어렵지 않았습니까?
당시만 해도 일자리가 많았어요. 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일반 엑스레이클리닉에서 일할 수 있을 정도였죠. 

-자격증이 없는데도 일을 할 수 있는 건가요?
외국에서 방사선사로 일한 경력이 있다면, 현재로선 소규모 클리닉 취직이 법적으로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캐나다에서는 BC주만 이를 허용하고 있지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결국에는 일하게 될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현재는 자격증이 있는 사람도 취직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만큼 구직 조건이 좋지 않지요.

-방사선사 준비하는 사람들에겐 약간 암울한 소식이네요.
하지만 포기는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다 보면 전문직으로서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밝은 편입니다. 

-일자리가 늘어날 만한 구체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병원 근무자 중 상당수가 베이비붐 세대에요. 앞으로 5년에서 10년사이 베이비부머 중 대부분이 은퇴하게 됩니다. 좀 먼 얘기 같지만 조금씩 경력을 쌓고 기다리다 보면, 어렵지 않게 종합병원 등에서 일하게 될 겁니다.




“보수도 좋지만 은퇴 후 받게 되는 연금이 더 큰 혜택”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영어 때문에 여전히 힘듭니다. 이건 평생 안고 가야할 숙제 같아요. 

-영어 때문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하지 못하는 아이사인이라서 어떤 차별 같은 것을 경험한 적은 없었습니까?
물론 있었지요. 제가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고 말하면, 환자들 중에도 몇몇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곤 하죠. 이럴 때는 저 역시 기분이 나빠지지만, 오히려 더욱 친절하게 환자들을 대하려고 애씁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담 있잖아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친절하게 한 마디라도 더 건네다 보면, 환자들도 결국엔 마음의 문을 열거든요. 그들이 아시아인을 못미더워한다고 해서, 그 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면 결국 자기만 손해인 거죠.

-병원생활을 계획 중인 사람들에게 다른 조언은 없나요?
처음에는 영어 때문에 겁을 먹게 될 거에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현실과 맞부딪히지 않으면 항상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이 내 얘기를 못 알아 들었다고 해서 절대 주눅들지 마세요. 내 표현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면, 다른 표현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해보세요. 그러다 보면, 차츰차츰 동료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방사선사의 대우가 궁금합니다. 
보수는 등급과 경력에 따라 다릅니다. 저희 병원의 경우 시간당 27달러에서 36달러를 받을 수 있지요. 그런데 단순히 보수보다는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혜택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연금이지요. 의료 계통에서 일하다 보면, 나중에 은퇴 후 다른 사람에 비해 더 큰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게 근무 여건 면에서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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