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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민생활, 혼자가 아닌 모두여서 행복합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6-05 13:50

모두미술인협회 고요한·김희정 화가 부부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8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내 마음 속 세계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화폭에 옮기고 싶었다. 그래서 이민을 결심했다. 낯선 땅에서라면 작품 활동에 더욱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미술세계가 넓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화가로 활동하던 고요한씨가 지난 1996년 밴쿠버에 첫 발을 디뎠을 때 가졌던 생각이다. 그는 BC한인미술인협회에서 올해 이름을 달리한 “모두미술인협회”의 이사이기도 하다.



“결국 사람이 붓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민자에게 주어진 무대는 협소했고, 기존 작가들이 처한 상황도 윤택함과는 거리과 있었다. 이렇게 생각해 봐도 저렇게 생각해 봐도 작품활동에만 매달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전업 작가의 길을 자연스럽게 접으며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언젠가는 화폭 앞에 온전히 서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밴쿠버의 미술계 환경이 이민 오기 전 가졌던 상상과는 많이 달랐던 모양입니다.
고요한(이하 고)_ 쉽게 얘기해서 기대 밖이었지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서양세계로의 진출을 꿈꿨어요. 지금은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제가 처음 이민 왔을 때만 해도 미술 환경 자체가 많이 낙후된 느낌이었어요. 작품 거래도 활발하지 않았고….
 
좌절감 같은 게 느껴졌겠네요. 다른 곳으로, 이를테면 뉴욕 같은 곳으로 이주해야겠다, 뭐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까?
고_물론 해봤지요. 그런데 한번 이민을 결심한 사람이 살 곳을 옮긴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더군요. 내년에는 좀 더 나아질 거라는, 매해 그런 희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 시간이 벌써 20년이군요.

그림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 건가요?
고_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했다면 아마 그랬을지 몰라요.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로 말이죠. 이민 온 이듬해 BC미술인협회에 참여하게 됐는데, 그게 다행이었습니다. 덕분에 붓을 완전히 놓게 되지 않았으니까…. 

(이때 그의 아내 김희정씨가 인터뷰에 동석했다. 그녀 역시 화가이며 모두미술인협회의 보드 멤버다.)

김희정(이하 김)_협회 전시회 때문이라도 매년 꾸준히 그림을 그려야 했으니까요. 같은 꿈을 가졌던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끌어주다 보니 화가로서의 삶이 계속될 수 있었던 거죠.





고요한·김희정씨 부부는 “모두미술인협회가 창작 활동의 원동력이 되어준다”고 말한다. 



협회 활동은 꾸준한 편이었나요?
고_97년부터 몇 해를 제외하곤 매년 협회전을 해왔으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면서, 또 다른 몇몇 사람은 다른 도시로 이주하면서 협회 규모가 많이 축소된 게 사실이에요. 이렇게 가선 안되겠다 싶어 올해부터는 “모두미술인협회”로 이름을 달리하게 됐습니다.

모두 참여가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모두”라는 이름을 선택한 건가요?
김_비슷해요. 이전에는 약간의 제약 같은 게 있었어요. 이를테면 무조건 밴쿠버에 거주하는 한인 작가여야 한다, 이런 거 말이죠. 하지만 지금의 가입 조건은 단순해요.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모두”의 가입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래도 어떤 선 같은 것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회원으로서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김_ 저희 협회는 따로 회장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여섯 명의 보드 멤버가 협회를 운영하는데, 이들의 심사를 통해 가입 여부가 결정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고_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이는 상관 없어요. 이민자도 괜찮아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저희 협회가 좀더 젊어졌으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학교 재학생이나 졸업생의 관심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미술인협회가 만들어진 또 다른 이유가 “한인사회에 보다 다양한 문화 컨텐츠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갖고 있습니까?
김_한인문화협회가 주최하는 8월 8일 “한인 문화의 날 행사”에 저희 단체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유치원생부터 1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미술대회를 계획 중인데, 이것이 한인 학생들이 그림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미술대회가 아이들에게 미칠 긍정적 영향은 무엇이라고 예상하세요?
고_대회에 참여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고 마음 먹으면 자신도 모르게 좀더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될 거에요. 이것이 아이들에겐 하나의 자극이 될 수 있겠지요. 
김_버나비 시장상(賞) 등 여러 종류의 상이 준비되어 있어요. 상을 받는다는 것, 즉 공식적으로 칭찬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 아니겠어요. 누군가에겐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고….

또 다른 계획은 없습니까?
고_명화 설명회나 일일 강습 등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이 문제는 봉사단체와 협력하면 잘 풀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다른 얘기인데요. 얼마 전 열린 “아트페어”(Art Vancouver International Art Fair)에 모두미술협회도 참가했지요?
김_맞습니다. 저희 회원들에게는 아트페어 자체가 매우 흥분되는 기회였어요. 지인들만 알음알음으로 오는 그런 전시회가 아니었으니까요. 전세계 화랑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가능성 있는 작품을 발굴하는 것이 아트페어의 목적인데, 저희 회원들의 그림들도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그림에 매달려야겠다는 생각을 또 한번 하게 됐습니다.

혼자가 아닌 협회 회원이기에 아트페어 참석도 수월했을 것 같은데요.
고_저희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아트페어에 다시 나설 예정입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욱 나아진 모습일 거라 생각합니다.


모두미술협회의 보드 멤머 중 한 명인 마이크 오씨에 따르면, 밴쿠버에 국제 규모의 아트 페어가 열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작가와 상업 화랑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이 행사에는 정해진 기준을 통과한 화가나 단체만이 참여할 수 있다. 모두미술협회가 이 곳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로 평가된다. 밴쿠버 아트페어는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밴쿠버컨벤션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모두미술협회는 회화 뿐 아니라 사진, 조형, 판화, 공예 등 각 분야 예술가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 www.moduart.org  문의 micheoh@gmail.com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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