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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과거에 사로 잡혀 있던 인물”

최성호 기자 sh@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10-23 15:55

주사파 핵심 인물에서 북한 인권운동가로 전향한 김영환씨
주체사상(주사)파의 핵심으로 활동했던 김영환(51·사진)씨가 18일 밴쿠버를 찾았다. ‘강철서신’이라는 이름의 문건 하나로 북한 주체사상을 학생운동권의 핵심 이념으로 만들었고, 최근 종북 논란의 중심이었던 이석기씨와 함께 민혁당을 처음 조직했던 인물이다. 

한때는 주사파 운동권의 대부로 통했으나, 전향 후에는 오히려 북한 정권의 허상과 인권 문제를 홍보하는 사업에 주력해 오고 있다. 현재는 북한민주화 네트워크 연구위원으로 있다. 그는 이날 학생 시절부터 북한에 밀입북해 김일성을 접견한 뒤 자신이 좇던 사상에 괴리를 느끼고, 북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게 된 지금이 있기까지의 극에서 극으로 변화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 놓았다. 

-'강철서신'의 저자로 잘 알려졌는데.
"학창시절 당시 정권에 불만이 많아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운동권 학생 동아리에 자발적으로 가입했다. ‘강철서신’ 역시 학생 시절이었던 1987년에 작성한 것이다. 문서 2건과 편지 3편으로 구성됐다. 처음에는 7부를 복사해 돌려보는 수준이었는데, 운동권 학생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졌다. 일부 언론에서는 80만부가 배포됐다고도 이야기가 나오지만, 당시 20만부 정도가 배포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석기씨도 학생 운동 중 알게 된 것인가. 
“1986년 1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1988년 형집행정지로 출소했는데 수감 중에 하영옥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됐다. 출소 후 이 친구와 ‘반제청년동맹’을 결성했는데, 그때 이석기를 알게 됐다. 반제청년동맹은 이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으로 개편됐는데, 이때 나와 하영옥이 중앙위원을, 이석기는 경기남부위원장을 맡았다.”

-북한에 밀입국했다고 들었다. 그 과정이 궁금하다.
“1989년 7월 초, 본인을 북한 연락 대표라고 소개한 남성을 만났다. 라디오를 통해 암구호를 주고받으며 그가 실제 북파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몇 차례 접선했다. 주로 학생 운동에 대해 궁금해하더라. 이후 91년 북한에서 김일성이 나를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같은 해 5월 16일 밤 12시 강화도 건평리 ‘쌍묘’라는 곳에서 그를 만나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에 밀입국했다. 북한 도착 후 다시 헬기를 타고 평양으로 이동했다. 이후 2주 정도 북한에 머물렀다.”

-북한에 머무는 동안 무엇을 했나. 
“북한의 주체사상 전문가들과 만나 토론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사회주의를 택했던 동유럽 국가들이 붕괴하는 시기였다. 북한 학자들은 이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당시 40대 초반 학자들과 이틀에 걸쳐 만나 의견을 나눴는데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새롭게 변한 세계정세와 이에 대한 관점을 알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토론인데 논쟁도 없었고, 반응도 없었다. 마치 벽과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 이를 통해 북한에서 학문의 자유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존재하는 사상 이론에서 단 한마디,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체계였다. 북한 체류 동안 북한 주민들과 잠깐이지만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는데, 한국보다 더한 권위주의 속에 탄압과 억압받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내 나와 함께 있던 간부의 눈치를 보더라.”

-김일성과의 만남은 어땠나.
“내가 만난 김일성은 과거에 사로 집힌 사람이었다. 1930년대 공산주의 이념과 이론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었다. 6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의 이념은 아무런 변화 없이 멈춰있었다. 그렇게 과거 이념에만 머물러 있는 지도자가 어떻게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을까 희망이 있을까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체사상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는데, 그는 주체철학에 대한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 국가의 지도자로 최소한의 성실성과 책임감이 결여됐다고 생각했다.”

-북한 방문 이후 북한 인권운동가로 전향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청년 운동가 시절에 모두가 생각하는 이상국가, 경제·정치·사회적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한 국가,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국가를 지향했다. 그런 이상국가 건설을 위해 달려왔던 터였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보고,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본 그들은 탄압과 억압에 시달리며, 평등과는 거리가 먼 사회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탈북자들의 전언을 들으며, 얼마나 심각한 인권유린이 일어나는지 알고 충격에 빠졌고, 북한 체제와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 주사파와 결별을 결심했다.”

-주사파의 ‘대부’였던 만큼, 결별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주사파와의 결별을 결심하고 민혁당 당원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우리가 혁명가라면 모른척할 수 없다. 이들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기로 한다. 새로운 길에 동참해달라. 북한 추종의 길을 가자고 한다면 결국 우리는 적과 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이후 당원의 3분의 1 정도는 맘을 돌렸고, 다른 3분의 1은 당을 떠났다. 나머지는 이념과 활동을 포기할 수 없다며 기존의 길을 걷기로 했다. 기존의 길을 고수하기로 했던 그룹의 한 명이 이석기씨다.”

-변절이라 생각하는 이도 있었을 텐데.
“처음에는 ‘믿고 따르던 지도자가 변절했다’고 이야기하더라. 화합할 때마다 ‘적기가’를 부른다는 얘기도 들었다. 적기가는 ‘배신자여 갈 길을 가라. 나는 내 길을 간다’는 가사 내용을 담고 있는 북한 혁명가요다.(웃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주사파, 종북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주체사상 이념을 좇았던 단체의 성격은 90년대 말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한다. 최근 움직임은 완전히 변질된 것 같다. (김일성을)교주로 보는 느낌이랄까. 무조건적 사상으로 바뀌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들이 좇는 이념 역시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과거 한 시점에 머물러 있다. 변화도 없고, 발전도 없다는 얘기다.”

글·사진=최성호 기자 sh@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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