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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 ‘여성 창작’을 말하다

최희수 기자 ch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10-05 15:49

광화문시네마 공동대표 전고운 감독 데뷔작 / 제37회 밴쿠버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초청 / 취향·가치관 지키는 30대女 그려
전고운 감독에게 여성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화두다. 젊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자극적인 장면 없이 여성의 주체성을 그려내는 법을 안다. 그래서 인지 전 감독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 주인공들은 이야기의 장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낸다. 영화 속 여성 인물들의 얼굴은 전 감독의 표정을 대변하고, 동시에 당대의 문제의식과 현실을 가늠케 한다.

단편 영화 <내게 사랑은 너무 써(2008)> 이후 긴 공백기 끝에 첫 장편 입봉작 <소공녀(2017)>로 데뷔한 전고운 감독은 영화를 통해 'N포 세대'로 살아가는 30대 여성의 현실을 꼬집는 동시에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영화 <소공녀>는 한국 사회에서 가난에 허덕이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작품으로, 하루 일당 4만5천원을 쪼개 살아가는 30대 일용직 가사도우미 미소(이솜 분)가 새해부터 술값, 담뱃값, 월세 등 물가가 감당할 수 없이 오르자 결국 집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서는 내용을 그린다.

<소공녀>는 지난 3월 한국에서 개봉한 이후 뉴욕아시안영화제, 몬트리올 판타지아국제 영화제, LA 영화제 등 유수 해외 영화제에서 러브콜을 받아왔다. 지난 7월에는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 타이거 언케이지드 최우수 장편 영화상을 수상, 호평과 함께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한 전고운 감독이 이번엔 <소공녀>와 함께 지난 29일 밴쿠버 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영화제 상영작으로 초청된 <소공녀>는 지난 30일과 2일 인터내셔널 빌리지 극장에서 이미 성황리에 상영을 마쳤다. 공식 행사 후 다양한 수상에 빛나는 신인 여성 감독 전고운 감독과 작품과 영화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 지난 29일 밴쿠버 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전고운 감독(33). 사진 = 최희수 기자>


Q. 밴쿠버 영화제 신인 감독 국제 경쟁 부문인 용호상 경선에 올랐다. 다수 유명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는데 소감은

스스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 한국 영화 중에서는 문소리 배우 겸 감독과 함께 경선에 올랐는데 신인감독으로서 정말 큰 영광이다.
 
Q. 영화 <소공녀>로 많은 상을 거뭐졌다. 첫 장편 입봉작인데 얼마전 국제 무대에서 수상까지 하고,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제작할 당시엔 아무래도 첫 데뷔작이다 보니 한켠으로는 보상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웃음). 하지만 그게 진짜로 이뤄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저 운이 좋았다. ‘소공녀’라는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된 것이 부산국제영화제다. 그곳에서 운 좋게 상을 받으면서 개봉까지 할 수 있었고, 상 복은 그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영화로 세계 구경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은 이룬 것 같아서 기쁘다.

Q. 영화 <소공녀>는 어떤 영화인가.

내가 만든 영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석도 조금씩 바뀌더라. 그러나 바뀌지 않는 극의 기본인 중추적 배경으로 설명하자면 영화는 과열된 도시 ‘서울’에 대한 영화다. 서른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부조리나 말도 안 되게 치솟은 집값에 대한 분노, 서울을 향한 모든 불만들을 집결해서 담아냈다. 다소 무거운 영화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자극적인 장면 보다는 관객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유머러스함 속에 진중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Q. 영화의 영문 제목인 Microhabitat(미소서식지)는 어떤 의미를 갖나 

일반적으로 ‘미소서식지’라 해석되는 Microhabitat는 ‘미생물(미소)이 서식하는 아주 작은 곳’이라는 의미다. 일전에 한 인문학 서적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이 단어가 ‘공동’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더라. 공간이 많이 없는 도시에서는 인간은 서로에게 서식지가 되어줘야 하지 않나. 그런 공간을 주인공 미소가 찾아 떠돌아다니는 설정이 딱 맞아떨어진다고 느꼈다. 주인공 이름도 물론 거기에서 따왔다.
 
Q. <소공녀> 시나리오를 쓰기 전 소재는 어디에서 착상했나

결혼이 계기였던 것 같다. 서른 즈음 결혼을 하면서 원룸에서 살던 집을 투룸·쓰리룸으로 바꾸려고 보니 서울 집값이 어마무지하게 비싸더라. 애초에 부자 부모를 두거나 돈을 웬만큼 벌지 않는 이상 서울에서 집 구하기는 소위 ‘하늘의 별따기’였다. 또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서울로 모여들어야 했고 그 와중에 담뱃값까지 두 배 가까이 오르면서 눈처럼 쌓인 분노가 창작으로 터져나왔다. 
 
Q. 서울의 치솟는 집값에 결국 집을 포기하는 설정이 참 재밌었다. 영화에 본인의 이야기도 어느정도 녹여냈나

30대를 대표하는 한 여성으로서 서울에 살면서 느낀 많은 것들이 영화에 포함됐지만 정확히 내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미소는 내가 꿈꾸는, 현실에서는 마주할 수 없는 나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다. 서울에서 집하나 사겠다고 많은 걸 포기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그 반대 인물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고 해야할까. 그게 바로 미소였다.
 
Q. ‘위스키, 담배, 남자친구’를 미소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들로 설정한 의도는 뭔가. 어떻게 보면 모두 사치품들인데

미소는 사회의 정해진 틀을 거부하고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신여성이다. 미소에게 행복은 요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주거 공간인 ‘집’보다 위스키 한 잔, 담배 한 모금, 그리고 소소한 연애가 전부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에는 사회풍자적 의미가 담겨있다. 그저 ‘사치’에 불과한 이러한 세 가지 요소들은 사회적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인간을 나타낸다. 또 기성 세대에게 부정적인 인상의 술과 담배는 공평한 의미의 상징이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도 돈이 많은 사람도 모두 공통적으로 중독되는 것들이 바로 사랑, 술, 담배가 아닌가. 이 세상이 그런 것들에 취하지 않고는 살기 힘든 세상이기도 하고.
 
Q.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보면서 왜 이 영화를 ‘판타지 영화’라 했는 지 알 것 같았다. 집보다 담배와 위스키가 더 중요한 주인공 여성이 제멋을 지닌 당당한 여성으로 표현되지 않나

직설적이고 무거운 방식으로 현실을 풍자하는 영화는 기존에 많이 있어왔고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그저 관객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감 요소에 초점을 두다 보니 판타지적이고 아름다운 설정들이 들어간 것 같다. 사실 주인공 미소같은 친구들은 20대 때만해도 누군가의 동경 대상이었지 않나. 그러다 30대가 지나고 나니 같은 인간도 철이 없는, 사회 낙오자로 간주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은 낙오자라는 부정적 인식이 아직까지 팽배하다는 의미다.

Q. 영화는 N포세대 청춘들의 현실을 다룬 블랙 코미디 영화같으면서도 곳곳에 여성중심적인(페미니즘) 요소도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나는 페미니즘에 상당히 오래 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지만 그러한 요소들을 일부러 집어 넣은 건 아니다. 몇 가지 신경 쓴 점이 있다면  주인공 미소를 담배피는 여자로 설정한 것과 절대 치마를 입히지 않은 것. 담배피는 여자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의 시선을 바꾸고 싶었고, 가사도우미인 미소를 섹슈얼한 이미지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외 영화에 나온 술집여자나 시집살이 당하는 주부 혹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부인 등의 설정들은 일부러 꼬집으려고 하지 않아도 이미 널려있는 소재들이기 때문에 의도가 다분하진 않았다. 그래도 페미니즘이 평소 나의 관심분야이기도 하고 생각이 그 쪽으로 많이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의도와는 상관없이 영화에 녹아 들어갔을 수도 있다.
 
Q. 그러고 보니 여성을 주제로 한 영화들을 많이 연출했더라. 여성이라서 여성중심적인 영화를 찍는다고 봐야하나

맞는 말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중심적인 영화를 찍는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이 험난한 영화판에서 살아남으려면 가장 자신있는 무기가 필요한데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여성영화’ 혹은 ‘여성캐릭터’다. 여성을 주제로 제작하고 싶은 영화들도 많다. 예를 들면 바람둥이 여자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운동하는 여자 혹은 몸 잘쓰는 여자에 대한 내용 등이다.

Q. 여성감독으로 불리고 분류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여성감독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서 불쾌한 적은 없지만 한번도 여성감독이 되고 싶었던 적은 없다. 아직 우리나라 영화판에서 여성은 메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필리핀만 하더라도 그 나라에는 여성영화제가 따로 없다더라. 여성감독이 훨씬 많이 블록버스터를 찍기 때문이란다. 여성감독들이 영화 씬에서 남성만큼이나 메인으로 활동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도 그런 시대가 빨리 오길 바랄 뿐이다. 

Q. 감독으로서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되나. 향후 상업 영화 진출에 대한 생각은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사이의 괴리는 늘 존재하지만 어느 것이 낫다는 기준은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영화가 곧 독립영화라는 말은 옛말이라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괜찮은 예산에서 찍고싶다면 상업영화를 찍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나 또한 그렇다. 기회만 있다면 상업 영화로 더 좋은 영화를 찍고 싶은 것이 모든 영화감독들의 바람일거다. 앞으로의 행보로는 어떤 영화를 찍을 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정해진 바 없다. 다만 얼마 전 아이유 주연 단편 영화의 감독을 맡아 촬영을 끝마치고 휴식기를 가지고 있다. 

최희수 기자 chs@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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