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이민 온 것 후회 없는 나, 밴쿠버에 반한 이유는…”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5-22 11:50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6 늘산 박병준
2015년은 그에게 밴쿠버에 정착한 지 정확히 만 40년이 되는 해다. 그 세월과 함께 어느새 팔순을 앞두게 된 그는 예전과 지금의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무덤덤하게 고백한다. 우선 건물들의 크기나 높이에 변화가 있었고, 거리는 차들로 부쩍 붐비게 됐다. 사람들, 특히 한인들의 수는 열 배 이상 늘었다. 한인사회의 교회는 단 한 곳 뿐이었는데, 지금은 그 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다. 한마디로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물었다.
 
“살만했다는 밴쿠버, 앞으로도 계속 살만한 곳일까요?”

그가 답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 그런데 말이에요. 그 숱한 변화 중에서도 여전히 그대로인 게 있어. 바로 내 마음이 그래. 이 땅에 40년 동안 살면서 난 이민 온 걸 단 한 차례도 후회한 적이 없었어.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한인사회에서 산사나이로 통하는 늘산 박병준씨(사진)의 이야기다.



박병준씨의 집 뒷마당은 작은 농장과 닮아 있다. 그는 "텃밭을 가꾸는 것도 훌륭한 건강 비결"이라고 말한다. 
사진=문용준 기자



“내 스트레스를 2만달러에 팔았다”


1975년 5월 밴쿠버 국제공항에 처음 들어섰을 때, 그가 갖고 있는 것이라곤 수중에 있던 단돈 150달러가 전부였다. 그래도 주눅든 것 같진 않다. 차를 굴릴 수 없어 뚜벅이족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가족과 함께 거의 매주 여행을 떠났다. 자기 차가 없으니 버스를 탔고, 때로는 많이 걸어야 했다. 하지만 불편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좋기만 했다, 밴쿠버의 속살을 하나둘씩 대할 수 있다는 것이.


내년에 팔순을 맞게 된다고 하셨는데, 나이와는 상관없이 정정하십니다. 
실제로도 건강한데, 그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아요. 밴쿠버라는 좋은 환경에서 좋은 먹거리를 먹으며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삶을 살고 있으니 건강할 수밖에…. 나 같은 경우엔 매주 산을 찾는데, 이것 역시 건강 비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산다는 게 말처럼 쉬울 것 같진 않은데요. 스트레스 받지 않은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스트레스가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거겠지요. 제 경험을 한번 얘기해 볼께요. 한때 송이버섯 수출 사업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었습니다. BC주산 송이를 일본으로 수출하는 거였는데, 제값을 받지 못할 때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어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챙기지 못했으니까…. 그러다 한 투자자를 알게 됐어요. 송이값을 잘 챙겨주겠다는 그 양반 얘기에 솔깃했지요. 그런데 그게 알고 보니사기였어요. 투자자는 종적을 감췄고 저는 적지 않은 돈을 잃게 됐습니다.

얼마나요?
2만달러….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몇 년을 알뜰하게 모아야 겨우 손에 쥘 수 있는 큰돈이었습니다. 어찌됐건 욕심이 화를 불렀다고 생각했지만, 당시에는 스트레스가 견디기 힘들 만큼 심했어요.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창문 밖을 내다보기 일쑤였죠. 

소송 같은 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까?
내 얘기 좀 더 들어봐요.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그 밤도 잠자리에서 내내 뒤척였는데, 문득 “내 스트레스를 2만달러에 팔자”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소송을 걸면 뭐하겠어요. 상대방이 돈 없다고 버티면 내 마음 고생만 더 커질텐데…. 그 대신 내 안의 스트레스를 2만달러에 판다고 생각하니, 온갖 잡생각이 사라졌습니다. 스트레스를 팔았고, 그 결과 난 건강을 얻게 된 거였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애기할 지 몰라요. 먹고 살만 하니까 스트레스도 없는 거야, 라고.
생계를 꾸리는 것, 그것 참 중요한 문제지요. 저 같은 경우엔, 이민 와서 꽤 좋은 직장에서 일하게 됐어요. 전문 기술자여서 그랬는지, 시간당 임금도 상당히 높았고 1년에 쓸 수 있는 유급 휴가도 5주나 됐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직장을 난 정년 한참 전인 58세에 그만 뒀어요. 꼬박꼬박 들어오던 급여가 한 순간에 딱 끊기니,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지요. 그런데도 그 생활에 익숙해지고 또 살아집디다. 참 신기하게도 말이죠.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는 마음이 강했어요. 여하튼 지금 생각해 봐도 내 선택이 옳았어요. 65세까지 정년을 채웠더라면 당장의 삶은 윤택했을 지 몰라도 지금처럼 건강하거나 행복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뭐였나요?
밴쿠버의 자연을 온전히 즐겨보자는 것, 그게 다였습니다.



“나는 정말 멋지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안정적 직장을 그만둬야 할 만큼 밴쿠버의 자연이 그리 좋았습니까?
처음 이민 왔을 때가 생각나는데, 그 당시엔 밴쿠버가 캐나다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어요. 이민 담당 영사 말만 듣고 밴쿠버에 살기로 작정한 거였으니까….

그가 뭐라고 했는데요?
제 이민 서류를 검토하더니 캐나다에선 밴쿠버가 가장 살기 좋다고 그럽디다. 그런데 그 말이 틀린 게 아니었어요. 실제 살고 경험해 보니, 밴쿠버 같은 도시는 세계 어느 곳에도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자연 환경은 뭐라 말을 보탤 필요가 없겠지요.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산을 좋아해서 네팔도 가봤고, 알프스에도 가봤고, 한국의 산들도 즐겨 봤어요. 그런데 가장 매력적인 산은 밴쿠버, 좀 더 범위를 넓혀 얘기하면 BC주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네팔의 산들 역시 거대하고 멋있어요. 하지만 그 웅장한 모습에 감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사나흘은 걸어 들어가야 하죠. 볼 수 있는 시간도 찰라에 불과합니다. 네팔에 있는 산들 대부분이 낮에는 구름에 쌓여 있거든요. 한국의 산들은 아기자기한데, 그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긴 하지만 거대한 맛은 별로 없어요. BC주의 산들은 아기자기함과 웅장함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산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이상형이라는 거에요.

1993년부터 2010년까지 캐나다 여행 잡지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서부 캐나다>를 발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을 내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밴쿠버의 자연을 나 혼자 알고 즐기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책까지 내게 됐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는 1년에 4만부 이상 책을 펴내기도 했으니까요.

좋아하는 일을 한 것 뿐이었는데, 수입이 따라오게 된 경우였군요.
그런 셈이지요. 하지만 큰돈을 모은 건 아니에요. 손해보지 않는 선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 는 생각이었습니다. 본국 조선일보가 발행하는 월간지 <산>에도  2년 넘게 글을 연재했더랬어요.

그 연재물을 모아서 낸 책이 바로 <산의 소리 마음의 소리>였지요?
맞습니다. 로키에 관한 책이었어요.

로키에는 몇 차례나 갔다 오셨습니까?
셀 수 없어요. 그걸 다 어떻게 세요. 로키에 반한 후부터 수시로 그곳을 들락거렸으니까.

로키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습니까?
조금만 걸어 들어가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산이 나온다는 것, 그게 가장 큰 매력이죠. 주변에서 어떻게 하면 로키 여행을 잘할 수 있냐고 묻곤 하는데, 답은 간단합니다. 로키의 속살을 천천히 음미해 보라는 거죠. 어떤이들은 로키의 겉모습만 보고 로키에 감탄하는 척 하는데, 그건 특급 호텔에 투숙해서 잠만 자고 나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특급 호텔을 골랐으면 그 호텔의 시설을 맘껏 즐겨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로키에 가면 자연 자체를 느끼고 즐겨야지요. 그래야 로키에 갔다 왔다고 할 수 있는 거에요.

산을 무척 좋아하신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1997년부터 산우회를 만들어 왔고, 지금은 토요 산우회에서 회원들과 매주 산을 찾습니다. 산에 오를 때는 힘들지만, 적당히 땀을 흘리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밴쿠버의 자연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내 온몸으로 느껴지니까요. 누군가는 내 얘기에 한소리 할 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자부하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 멋있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박병준씨는 본보에 로키 여행 정보를 연재할 계획이다. 박병준씨가 말하는 로키의 속살을 일반 독자들도 느껴볼 기회가 될 것이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정성 변호사 “공부만 잘해서는 곤란하다”
자녀에게 모든 걸 잘해 주고 싶은 게 보통의 부모 마음이다. 갓 태어난 아이가 스스로 몸을 뒤집고, 앉고, 걷고, 뛰게 되는 그 순간순간이 부모에겐 가슴 벅찬 감동이자 동시에 사는 힘이...
“캐나다에서 경찰 되기, 그 성공의 여정을 공유합니다”
‘성공 스토리’에는 세간의 이목이 늘 쉽게 집중되기 마련이다. 반듯한 집과 자동차, 혹은 넉넉한 통장 잔고를 보유하게 된 배경이, 보통사람 입장에서는 궁금할 수밖에 없어서다. 하지만...
“캐나다에 온전히 정착한다는 것은…”
밴쿠버는 첫눈에 마음을 내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이다. 목석이 아니라면, 밴쿠버가 품은 숲과 호수에, 도심의 세련된 빌딩가 사이에서도 느낄 수 있는 산뜻한 바람에, 혹은 이방인에게도...
허전한 이민자의 삶, 아빠는 늘 슈퍼맨이었다
극단 하누리 2016년 정기 공연작 <오 마이 슈퍼맨> 10월 20일부터 22일까지“하누리 또 한번의 행복한 가을을 연출한다”오래 전의 풍경이 문득 재생될 때, 우리들 대부분은 '슈퍼맨'과...
본국 영어교사부터 미래의 사회복지사까지
“내가 했던 값진 경험, 그리고 앞으로의 길”이곳 밴쿠버 한인사회에서 유독 반짝거리는 단체가 하나 있다. 한인 1.5세와 2세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봉사단체 'C3소사이어티'가 바로 그...
열 네 살에 UBC 조기 입학 “딴짓하는 아이에게서 가능성을 보다”
딴짓하는 아이는 걱정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이런 아이의 세계 속에서는 사회에서 정한 '중요도의 순서'가 뒤죽박죽 섞여 버리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에를 들어 학교 숙제는...
“성공 취업, 코업이 정답이다”
대학교를 제때, 그러니까 4년 만에 졸업했다는 이력서상의 기술은 어느 면에서는 자랑 거리가 되기 어렵다. 아무런 생존 기술 없이 정글 생활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산만하다고 평가되던 아이, 영재로 인정받기까지"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독 앳된 얼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스스로를 “이번에 UBC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게 된 제임스 천(한국명 천현석·사진)”이라고 소개하는데, 그 말이 반농담처럼...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7_밴쿠버시온선교합창단 지휘자 정성자
기름진 땅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빚진 자'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 채무를 이행하기 위해 그녀는 올해에도 무대에 선다. 자신이 지휘자로 몸담고 있는...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6_ 안동차전놀이 보존회 이재춘 회장
제 15회 한인 문화의 날 8월 6일 버나비 스완가드 스테디움에서“제 15회 한인 문화의 날”이 오는 8월 6일 버나비 스완가드스테디움에서 열린다. 밴쿠버한인문화협회(회장 석필원)가...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_55 <밤차>의 작곡가 유승엽
그는 KBS 예능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 소개될 만큼 유명한 작곡가였다. 하지만 이곳 밴쿠버에 정착한 1991년 후부터는 대중 가요를 만드는 일에 인색했다. 대신 오카리나 연주에...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4_권천학 시인, 이청초 화백
한인문화협회 후원 오는 8월 14일까지, “여백 채워줄 당신의 생각은…”“포트무디 아트센터”는 트라이시티 세인트존슨가(St. Johns St.)에 서 있는, 소박하면서도 넉넉한 느낌의 화랑이다....
사진작가 줄리아 리씨의 밀알 사진 프로젝트
“아름답다"고 했을 때, 화자가 느낀 아름다움 그대로를 지면에 옮길 수는 없다. 객관적 정의가 불가능하기에 신문 기사에서 “아름답다”는 함부로 올릴 말이 아니다. 그러나 ...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3_법률공증사 최병하
특정한 사실을 공적으로 증명하는 행위, 즉 공증은 적어도 새 이민자들에게 있어서는 꽤나 익숙한 단어다. 공증이라는 절차를 통해 한국에서의 경력 혹은 학력 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2_월드옥타 밴쿠버 지회 차세대 대표 김진기
1인 무역회사 <글로벌서플라이트레이드ltd>의 김진기 대표(사진)는 솔직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불필요한 수식어를 보태지 않는다. 그저 솔직 그리고 담백하게 지난 시절의...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1_이리디아메디컬 프로젝트 매니저 라이언 조
소년은 미국인이 되고 싶었다. 아니, 자신은 미국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다고 믿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유년과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미국 시카고에서 보내게 된...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50-한국전통예술원 한창현 원장
익숙했던 요리에서 원재료의 맛을 찾아내지 못할 때가 더러 있다. 조미료나 양념의 향이 지나치게 강한 탓이다. 값비싼 참치 뱃살과 그저 흔한 기름치가 미각 세포 내에 동일한 맛으로...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49_ 2회 연속 태권도 올림픽 심판 김송철씨
“한류”(Hallyu)라는 단어가 사전에 올라오기 훨씬 전에도, 세계는 이미 한국의 대표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태권도다. 세계 태권도연맹에 가입한 나라는 현재까지 총...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48_박은숙 해오름 한국문화학교 교장
캐나다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0여년 전 어느 날이었다. 전혀 다른 피부색의 누군가가 그녀에게 다가와 갑작스레 물었다.“혹시 한국 사람인가요?”리치먼드의 한 쇼핑몰에서 마침...
문용준 기자의 차 한 잔 합시다 47_ 연세 가족 음악회 김혜영씨
음악은 문서화가 불가능한 영역에 서 있다. 악보라는 페어퍼가 있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음표들의 나열일 뿐, 그 자체로 “소리”와 “즐거움”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활자로 기록될...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