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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떠난 아이, “밀알” 되어 돌아오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10-16 13:39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24 – 국민훈장 동백장 받은 시온선교합창단 정성자 지휘자
주밴쿠버 한국총영사관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온 건 지난 추석 무렵이었다. 수화기를 든 그녀에게 전화 속 목소리는 한국에 다녀올 수 있겠냐고 물었다. “왜죠?”라는 그녀의 되물음에 “대한민국 정부의 훈장 수여 대상으로 당신이 선정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되돌아왔다. 훈장 수여식은 10월 5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릴 거라고 했다. 

훈장을 받게 됐다는 소식에 그녀는 기쁨보다는 부끄러움과 먼저 마주했다. 돌이켜보건대 훈장의 무게를 감당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추천했고, 한국 외교부와 청와대의 심사 과정을 거쳐 수훈자로 최종 결정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음악을 통해 한국을 널리 알렸고, 각종 구호단체에서 명예대사로 활동한 공로가 인정된다”는 것이 훈장을 받게 된 표면상의 이유였다. 하지만 그녀에겐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남편을 비롯해 오랜 시간 자신과 함께해 온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바로 그것이다.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자인 밴쿠버시온선교합창단의 지휘자 정성자씨에 대한 이야기다.



“무대에 진심을 담았다, 그렇게 노래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피아노와 가까이 했다. 교회 성가대에서 지휘자로 봉사하던 아버지의 바람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딸을 반주자로 키우고 싶었고, 그 뜻에 따라 살던 아이는 자연스레 음대(서울대학교 피아노과)에 진학하게 됐다.

그녀의 삶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대학 4학년 때였다. 유학을 준비하던 차에 선을 보게 됐다. 당시 다니던 교회의 목사가 주선한 만남이었다. 상대는 목사를 아버지로 둔 남자였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으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산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인연임을 금세 알아채린 모양이다. 수요일에 처음 만났고, 그 다음주 월요일에 식을 올렸다. 그리고 그녀가 대학을 졸업한 1978년, 낯선 타지 LA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남편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그가 PCV의 정문현 회장이다.


명문대 졸업, 이름난 사업가와의 결혼, 그리고 동백장 수훈까지…, 남들 보기에 부러워할 것 하나 없는 삶인데요.
그렇게 비춰질 수 있겠지만, 제 인생이 그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어요. 이민 생활의 시작은, 물론 경제적인 면에서 보자면 괜찮았지요. 남편의 사업이 기대 이상으로 잘됐거든요. 덕분에 좋은 집에 살게 됐고, 리무진에 전용 기사까지 두게 됐어요. 젊은 나이에 큰돈을 만지게 된 거였죠.

승승장구였군요.
하지만 큰 시련도 있었습니다. 1990년 초반, 금리가 갑자기 오르면서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어요. 벌여놓은 일은 많았는데, 자금은 제때 회수되지 않았어요. 결국엔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살던 집도, 타던 차도 모두 내놓고,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했어요. 그리고 수중에 돈 한푼 없이 시애틀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왠지 서러웠을 것 같습니다.
무척 그랬지요. 특히 살 곳을 얻어야 할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집주인들이 집을 잘 내주지 않으려 했거든요. 아이들이 많다는 게 그 이유였죠. 시애틀에 3년 사는 동안 1년에 한번씩 이삿짐을 싸야 했습니다. (정문현·정성자 부부는 다섯 아이를 뒀다.) 그런데 이 때의 경험이 우리 부부에겐 참 소중합니다.

왜죠?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면 틀림 없이 교만해졌을 거라고, 어렵고 힘든 사람의 사정 따위는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고 남편이 그러더군요. 저도 그 얘기에 동의해요. 

시애틀 생활을 마치고 다시 북진을 결정합니다. 밴쿠버에 정착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1995년 밴쿠버로 올라왔는데, 그 전에 밴쿠버의 실업률이 꽤 높다는 걸 남편이 알고 있었어요.실업률이 높은 곳에 직업전문학교를 세우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고, 그 예상이 적중했지요. 

사업 자금은 어떻게 조달했는지 궁금한데요. 
마침 미국 정부로부터 이제까지 꼬박꼬박 내왔던 세금의 일부를 돌려받게 됐습니다. 이 돈이 재기의 발판이 됐다고 생각해요.

밴쿠버시온선교합창단과의 인연은, 1995년 이곳에 왔을 때부터 시작된 건가요?
본격적으로는 그렇지만, 시애틀 살 때부터 알고는 있었어요. 시온합창단이 주최하는 음악회에 연주자로 참여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참 좋은 합창단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캐나다 이민 후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게 됐습니다. 

시온합창단이 만들어진 지 33년이나 됐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오랜 역사만큼이나 내세울 게 많은 합창단이라는 생각이에요. 무엇보다 우리 단원들을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를 아끼고, 또 그런 마음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온합창단이 한인사회 뿐 아니라 타문화권의 주목을 받게 된 이유를 “자선정기연주회”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동 합창단은 매년 공연을 통해 시리아 난민, 아프리카 아동, 북한 결핵 환자 등을 돕기 위한 모금 활동을 펼쳐 왔다.)
시온합창단의 자선공연은 제가 처음 시작한 게 아니에요. 원래부터 해왔던 것을 저와 지금의 단원들이 물려받은 겁니다. 우리는 무대에 진심을 담습니다. 음악은 두번째에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 이를 통해 세상 저편에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이게 첫번째 목표지요. 

진심을 담는다, 좋은 얘긴데요.
북한 결핵 환자를 돕겠다고 결정했을 때, 우리는 매번 연습 때마다 그들의 치유를 기원하는 기도를 먼저 올립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진심인 것 같습니다.



정성자씨. 그녀의 아들 조셉씨가 사진 뒷편 초상화에 담겨져 있다.




“내가 겪은 슬픔은, 슬픔이 아니었다”

정성자씨와 그녀의 남편 정문현 회장은 또 다른 자선사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2012년 이후 시작된 장학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정 회장 부부는 지난해에도 11만6000달러를 대학생 58명을 위해 내놓았다. 이 사업의 밀알 하나가 된 것은 이들 부부의 장남인 조셉(Joseph)씨였다.


1980년 세상에 태어난 첫 아이는 몸이 온전치 않았다. 10개월 됐을 때 의료사고를 당한 이후부터 자폐증 증세를 보였고, 심할 때는 경기를 일으켰다. 아이 엄마의 마음은 쓰렸다. 아이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미안해요”라는 말을 달고 살아야 했다. 장애아의 엄마, 그 운명을 자신이 왜 감당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과 함께, 아이와 엄마의 거리는 당연한 듯 가까워졌다. 아이의 때묻지 않은 영혼이 엄마는 좋았다. 그리나 이 기쁨은 지난 2011년 조셉씨가 사고로 목숨을 잃으면서 순간 정지된다. 남은 엄마는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그러다 신과 만났고, 그 체험을 고백했다. 


신에 대한 원망이 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랬지요. 나름 당신을 섬기며 살아왔다고 믿어 왔는데, 그 대가가 이거냐고 되묻고 싶었어요. 하지만 원망은 아이가 떠나고 한 달 뒤 사라졌습니다. 

어떻게요?
휴가를 떠났습니다. 매년 해오던 가족 여행이었어요. 당연히 취소하려 했지만, 남은 아이들이 억지로 저를 끌고 갔지요. 제 아픔을 달래주려 했던 거였어요. 자기들도 힘들텐데 말이죠. 수영을 좋아했던 조셉을 위해 우리 가족은 수영하기 좋은 바닷가로 여행을 가곤 했는데, 그해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디였어요?
카리브해 어느 바닷가였어요. 그런데 바닷가에 서자마자 여행 온 것이 미칠 정도로 후회됐습니다. 바다가 너무 아름다웠고, 그 바다를 보며 떠난 아이가 생각나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꿈 속에서 처음으로 조셉을 만났습니다. 제게 인사 한 마디 못하고 떠난 아이는 살아 있을 때완 달라 보였습니다. 육사 생도처럼 늘름했지요. 제 어깨를 위로하듯 두드려 주더군요. 말은 안 했지만 “엄마, 그 동안 고생 많았어”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어요.  간증(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고백하는 것)하자면 아이는 행복해 보였고, 그 행복한 표정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조셉은 천국에 있구나, 그런 거구나…. 기쁜 마음으로 여행지에 있던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보혈”(그리스도의 피, 희생을 의미한다)을 느꼈고, 그때부터는 모든 원망이 사라졌어요. 대신 평화가 찾아왔지요.


밴쿠버로 돌아온 뒤 정성자씨는 “조스테이블”이라는 커피 가게를 열었다. 조셉과 같은 장애아를 돕기 위해 만든 공간이었다. 장애아를 자녀로 둔 부모들의 모임 “베네스다” 모임에도 더욱 충실했다. 또 한 가지, 앞서 얘기한대로 “조셉 장학금”을 만들었다. 조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헤택을 보게 된 것이다. 조셉이 밀알이 되어 더욱 그 영토를 넓힌 자선사업, 엄마는 훈장을 받았다. 정성자씨는 “훈장은 내가 대표로 받은 것 뿐이다. 훈장은 남을 위해 살고 있는 모두, 시온선교합창단 단원들과 베네스다 어머니회 회원들에게 주어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긍정적이며 매사에 감사하는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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