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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운 이민 생활, 행복을 조제해 드립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12-18 15:30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32- 오유순 이사장
그녀의 인생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남편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종교학자이고, 아들 셋은 저마다의 분야에서 흔들리지 않을 기반을 일찌감치 구축해 놓았다. 첫째는 사진작가, 둘째와 셋째는 각각 의사와 투자상품 설계자로 활동 중이다.

이 같은 자랑거리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탄탄해 보인다.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복(福) 위에 노력을 보태며 살아 왔다. 약사이자 사업가인 오유순씨(사진)에 대한 이야기다.



“밴쿠버가 사람 살기 참 좋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한인사회에서 오유순씨는 여러 가지 직함으로 불린다. 우선 약국을 찾는 환자들에겐 “약사 선생님”으로 통할테고, 한인회를 이끌었던 탓에 “회장님”이라는 칭호도 받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봉사단체 무궁화재단과 한인장학재단 이사장이 그녀의 이름과 자주 결합되곤 한다.

이처럼 다양한 명함들은 그녀의 삶이 얼마나 꽉 짜여져 있는지 짐작케 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그녀는 바쁘다. 하루 24시간을 허투루 대하지 않고, 매순간에 충실하다. 이것이 올봄 한국의 여고 동창들과 칠순 잔치를 즐겼다는 오유순씨가 한인사회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의 일상이다.


캐나다에는 언제 오셨습니까?
1971년이었는데, 처음부터 이민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남편이나 저나 학위를 받는 게 캐나다를 찾게 된 애초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캐나다 대사관의 서류 심사관이 저희에게 이민을 권하면서 계획이 달라졌어요. 캐나다에서 영주권자로 생활하는 편이 여러모로 편할 거라는 게 이민을 추천한 이유였어요. 그땐 그랬어요. 이민 허가를 받는 게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습니다.

유학 후 계속해서 캐나다에 남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기 와서 첫아이를 낳았는데, 병원비를 한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좀 놀랐어요.그때 캐나다가 사람 살기에 참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공부하는 동안 캐나다에 정도 들었고, 그래서 자연스레 귀국 생각을 접게 된 것 같아요. 

그래도 낯선 땅에 정 붙이기가 처음부터 쉽진 않았을텐데요.
교회의 환대가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됐어요. 당시 교회엔 동양인이라곤 우리 가족 뿐이었요. 그런데도 누구 하나 이상한 시선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매주 예배 후에는 점심 식사를 대접받았고, 성가대를 이끌기도 했어요. 교회에서 우린 이방인이 아니라 가족이었던 거죠.

캐나다에 와서 약사 자격증을 다시 취득해야 했지요.
한국에서 약학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지만 이를 인정받지 못했어요. 약사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학부 3,4학년 과정을 다시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약학 지식을 더욱 넓힌 계기가 됐으니까요. 토론토 대학에서 공부를 끝내고 캐나다 약사 시험에 통과한 게 1976년이었을 거에요. 한인 약사로는 제가 아마 세번째였을 겁니다.

약사 면허 취득 과정은 어땠습니까?
힘들었지요. 처음엔 영어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아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도 6개월 정도 버티니까 수업은 어느 정도 쫓아갈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통학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거였어요. 남편이 온타리오주 해밀턴에 위치한 맥매스터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던 탓에, 저는 매일 토론토를 오가야 했어요. 고속버스와 시내버스에서만 하루 다섯 시간은 족히 보냈습니다.

토론토에 정착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한데요.
박사 과정을 마친 남편에게 곧바로 교수 자리가 주어진 것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각 주의 대학을 옮겨 다녀야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여러 주의 약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됐지요. 약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주마다 다른 약사 시험에 통과해야 했던 시절이었으니까…. 남편이 리자이나대학 교수로 정식 부임한 후부터는 그곳에 터전을 잡게 된 거에요.

그러다 밴쿠버에 오게 됐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밴쿠버가 천국에 가까운 곳이라는 걸 여기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동부 쪽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은퇴 후엔 밴쿠버에 살고 싶어 해요. 환경이 사람 살기에 그만큼 좋다는 얘기에요. 저 같은 경우엔 친정 부모님을 모시게 된 후부터 밴쿠버를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1991년에 이곳에 정착하게 됐지요.








“모두에게 주어진 순간 순간이 바로 기적이에요”


오유순씨의 “인생 설계도”에 대해 물어 본 적이 있었다. 그녀의 답은 명료했다. 20대 중반까지는 학업에 매진했고, 이후 20년 동안은 자녀 교육이 최우선이었다. 45세부터 10년 동안은 사업에 충실했던 시기. 그 다음엔 기부자로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밴쿠버를 찾았을 때, 그녀는 45세였다.


45세, 사업가로서 첫 시작이었군요.
밴쿠버에 온 이듬해부터 제 약국을 경영하기 시작했어요. 메디컬센터 내에 자리 잡은 약국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봐도 약사 업무에 온 정성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신뢰도 얻었고, 지역 종합병원의 지정 약국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밴쿠버에 와서 재산을 많이 늘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비결이 있을텐데요. 
약국을 경영하며 10년간 모은 돈을 금융상품이나 부동산에 투자했고 그걸로 이익을 봤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돈이 저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지나치게 종교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신이 제게 맡겨 놓은 거라 믿고 있어요.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배우며 자랐거든요. 제 부모님께선 재력가셨지만, 그걸 자랑하지 않으셨어요. 동네의 거지들까지 거두며 남을 위해 사셨습니다. 저도 그 길을 가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검소하셨다는 얘긴가요.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제일 먼저 구입한 것이 바로 미용 도구였어요. 그걸로 남편 머리를 손질했고 나중엔 아이들 머리도 제가 다 손수 잘라 주었지요. 미용실 가는 걸 꺼려야 할 정도로 약사 보수가 작았던 건 물론 아니었지만, 당연히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끼지 않으면 “남의 땅”에 정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이 검소함이 부모님께서 제게 물려주신 자산이고, 캐나다에 잘 뿌리 내리게 해준 힘이라 생각해요.

지금 얘기를 1.5세대나 2세대는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합니까?
제 생각이나 가치관을 후세들에게는 강요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끼는 습관은 배웠으면 하지요. 하지만 한인 2세대는 1세대의 틀에 갇혀 있지 않고, 1세대가 차려 놓은 기반 위에서 자기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으면 좋겠어요.

오유순씨만의 2세대, 그러니까 자제들이 잘 성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배경이 궁금한데요.
스스로 컸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아이들에게 해준 것이 있다면 끊임 없이 바쁘게 살게 한 것, 이게 다인 것 같습니다. 바이올린, 피아노, 바스켓볼, 심지어 군악대까지 할 수 있는 건 죄다 시켰어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쫓아갈 수 없는 일과였죠. 어찌됐건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아이들 스스로 매 순간 순간이 내가 소중히 다뤄야 할 “기적”이란 걸 체감하게 된 것 같습니다.

순간 순간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것, 한인사회 후세들을 위한 조언으로 들립니다.
맞아요. 저는 거기에 성공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저는 시간을 아낍니다. 저를 위해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죠. 오전 5시부터9시까지가 제게는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에요. 나만을 위한 운동, 나만을 위한 명상을 하다보면 삶이 저절로 행복해 집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먼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게 되면 대가는 반드시 따라온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제 칠순이신데요. 은퇴하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한다는 게 오유순씨에겐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내 일을 그저 즐기고 있는 거죠. 환자들을 돌볼 수 있다는 게 제겐 무엇보다 큰 기쁨입니다. 계속해서 현역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해야 겠지요. 규칙적인 생활과 식생활, 그리고 휴식 등으로 건강을 챙기려고 합니다. 이건 제게도, 그리고 동년배나 선배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얘기에요.

무궁화재단과 한인장학재단 이사장으로서 기부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계시지요.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누는 것, 바로 이것이 노년의 삶이 행복해지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마음에 맞는 친구까지 많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오유순씨는 인터뷰 말미에 설거지할 때에는 설거지에만 몰두하고, 누군가와 자리를 함께 할 때에는 그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조언했다.매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라는 얘기를 또 한번 강조한 것이다. 이것이 한인 후배 한사람 한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그녀만의 성공의 열쇠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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