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감독 “나누는 지금이 가장 행복합니다”

손상호 기자 ssh@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한국 야구의 전설 ‘헐크’ 이만수 전 SK 와이번스 감독이 밴쿠버를 찾았다. 지난달 29일에 있었던 광림교회 30주년 기념 간증 집회를 위해 밴쿠버 교민 앞에 선 것이다.

이만수 감독은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수로 거론되며, 80-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슈퍼스타 중 하나다. 선수 시절 홈런을 칠 때마다 양팔을 들어 올리는 세레머니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이자 많은 팬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기도 했다.

97년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했던 이 감독은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코칭 스태프에 이름을 올려 2005년 메이저리그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 이후 한국으로 돌아가 SK 와이번스의 코치와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던 이 감독은 2014년 전혀 예상치 못한 행보를 걷는 중이다. ‘야구 불모지’ 라오스로 건너가 지난 5년간 라오스의 야구 발전과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것.

‘기다림과 감사’라는 주제로 열린 간증 집회에서 이만수 감독은 라오스 야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강단에 올라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특유의 에너지와 유머 넘치는 언변으로 삶의 고백을 이어가 그를 찾은 밴쿠버 교민들을 웃고, 감동케 했다.

길고 에너지 넘쳤던 간증 이후에도 이 감독은 그를 찾은 200여 명의 교민들 하나하나와 악수를 하고 쏟아지는 사진, 사인 요청에도 밝은 모습으로 빠짐없이 응하기도 했다. 그 이후 밴쿠버 조선일보는 이만수 감독과 인터뷰를 가졌다. 시차 적응과 긴 간증 시간 때문에 피곤했을 법도 했지만 인터뷰 시간 내내 그는 웃음과 에너지를 잃지 않았다.

밴쿠버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라고 들었어요. 이곳 느낌이 어떤가요?

"15년 만에 처음 왔는데 다시 와도 좋네요. 미국에서 살 동안 많은 도시를 다녔지만, 밴쿠버만큼 좋은 도시도 없는 것 같아요."  

헐크 파운데이션 이사장, 라오 J브라더스(라오스 최초의 야구단이자 국가대표팀) 구단주, 라오스 야구협회 부회장 등등 현재 맡고 계시는 직책이 참 많아요. 어떤 직책으로 불리는 게 가장 편한가요?

"다른 직책은 다 어색하더라고요. 감독이 제일 편안합니다."

2014년 SK 와이번스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근황에 대해 궁금해요.

"지난 5년간 정말 바쁘게 살았어요. 헐크 파운데이션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라오스 야구 발전에 힘쓰고 있고, 여기저기에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52군데, 올해는 48군데에 찾아가서 재능기부를 했더라고요. 사실 체력이 예전만치는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행복하게 하고 있습니다. "     

라오스에는 얼마나 자주 있는 건가요?

"계절마다 한 번씩 가서 열흘 정도 머물고 있어요. 현재 저는 재단 행정과 재능기부에 집중하고 있고, 라오스 현지에 파견한 지도자들이 선수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저는 물주죠(웃음)."

그 많은 나라 중에서 왜 하필 라오스로 가게 됐나요?

"SK 감독을 하던 2013년에 라오스에 계시는 한 선교사님께 재능기부를 부탁한다고 연락을 받았어요. 그 당시에는 워낙 바쁘기도 해서 “시간이 나면 가겠습니다”라고 둘러댔었죠. 그런데 그분이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전화해서 언제 오느냐고 계속 묻는 거예요. 완전 탱크였어요, 탱크. 제가 한 말도 있고 하니까 결국 “감독 그만두게 되면 한번 가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1년 만에 진짜 감독을 그만두게 되 버렸죠. 사실 저는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오랫동안 신경을 못 써준 아내와 동유럽 여행을 가려고 계획했더니 아내가 정색하더라고요. 감독 그만두면 라오스에 가기로 약속하지 않았었냐면서. 여행은 앞으로도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봉사는 미루면 평생 할 수 없으니 당장 라오스로 가라고 하더라고요. 그 소리를 듣고 그날 곧바로 비행기 티켓을 샀습니다. 그렇게 감독 그만두고 열흘 만에 라오스에 가게 됐어요."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이자 빈민국이에요. 처음 가서 힘들지 않았나요?

"제가 사실 일본을 제외하고는 다른 아시아 국가를 가본 적이 없었어요. 한국, 미국에서만 살다가 척박한 곳에 가니까 힘들더라고요. 실제로 거기 있다가 한국 돌아가서 뎅기열 때문에 한 달은 고생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길어봤자 한 달 있겠지 싶었는데 그곳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의 미소를 보니까 한국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싹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 덕분에 몇 달은 더 머무르게 됐고, 지금도 라오스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네요."

처음 갔을 때 라오스 야구 실력은 어느 정도였나요?

"라오스는 야구장은커녕 야구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던 곳이었어요. 처음에 야구 선수를 모집한다고 하니까 11명이 모였는데 그중 5명은 맨발로 왔더라고요. 11명으로는 야구를 할 수 없으니까 선수들을 모으기 위해 라오스에서 부족한 물과 빵을 준다고 모집했어요. 그랬더니 무려 500명이 찾아왔어요. 그 중 기초 체력을 테스트해 추리고 추려서 40명의 선수를 뽑은 게 라오스 최초의 야구팀이 된 겁니다."

지금은 야구 실력이 많이 성장했고 얼마 전 야구 리그도 처음 출범했다고 들었어요.

"처음에는 희생번트, 희생타에 대해 그렇게 설명해줘도 전혀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왜 내가 남을 위해 일부러 죽어야 하냐면서. 그래도 많이 노력해서 지금은 한국 중학교 수준까지는 올라온 것 같아요. 공이 빠른 친구는 시속 120km도 넘고요.  제대로 된 야구장도 없어서 축구장에서만 야구를 했었는데, 라오스 정부가 도와줘서 이제 올해 말에 라오스의 첫 야구장이 완공됩니다."

잠깐 예전 이야기를 꺼낼게요. 97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방출된 이후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 당시 미국을 택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나이가 들어서도 평생 야구선수를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몸이 따라 주질 않으니까 방출을 당했죠. 16년 동안 오직 삼성을 위해 뛰었는데 버려졌다는 마음에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도망치듯이 미국으로 가서 10년 동안 고생 참 많이 했습니다. 마이너리그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곳에 있는 유일한 동양인인데다가 야구선수치고는 체격도 작고, 영어도 못 해서 동료 코치들은 물론 스무살 어린 선수들에게도 무시를 받았어요. 이래 봬도 한국에서는 많은 사랑을 받는 홈런왕이었는데 미국에서는 수모를 당하니까 자존심도 상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었죠."

결국 버티고 실력을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소속 코치로 2005년 우승에 한몫을 담당하기도 했어요.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한 기억이 나네요.

"정말 기도하면서 버텼어요. 새벽기도도 매일 갔죠. 그리고 주눅들지 않고 만약 상대방이 욕하면 저도 같이 욕했어요.  그러다가 하루는 구단 모든 스태프와 선수들 앞에서 타격을 손보일 기회가 있었어요. 한동안 운동을 안 해서 걱정을 너무 많이 했는데 이게 웬걸. 타석에서 홈런을 뻥뻥 쳤었죠. 그 이후로는 인정을 받고 선수들도 먼저 저에게 다가와서 배우기 시작하더라고요. 2005년 우승 시절 때는 정말 재미있었어요. 코칭스태프, 선수들 모두 친했고 그 당시 감독이었던 오지 기엔은 아직도 연락해요. 그 당시 팬들이 저의 화이팅 넘치는 모습을 사랑해줬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이 감독은 2007년 한국으로 돌아가 SK의 수석코치, 2군 감독을 거쳐 2011년 SK의 감독을 맡아 팀을 2년 연속 준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2013년, 2014년에는 팀의 부진으로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선수와 코치 시절 항상 사랑만 받아왔던 그가 처음으로 많은 비난을 받던 시절이었다.  

SK 감독 시절 많은 비난으로 상처받지는 않았었는지요?

"그런 거 전혀 없었어요. 사실 외국에서 10년간 살면서 인종차별이다 뭐다 해서 스트레스도 무척 많이 받았었거든요. 그래서 훈련이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신앙이 아니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었겠죠."

한국, 특히 삼성 라이온즈에서는 이만수 감독을 그리워하는 야구팬들이 여전히 많이 있어요. 어떤 직책으로도 한국 야구판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요?

"아직은 그런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라오스 야구를 지금 그냥놓는다면 라오스 야구는 다시 죽을 거에요. 후배들한테 바통 좀 이어받으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다들 못한데요. 이제 와서 그만 두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일을 벌이기도 했어요. 당분간은 이 일을 해야 해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라오스 여자 국가대표팀은 2주 전에 말레이시아와 친선 경기에서 국제경기 사상 첫 1승을 거뒀어요. 그리고 남자팀은 아직 국제경기 승리는 없는데 빨리 1승을 해야죠. 그리고 2022년 중국 아시안게임에서 1승을 한다는 목표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선수 시절 MVP도 차지했고, 코치 시절에는 우승도 많이 경험했지요. 그 중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저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최고의 선수가 돼서 가장 많은 연봉과 많은 인기도 받아봤어요. 최고가 되면 감사하고 행복할 줄 알았는데 막상 되고 나니까 오히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피를 말리는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저는 2014년 이후 1년 내내 재능기부 하면서 5년 동안 단 1원의 월급도 받지 않고, 오히려 모았던 재산을 나눠주고 있어요. 항상 지키려고 했고 움켜쥐었던 것들을 놓아버리고 나누는 지금이 월드시리즈 우승했을 때 보다 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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