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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를 사랑한다, 고로 나는 행복하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10-02 14:57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22, 한인사회 대표 극단 하누리 “웰컴투동막골”로 돌아오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매년 가을, 밴쿠버 조선일보와 극단 하누리는 마치 깨져서는 안 될 약속이라도 한듯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밴쿠버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극단 하누리,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누리 정기 무대”에 대한 소개글은 습관 같은 이 만남을 통해 작성된다.

하누리와의 주기적인 만남은, 어찌 보면 식상함 그 자체일 수도 있다. 매년 정기 공연을 앞두고 해왔던 얘기들이 당연하듯 재생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하누리 사람들의 “뻔한 말”을 들으면서도, 이상하게 설렌다. 또 다른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어서다. 하누리의 연극을 편견 없이 봐왔던 사람이라면 이 설렘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의 새로움, 그러니까 정기 공연 작품은 장진 원작의“웰컴투동막골”이다. 윤명주 하누리 대표와 이 극단의 오랜 한식구인 정병렬씨, 그리고 김현석 연출을 함께 만났다. 자, 지금부터 웰컴투동막골, 웰컴투하누리!



이번에는 꽤 “큰놈”을 건드렸다


웰컴투동막골은 영화로도 익히 알려진 작품이다.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피냄새가 진동하는 절실한 시대에도 인간은 인간으로서 서로에 대한 가치를 지켜낼 수 있다는 일종의 희망을 보여준다. 가치관이 달라도, 피부색이 달라도, 혹은 명석함의 차이가 달라도 사라지지 않는 그런 희망 말이다. 여러 문화권이 공존하는 밴쿠버 사회에서 웰컴투동막골이 꺼내려는 메시지는 일단 환영받을만하다. 하누리의 웰컴투동막골은 한 달 후인 11월 5일부터 3일간 버나비 쉐보트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웰컴투동막골이라, 이번에는 꽤 “큰놈”을 건드렸다는 생각인데요. 전쟁 장면 같은 것도 연출돼야 할 테고, 배우들도 여럿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김현석 연출가(이하 김)_ 총 열여덟 명의 배우가 무대에 서게 돼요. 솔직히 연극에 필요한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까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서로 지치고 힘든 부분이 생기더군요. 그래도 이제까지 해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연극에, 우리도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큰 연극, 웰컴투동막골을 선택한 이유에요.

대작인만큼 준비 과정 또한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김_준비 기간만 1년은 족히 된 것 같아요. 리딩 작업도 오래 했고…. 한번 연습을 시작하면 금방 새벽 한두 시가 되곤 해요. 당연히 연극 외의 일들, 그러니까 가족들에게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게 단원 누구에게나 속상한 부분이겠지요. 좋아하는 연극을 실컷 하고 있지만 말이에요.

윤명주 대표(이하 윤)_저도 그래요. 연극에 빠져들면 빠질수록 집안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요. 공연 날짜가 다가오면 연습량이 늘어나거든요. 토요일에는 거의 밤을 새다시피 연습하는데, 정말 큰일이에요. 아무리 집에서 눈총을 준다 해도 이제는 막바지라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연극이 끝나면 그 동안 밀린 빚을 다 갚는 수밖에.

정병렬(이하 정)_저는 약간 속은 느낌이에요. 대사 딱 두 마디만 하면 된다고 해서 이번 연극에 들어왔는데, 중간에 배역이 변경됐거든요. 대사량이 많아져서 너무 버겁습니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그만둔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연극은 말이에요. 작은 배역이든 큰 배역이든 한사람만 빠지면 무대에 올릴 수가 없어요.

윤_맞아요. 사소한 부품 하나만 잘못돼도 멈춰버리는 기계와 같죠.


중간에 역할이 바뀐 특별한 사정이 있었나요?
김_몇몇 친구들이 버텨내지 못하고 중간에 빠져나가곤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너무 허탈하게 느껴졌어요.

윤_하누리 단원들 중 연극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없어요. 다른 직업으로 다들 저마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렇다 보니 연습 시간 맞추기가 쉽지가 않죠. 연습에 한두 번 빠지게 되다 보면 결국 대열에서 이탈하게 돼요.




이곳 밴쿠버에서 한국어로 된, 그것도 매우 수준 높은 연극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큰 행복이다. 사진 왼쪽부터 윤명주 대표, 정훈희 사무장,정병렬씨.   
입장권 및 후원 문의_윤명주 대표 (778)829-5718, 한남여행사 (604)931-3366



또 다른 나와 만나는 눈부신 통로, 바로 연극


마음이 쓰렸겠어요.
윤_그래도 전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힘든 부분도 있지만 우리는 한 작품을 위해 함께할 테고, 이 과정을 통해 발전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될 결과물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값질 거라는 게 제 의건이에요. 어떤 결론을 미리 정해 놓지 말고, 연극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나 저력을 계속해서 숙성시키는 것, 이런 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찌됐건 쓰리고 힘든 경우도 있는데, 계속해서 연극에 매달리는 이유가 뭔가요? 
정_연극을 통해 다른 저와 만날 수 있었어요. 일종의 행운인 셈이었죠. 어렸을 때만 해도 저는 숫기 따윈 전혀 없었어요. 선생님의 사소한 질문에도 금세 얼굴이 빨개지는 그런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 연극반 활동을 한 후부터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말주변도 좋아진데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두렵지 않았어요. 이것이 제가 연극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윤_연극이 끝나고 난 후의 느낌을 공유하다 보면 연극의 매력을 더욱 체감하게 되죠. 연극을 준비할 때까지의 과정이 머릿속에 새겨지면서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와도 접하게 되는데, 이게 저는 너무 좋습니다. 

김_한국에서 영화나 연극 무대 디자이너로 일하다 밴쿠버에 오게 됐어요. 그러다 이곳에서 계속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영주권을 받기 위해 애썼지요. 하누리와의 인연이 시작된 게 그때였어요. 마음의 여유는 다소 없었겠지만, 이곳 밴쿠버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 혹은 잘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했습니다. 하누리를 통해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김현석씨의 아내 역시 하누리 단원이다), 하누리 입단 후 이곳 영화 제작소에서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니 하누리는 제게 복덩이 같은 존재인 거죠.

그렇게 좋아하는 연극, 그 무대가 끝나면 상당히 허전할 것 같습니다.
김-끝나봐야 알겠지만, 지금 상황만 놓고 보자면 홀가분하지 않을까요. 준비 과정이 너무 고되네요. 제작비 문제도 너무 버겁고.

입장 수익으로는 제작비가 감당이 안되는 모양입니다.
윤_사실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경비를 줄인다 해도 대관료 등 기본적으로 나가는 돈은 저희가 어찌할 수 없으니까요.

정_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입장료는 똑같이 20달러인데, 그렇다고 입장료를 올리기도 좀 뭐합니다. 20달러도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요.
 
김_통상적인 연극 관람료를 고려할 때, 그리고 저희 작품의 질을 생각할 때, 저는 20달러가 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번 연극을 보는 관객들은 많이 울고, 또 많이 웃을 겁니다. 자신해요.

웰컴투동막골에 거는 각자의 기대에 대해 예기해 볼까요?
정_6·25전쟁이 소재인 만큼, 캐나다 참전용사들을 이번 연극에 초대했습니다.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웰컴투동막골을 통해 표현하고 싶습니다.

윤_한인사회 뿐 아니라 이곳 캐나다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 하누리가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웰컴투동막골이 그런 고민의 결과물 중 하나가 될 거에요.

김_저는 밴쿠버가 너무 좋습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밴쿠버에 와서 내가 좋아하는 일, 다시 말해 연극 연출가의 꿈을 이룰 수 있었으니까요. 밴쿠버를 사랑하고, 그래서 행복합니다. 이번 연극에서 많은 관객들이 그런 행복을 느끼셨으면 합니다. 웰컴투동막골, 웰컴투하누리!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웰컴투동막골>
일시_11월 5일(금) 오후 7시 30분,  11월 6일·7일 각각 오후 4시 30분, 오후 7시 30분
장소_ Shadbolt Centre for The Arts (James Cowan Theatre) 6450 Deer Lake Ave. Burnaby.
입장권 및 후원 문의_윤명주 대표 (778)829-5718, 한남여행사 (604)931-3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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