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우리 엄마, 아빠라고 생각하면 못할 것 없어"

박준형 기자 jun@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7-23 13:44

몸 불편한 고령 환자들 가족처럼 돌보는 커뮤니티 헬스케어 워커 이선화씨
환자들을 떠올리는 그의 얼굴에서 밝은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다.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서 환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커뮤니티 헬스케어 워커(Community Healthcare Worker)로 일하며 24시간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돌보는 이선화(37·여)씨다.

실무간호사인 LPN(Licensed Practical Nurse)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이씨는 현재 랭리에서 5년째 노인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당초 목표로 했던 간호사와는 다른 업무지만 환자들과 가족처럼 지낼 수 있는 점이 좋아 계속해서 이 일을 하고 있다. 이씨는 "환자들과 같이 여행도 가고 휴가도 즐기면서 함께 어울려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며 "LPN과 비교해 임금 차이는 있지만 환자도 편하고 나도 편해서 일을 하다 보니 올해로 5년째가 됐다"고 말했다.

그가 하는 일은 환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돕는 것이다. 세수를 시키고 옷을 갈아입히며 식사를 챙겨준다. 외출도 함께 하고 잠들 때도 곁에 있어 준다. 환자들 대부분이 고령에 중증이라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때도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는 절대 긍정적인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는 "힘들 때는 '이 분이 우리 엄마, 아빠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다"며 "환자들이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못할 것이 없다. '우리 부모도 이런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일을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도움이 될 때 보람을 느낀다. 사람이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라며 환한 웃음을 보이는 그에게서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5년째 노인 환자들을 돌보는 커뮤니티 헬스케어 워커 이선화씨. 박준형기자 jun@vanchosun.com>

커뮤니티 헬스케어 워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나이가 많거나 장애가 있어 의료 보조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룹홈(Group Home)이 있다. 그룹홈에서 거주하는 환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한국에서 회사원으로 재직하던 중 2003년 12월 결혼을 했고 한 달 후인 2004년 1월 신랑 학업 문제로 캐나다에 왔다. 처음부터 이민이 목적은 아니었는데 아이도 생기고 남편도 취업이 돼서 이곳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서브웨이(Subway)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같이 일하던 한국인 언니로부터 '젊은 사람이 여기서 뭐하냐. 빨리 공부해서 전문직을 가져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분이 의료 분야를 권유했고 며칠간 고민한 후에 2006년 커뮤니티 헬스케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레지던트 케어 어텐던트(Resident Care Attendant·RCA) 코스를 등록했다. 공부를 마친 후 처음 일한 곳은 델타에 있는 굉장히 큰 요양원이었다. 일을 하다 보니까 재미도 있었고 적성에도 맞았다. 하지만 RCA는 일할 수 있는 제한이 많다. 그래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LPN 자격증을 취득했다. LPN부터 병원에서 일할 수 있는 간호사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현재는 정확히 간호사는 아닌 것 같은데?

"당시 LPN을 땄지만 취업이 어려웠다. 그래서 같이 공부했던 친구 소개로 랭리에 있는 LACL(Langley Association for Community Living)에 원서를 넣었는데 취업이 됐다. 여기서 일을 하다 보니까 이 일도 좋았다. 환자들과 가족처럼 지내면서 같이 여행도 가고 휴가도 즐기면서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살게 도와주는 것이 좋았다. 솔직히 LPN과 비교해 임금 차이는 있다. 하지만 LPN으로 일하면서 힘들어서 그만둔 친구들이 많다. 간호사는 1명이 돌봐야 하는 환자가 많지만 이 일은 거의 1대 1 서비스가 가능하다. 환자 4명에 3명꼴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도 편하고 환자도 편한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일을 한 것이 올해로 5년째가 됐다."

현재 돌보는 환자들은 몇 명인가?

"지금 일하는 그룹홈은 4명이 사는 집이다. 50~7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환자 4명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 갈아입는 것부터 시작해서 식사, 외출 등 모든 것을 돕는다. 24시간 항상 함께 거주하면서 환자들을 돌본다. 근로자들은 3교대로 근무한다. 대체로 중증 환자들이다. 다운증후군이나 자폐, 소아마비 등을 앓고 있어 혼자 움직일 수 없고 혼자 걷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항상 옆에 누군가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평생 돌봐야 하는데 병원에 계속해서 입원해 있을 수는 없으니 이곳을 찾는다."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더럽고 어려운 일도 있을텐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만약 역겹다거나 더럽다고 느꼈다면 처음부터 LPN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환자를 돌보는 것이 싫었으면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부분들은 괜찮았다. 아마 종교를 갖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래도 유독 힘든 순간이 있으면 어떻게 대처하나?

"너무 폭력적이고 난폭하거나 대소변으로 사고를 쳐서 손도 댈 수 없을 정도일 때는 '이 분이 우리 엄마, 아빠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늙어서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만약 우리 부모가 모르는 사람한테 몸을 맡겨야 할 경우 학대를 받거나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속상하지 않나. 그래서 환자들이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못할 것이 없다. '우리 부모도 이런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일을 한다. 어렵긴 하지만 적성에도 맞으니까 할 수 있는 것 같다. 대소변을 다 치우고 환자들과 같이 점심을 먹을 때면 일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우리도 참 대단하다'고 웃으며 말한다. 예를 들어 내 남편이 밥을 먹다가 방귀를 끼면 싫은데 환자들의 경우는 받아들여지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 몇 명의 환자를 돌봤나?

"굉장히 많다. 한 번 환자를 맡으면 돌아가실 때까지 돌본다. 그룹홈은 가족처럼 지내서 돌아가실 때 굉장히 슬프다. 작년에 94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식도 참석했는데 마음이 안 좋았다. 이 할아버지는 다른 요양원에서 심각한 학대를 받고 우리한테 온 환자였다. 처음에 올 때 건강이 굉장히 좋지 않아서 5~7년 내 돌아가실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지내면서 20~30년 더 살고 94세까지 살다가 돌아가셨다. 이곳에 와서 여생을 편안하고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다 가셨기 때문에 슬프기도 하지만 보람도 있다."

특별히 기억나는 환자 있나?

"예전에 치매에 걸린 50대 초반 한국인이 단기로 왔다. 그런데 영어가 안 되서 다른 간호사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한국말로 인사했더니 반가워했다. 이 일을 하는 한국인이 너무 소수다. 중국이나 인도, 필리핀 사람들은 많은데 한국인은 너무 적은 현실이 안타깝다. 영어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도전하지 못하는 한국인을 보면 안타깝다. 특히 영어 때문에 자신감이 없는 한국인들이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직접 부딪혀서 일을 하다 보면 별 것 아니다."

두려워하는 한국인들에게 이 일의 매력을 어필한다면?

"내가 환자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도움이 될 때 보람을 느낀다. 조금만 도와줘도 환자들이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면 나도 좋다. 솔직히 힘든 일이지만 그런 보람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인 것 같다. 사람이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박준형기자 jun@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정성 변호사 “공부만 잘해서는 곤란하다”
자녀에게 모든 걸 잘해 주고 싶은 게 보통의 부모 마음이다. 갓 태어난 아이가 스스로 몸을 뒤집고, 앉고, 걷고, 뛰게 되는 그 순간순간이 부모에겐 가슴 벅찬 감동이자 동시에 사는 힘이...
“캐나다에서 경찰 되기, 그 성공의 여정을 공유합니다”
‘성공 스토리’에는 세간의 이목이 늘 쉽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반듯한 집과 자동차, 혹은 넉넉한 통장 잔고를 보유하게 된 배경이, 보통사람 입장에서는 궁금할 수밖에 없어서다. 하지만...
“캐나다에 온전히 정착한다는 것은…”
밴쿠버는 첫눈에 마음을 내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다. 목석이 아니라면, 밴쿠버가 품은 숲과 호수에, 도심의 세련된 빌딩가 사이에서도 느낄 수 있는 산뜻한 바람에, 혹은 이방인에게도...
허전한 이민자의 삶, 아빠는 늘 슈퍼맨이었다
극단 하누리 2016년 정기 공연작 <오 마이 슈퍼맨> 10월 20일부터 22일까지“하누리 또 한번의 행복한 가을을 연출한다”오래 전의 풍경이 문득 재생될 때, 우리들 대부분은 '슈퍼맨'과...
본국 영어교사부터 미래의 사회복지사까지
“내가 했던 값진 경험, 그리고 앞으로의 길”이곳 밴쿠버 한인사회에서 유독 반짝거리는 단체가 하나 있다. 한인 1.5세와 2세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봉사단체 'C3소사이어티'가 바로 그...
열 네 살에 UBC 조기 입학 “딴짓하는 아이에게서 가능성을 보다”
딴짓하는 아이는 걱정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이런 아이의 세계 속에서는 사회에서 정한 '중요도의 순서'가 뒤죽박죽 섞여 버리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에를 들어 학교 숙제는...
“성공 취업, 코업이 정답이다”
대학교를 제때, 그러니까 4년 만에 졸업했다는 이력서상의 기술은 어느 면에서는 자랑 거리가 되기 어렵다. 아무런 생존 기술 없이 정글 생활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산만하다고 평가되던 아이, 영재로 인정받기까지"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독 앳된 얼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스스로를 “이번에 UBC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게 된 제임스 천(한국명 천현석·사진)”이라고 소개하는데, 그 말이 반농담처럼...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7_밴쿠버시온선교합창단 지휘자 정성자
기름진 땅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빚진 자'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 채무를 이행하기 위해 그녀는 올해에도 무대에 선다. 자신이 지휘자로 몸담고 있는...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6_ 안동차전놀이 보존회 이재춘 회장
제 15회 한인 문화의 날 8월 6일 버나비 스완가드 스테디움에서“제 15회 한인 문화의 날”이 오는 8월 6일 버나비 스완가드스테디움에서 열린다. 밴쿠버한인문화협회(회장 석필원)가...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_55 <밤차>의 작곡가 유승엽
그는 KBS 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 소개될 만큼 유명한 작곡가였다. 하지만 이곳 밴쿠버에 정착한 1991년 후부터는 대중 가요를 만드는 일에 인색했다. 대신 오카리나 연주에...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4_권천학 시인, 이청초 화백
한인문화협회 후원 오는 8월 14일까지, “여백 채워줄 당신의 생각은…”“포트무디 아트센터”는 트라이시티 세인트존슨가(St. Johns St.)에 서 있는, 소박하면서도 넉넉한 느낌의 화랑이다....
사진작가 줄리아 리씨의 밀알 사진 프로젝트
“아름답다"고 했을 때, 화자가 느낀 아름다움 그대로를 지면에 옮길 수는 없다. 객관적 정의가 불가능하기에 신문 기사에서 “아름답다”는 함부로 올릴 말이 아니다. 그러나 ...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3_법률공증사 최병하
특정한 사실을 공적으로 증명하는 행위, 즉 공증은 적어도 새 이민자들에게 있어서는 꽤나 익숙한 단어다. 공증이라는 절차를 통해 한국에서의 경력 혹은 학력 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2_월드옥타 밴쿠버 지회 차세대 대표 김진기
1인 무역회사 <글로벌서플라이트레이드ltd>의 김진기 대표(사진)는 솔직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불필요한 수식어를 보태지 않는다. 그저 솔직 그리고 담백하게 지난 시절의...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1_이리디아메디컬 프로젝트 매니저 라이언 조
소년은 미국인이 되고 싶었다. 아니, 자신은 미국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믿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유년과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미국 시카고에서 보내게 된...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0-한국전통예술원 한창현 원장
익숙했던 요리에서 원재료의 맛을 찾아내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조미료나 양념의 향이 지나치게 강한 탓이다. 값비싼 참치 뱃살과 그저 흔한 기름치가 미각 세포 내에 동일한 맛으로...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49_ 2회 연속 태권도 올림픽 심판 김송철씨
“한류”(Hallyu)라는 단어가 사전에 올라오기 훨씬 전에도, 세계는 이미 한국의 대표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태권도다. 세계 태권도연맹에 가입한 나라는 현재까지 총...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48_박은숙 해오름 한국문화학교 교장
캐나다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0여년 전 어느 날이었다. 전혀 다른 피부색의 누군가가 그녀에게 다가와 갑작스레 물었다.“혹시 한국 사람인가요?”리치먼드의 한 쇼핑몰에서 마침...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47_ 연세 가족 음악회 김혜영씨
음악은 문서화가 불가능한 영역에 서 있다. 악보라는 페어퍼가 있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음표들의 나열일 뿐, 그 자체로 “소리”와 “즐거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활자로 기록될...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