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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퀸’ 연아를 세계에 우뚝 세운 남자

이광호 기자 kevin@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3-22 14:50

밴쿠버올림픽 이어 피겨선수권대회 시상대 디자인한 밴쿠버 한인 제임스 리
그의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다. 손톱은 짧고 가지런히 정돈됐다. 나무를 다루느라 손이 거칠 것이라는 예상을 처음부터 비켜갔다.

지난주 온타리오주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의 시상대와 메달 쟁반을 디자인한, 그래서 ‘피겨여왕’ 김연아를 다시 한번 세계 정상에 세운 밴쿠버 한인 디자이너 제임스 리(이준엽·33)는 옷차림부터 단정했다. 삶의 과장하지 않은 궤적도 담담히 전했다. 

그러다 어릴 적 꿈 이야기를 꺼내자 말문이 터졌다. 톤이 높아지고 말이 빨라졌다. 기자의 펜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그는 노력 끝에 거둔 ‘성취’와 ‘그 곳에 닿기 위한 노력’을 들려주면서 타고난 ‘스토리텔링’으로 기자의 귀를 단단히 붙들어 맸다. 

올림픽 빌리지 근처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씨는 이미 업계에선 유명인사다. BC주의 산과 나무를 형상화한 밴쿠버 동계올림픽 시상대와 메달 쟁반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디자이너 제임스 리를 세계에 알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시상대.


-삶을 구분하자면 올림픽 전과 올림픽 후로 나눌 수 있겠네요.
“그렇죠. 올림픽으로 순식간에 알려졌으니까요. 덕분에 신문 인터뷰도 많이 하고, 방송사에서도 찍어가고요(웃음). 무엇보다도 일과 생활을 함께하던 집에서 나와 스튜디오를 차린 게 큰 변화겠네요. 여러 디자이너와 함께요.”

-사장님이 되었군요.
“아, 쉽지 않아요. 디자인 외에도 고민거리가 늘었어요.”

-피겨선수권대회 시상대 제작 건은 어떻게 참여한 겁니까.
“빙상연맹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동계올림픽 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았죠. 여러 아이디어를 들고 가 프레젠테이션했고요. 빙상연맹은 대회의 모든 요소를 어우르는 통합 이미지를 갖고 싶어 했어요. 결국 피겨스케이팅과 잘 어울리는 ‘부드러움과 활기(fluid & movement)’ 안이 채택됐죠. 메달 쟁반도 함께 만들었고요. 예산 문제로 성사되진 못했지만 시상식 카펫과 메달 디자인 과정에도 참여했어요.”


지난주 온타리오주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시상대도 이씨가 디자인했다. (사진 flickr=QUEENYUNA/CC)

-나무를 만지는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생각은 언제 한 겁니까.
“어릴 적부터 꿈이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거였어요. 부모님의 손기술이 아주 뛰어났어요. 어머니는 꽃을 장식하는 플로리스트고 아버지도 만들고 고치는 일에 만능이셨죠. 두 분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저도 손으로 뭔가 만들어 내는 직업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웠어요. 디자이너 제임스 리의 절반은 물려받은 기질로, 나머지 반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보는 것이 맞겠죠.”

-부친은 어떤 분입니까.
“동생과 저를 아주 자유롭게 기르셨어요. ‘스스로 행복한 일을 찾아라’란 말을 계속했으니까요. 이민 전에는 펜싱을 가르쳤다고 하시는데 캐나다에서는 다른 이민자처럼 용접 일도 하고 그로서리도 운영하면서 평범하게 사셨죠.”

-많은 이민 1세대 부모가 자녀에게 이른바 ‘사’자 붙는 직업 갖기를 권유합니다.
“글쎄요. 제 기억엔 그 말을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어릴 적 만화를 베끼면서 놀 때 그림 그리는 법도 아버지가 가르쳐줄 정도니까요. 공부 말고 엉뚱한 일을 한다고 혼난 적도 물론 없었죠.”

-부모님은 그렇다 쳐도 본인은 진로에 대해 걱정이 안 됐습니까.
“안정적인 미래라고 생각해 공대를 졸업하고 취직했죠. 그런데 전혀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결국 아버지와 상의 끝에 미술대학에 다시 들어갔어요.”

-뭐라던가요.
“역시 ‘네가 행복한 길을 택해라’ 였어요. 용기를 얻었고, 제가 하고 싶은 디자인 공부를 마음껏 했어요.”

-행복한 인생만 계속되는 것처럼 들립니다.
“정작 고비는 미대 졸업 후 왔어요. 공부는 끝났고 생계를 꾸려야 하는데 밴쿠버의 산업디자인 분야가 무척 좁거든요. 어렵게 선택해 여기까지 왔는데 일감은 없고 취업도 되지 않고… 바닥이 보이지 않는 좌절이 계속됐죠.”

-그래서요.
“사실, 그때 디자이너가 되기를 포기했더랬어요. 다른 길을 가야 하나 기웃거리고 있었죠. 그런데 꼭 일주일 후 어렵게 인연이 닿은 밴쿠버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연락이 온 겁니다. 간단한 인터뷰 후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죠.

-그때 그 연락이 실력이나 운 중에 어느 쪽이라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저는 ‘운’을 믿지 않아요. 많지는 않지만 간헐적으로 일했었고, 조직위에서 이미 제 작품을 검토했죠. 그저 운만으로는 시상대 디자이너로 선택되지 않았을 겁니다.”

-불투명한 미래로 방황하는 후배들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겠군요.
“ 저를 되돌아보니 별것 없습니다. ‘열정을 따라 온 힘을 들여라’ 입니다. 자기 목소리에 귀 기울여 스스로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이 뭔지 찾아야겠죠. 그 후에는 아주 치열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곧바로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흔적은 남기 때문이죠.”


자신이 세운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인 디자이너 제임스 리.

“내게 밴쿠버는 ‘말라버린 우물’이었지만, 그에게는 ‘붓을 기다리는 하얀 캔버스’”
동계올림픽 프로젝트 함께 했던 옵스트바움 감독 덕분에 세상 보는 눈 가져

인터뷰 끝 무렵 이씨는 동계올림픽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레오 옵스트바움 감독 이야기를 꺼냈다. 이씨를 발굴한 옵스트바움 감독은 올림픽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도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이씨는 그이 덕분에 세상을 보는 시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옵스트바움 감독과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아주 많은 대화를 했어요. 프로젝트뿐 아니라 삶 전반에 관해서요. 제게 밴쿠버는 디자이너를 원하지 않는 ‘말라버린 우물’에 불과했는데, 스페인 출신인 그에게 밴쿠버는 ‘붓을 기다리는 하얀 캔버스’였죠. 생각하기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났어요. 그가 갑자기 세상을 뜬 후, 무명의 젊은이에게 전세계의 시선이 몰리고 부담감도 말할 수 없이 컸지만 함께 나누었던 대화 덕분에 자신 있게 프로젝트를 끝냈어요.”

악수를 하고 스튜디오를 나설 찰나, 빗방울 뿌리던 하늘이 개고 큰 창으로 볕이 들었다. 눈이 부신 그가 해를 보며 살짝 찡그린 표정이 마치 하늘에 있을 옵스트바움을 향해 윙크를 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광호 기자 kevin@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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