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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세계일주, 83년생 동갑내기 이성종·손지현 부부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10-31 13:54

“우리는 시간 부자, 지구별을 탐사하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한반도 남단에서 “대~한민국”이 가슴 벅차게 연호되던 2002년의 일이었다. 이후 2년 동안 이 둘에게 서로는 그저 아는 남자, 아는 여자였을 뿐이었다. 그러다 “우리 사귈까?” 라는 말이 누군가의 입에서 툭 튀어나왔고, 양쪽 집안의 공인 커플이 된 지 6개월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이 때 두 사람의 나이는 모두 스물셋. 여자 쪽 얘기만 듣자면 “재미로 한 얘기가 평생 합방을 약속하게 된 경우”다.

소꿉장난 같은, 아니 말 그대로 어린 시절 옆집 계집아이, 옆집 오빠와 했던 소꿉장난이 시작됐다. 기계공학도였던 남자는 계속해서 학교를 다녔고, 여자는 한 기업에 취직해 인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무난하고 평범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의 일탈, 혹은 여행이 시작됐다. 자전거로 지구별 온 대륙을 탐사 중인 1983년생 동갑내기 이성종·손지현 부부(사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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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취직, 아니면 여행?
우리의 선택은 자전거였다

2007년 여름이었다. 아내 손지현씨가, 적어도 남편의 시각에서는 정말 뜬금없게도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우리 여행이나 한번 할까?”

이성종씨의 반응은 한마디로 “뭔소리래?”였다. 주어진 상황만 놓고 보면, 어린 남편이 어린 아내를 다소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본 이유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이성종씨는 당시 대학 졸업을 한 학기만 앞두고 있었다. 학교생활만 잘 마무리하면, 번듯한 대기업 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던 입장. 인생의 항로가 결정되는 그 중요한 시기에, 철없는 아내는 여행이나 가자 한다.

“정말 모르겠어? 그러니까 떠나보자는 거야.” 손지현씨는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그러면서도 조곤조곤 남편을 설득한다. “막상 회사에 들어가면, 내 시간은 없어. 일주일 휴가 내기도 어렵고, 여행 같은 건 아마 꿈도 못 꾸겠지. 학생 신분일 때나 가능해. 자유롭게 질러보는 건!”

아내의 얘기를 듣고 보니 그도 그런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취업 준비생에게 해외 여행은 “스펙 쌓기”의 한 과정이었다. 방학 때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건 흔해도 너무 흔한 풍경이었다. 공대생에게 있어 여행이 별다른 스펙이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결국 아내의 뜻대로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 왜 자전거 여행이었지요? 호주, 아프리카, 유라시아, 남미… 이 모든 지역을 자전거로 여행한 걸로 알고 있어요. 처음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거창한 목표 같은 게 있었나요? 이를테면 자전거로 세계일주, 뭐 이런 거 말이죠.
이성종(이하 이)_아니요, 전혀요. 돈을 뿌려가면서 여행하고 싶지도 않았고, 돈을 뿌려가면서 여행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어요.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마침내 자전거를 선택하게 된 것 뿐이에요.

손지현(이하 손)_관광지까지 가서 눈도장만 찍고 오는 건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삶에 녹아드는 것, 그게 여행의 참맛이지요. 나중에 여러 나라를 돌아본 뒤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자전거를 타면 이 모든 게 가능해져요. 

여행 경력이 많았나요?
이_아니요, 전혀. 전 군대 가기 전 혼자 전국 몇 곳을 둘러본 게 전부였어요.

손_저 같은 경우는 부모님이 여행을 좋아하셔서 주말이면 매번 산에 올랐고, 방학 때면 캠핑을 하러 다녔어요. 하지만 해외여행은 남편과 떠난 게 처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행 초보자가 그 어렵다는 자전거 여행을 결정했다는 건데, 쉽게 말해 꽤 용감했군요.
손_남편은 평범하고 안락한, 그런 생활을 꿈꾸는 사람이에요. 여행은 생각지도 않았지요. 그런 양반을 꼬시려면 나름 지식이 필요했고, 그래서 여행책들을 죄다 탐독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가보기 전에 죽지 마라>라는 책을 알게 됐어요. 자전거로 세계를 일주한 일본 여행가의 책이었어요. 그 책을 읽고 나도, 아니 우리도 하고 싶다,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학생 신분으로 여행 경비는 어떻게 마련했는지 궁금한데요.
이_당시 1000만원 정도가 있었어요. 과외도 많이 했고, 공사장 아르바이트도 가끔 했거든요. 아내 역시 인턴으로 직장생활을 할 때여서 돈을 조금 모았어요.

첫 목적지는 어디였죠?
손_중국을 통해 유럽까지 가보자, 이게 우리의 계획이었어요. 한두 달 갖고는 불가능한 일정이어서, 남편은 1년간 학교를 휴학하기로 했죠.



자전거 페달을 밟았고, 다른 세상이 내게 다가왔다. 사진제공=이성종·손지현


궁할 때, 움추려들지 않았다.
언제든 가야 할 길은 있었으니까…

어땠나요, 자전거로 대륙을 밟아본 느낌이?
손_그런데 그게 계획대로 되지 않았어요.

아니, 왜죠?
이_여행 준비를 하면서 총탄을 너무 많이 허비했어요. 자전거를 구입하면서 200만원을 썼으니까.
손_지금 생각하면 어이 없는데… 그 자전거, 안장도 페달도 없었어요. 나름 명품이라고, 그런 부속품은 따로 다 구입해야 했죠. 50만원 짜리도 충분히 훌륭한데, 남편이 뭘 모르고 비싼 걸 지른 거죠.

이_초보 여행자의 시행착오 같은 거였어요. 어찌됐건 모든 장비를 다 갖추고 나니까, 수중에는 300만원 밖에 남지 않았지요.

그 돈으로는 유라시아행은 불가능했을 것 같은데…
이_그렇죠. 여행을 떠나기 전에 경비의 대부분을 써버린 제 잘못이었죠. 여행은 이제 어렵겠다고 낙담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호주 워킹홀리데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손_그걸 활용하면 돈도 벌면서 여행도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부랴부랴 호주로 떠났습니다.

일자리는 있었습니까?
이_그게 문제였죠. 돈은 점점 없어지는데, 일할 곳을 찾지 못했어요. 불안하기도 하고 갑갑하기도 했지요. 당시 캠핑장에서 텐트 생활을 했거든요. 한푼이라도 아껴야 했으니까요. 

손_여행이 아니었죠. 하루종일 텐트에만 갇혀 살다시피 했어요. 한국에 있었다면 안락한 집에서 삼시세끼라도 잘 챙겼을텐데, 괜히 떠나서 이게 무슨 고생인지 후회만 되더라구요. 

이_그때 50만원 정돈가 있었을 거에요, 아마. 호주까지 와서 텐트 성능만 확인하고 돌아갈 순 없다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평소 하고 싶었던 스카이다이빙을 하기로 했죠. 남은 돈 다 쓰고 한국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마음을 모았습니다. 

손_스카이다이빙 하고 나니까 딱 2만원 남던데요. 캠핑장에 돌아와서 바로 짐을 꾸렸습니다. 부모님께 엄청나게 혼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물론 반전이 있었겠지요.
이_맞아요. 바로 그날 이력서를 냈던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호텔이었죠. 하우스키핑 일이었는데, 우리 둘 다 취직이 됐어요.그곳에서 3개월을 일하면서, 여행 경비를 마련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던 거네요.
손_그렇지요. 그렇게 해서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했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첫 직장이었던 호텔에서 3개월 가량을 더 일했습니다. 

다음 여행을 위한 준비였나요?
손_아니요, 절대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귀국 후 남편은 학교에 복학할 테고, 졸업하면 대기업 직원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호주에서 모은 돈으로 평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할 계획이었지요. 

그런데요?
이_제가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호주에서의 경험 때문에, 자전거 여행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펼쳐도 온통 여행 생각 뿐이었어요. 자전거 여행에 대한 노하우도 생겼겠다, 장비도 있겠다, 여행 경비도 충분하겠다… 문제 될 건 하나도 없었어요. 그냥 떠나면 그 뿐이었습니다.

손_이번엔 제가 말렸어요. 여행은 할 만큼 했다고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여행 맛을 본 남편의 귀에 “공부나 해!”라는 제 얘기는 들리지도 않았나 봐요. 

결국 또 여행 길에 오른 거군요. 학교는 어떻게 했어요?
이_졸업하자 마자 바로 떠났어요. 아프리카로, 6개월 계획이었죠.

손_여행의 고수들만 간다는 그곳을 겁도 없이 선택하더군요. 처음엔 반대했지만, 남들 안 하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두 사람의 아프리카 여행은 마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월드컵이 열리던 시기와 맞물리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신문, 잡지, 방송에 “독특한 부부”로 소개됐고, 덕분에 유명인이 되었다. 두 사람은 좋아하는 여행을 통해 생계를 해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떠난 자에게만 주어지는 삶의 또 다른 모습. 사진제공=이성종·손지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래서 더 행복하다

아프리카 여행, 취직을 해야 하는 성종씨의 입장에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었겠네요.
이_아프리카에서 돌아왔을 때가 2010년이었는데, 그해 성장통이라고 해야 하나, 어찌됐건 이런저런 시련을 경험하게 됐어요. 여행 책도 쓰고, 방송에서는 우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내보내고, 포털사이트에 우리들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던 때였어요. 그러다 자전거 여행과 관련된 사업을 하나 시작하게 됐는데, 결과적으로 이 일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손_자전거 여행을 통해 얻게 된 노하우를 공유하고, 제품 같은 것을 추천해 주고 그랬는데, 우리 의도를 불순하게 보는 분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 모습에 실망한 거에요. 우리가 뭐 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고…. 그때 남편이 그러더군요. “그냥 여행이나 가자. 우리는 여행가니까.”

세번째 여행은 상처를 보다듬는, 이를테면 “치유의 여행”이 됐을 것 같은데요. 
이_정확히 그랬어요. 2011년 3월에 시작돼서 2012년 8월에 끝난 그 여행이, 우리가 처음으로 경험한 여행다운 여행이 아니었나 싶어요. 

어디로 갔나요?
손_유라시아 여행이었습니다. 그 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물질적인 집착이 많았어요. 특히 남편은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지요. 하지만 여행 도중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을 즐겨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_뭐랄까요. 비에 홀딱 젖은 모습, 그게 바로 저였어요. 처음 비가 내릴 때는, 젖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게 되지만, 이왕 다 젖게 되면 우산 없이 빗속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그렇게 다 젖은 상태가 됐다고 생각하니까, 여행 속으로 온전히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됐어요. 유럽에서 터키, 중앙 아시아, 히말라야까지 넘게 되고, 우리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젠 여행을 그만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손_한국에 돌아온 후부터는 일상에 충실하려 했어요. 전 바리스타 공부를 해서, 자그마한 커피샵을 열 계획이었고, 남편 역시 자신의 길을 고민했지요. 한 달에 100만원만 벌어도 두 사람 먹고 사는데 별 지장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긴 여행을 하면서 근검절약하는 습관을 저절로 터득하게 됐으니까….

유목민에서 정착민으로 삶이 달라진 거였군요. 그런데 결국 이곳 밴쿠버까지 오게 됐잖아요. 그 사이에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이_안 나오면 말지, 하는 마음으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는데, 그걸 또 운좋게 받게 됐어요. 우리에겐 이것이 마지막 기회가 되겠다, 싶었어요. 

손_그때 커피샵을 인수하기 바로 전이었어요. 하지만 마음을 돌렸지요. 그래 미주는 안 가봤으니까, 이번 기회에 한번 훑자, 이런 마음이었어요.

(두 사람은 남미 최남단 우수아이아로 떠났다. 그리고 10개월 후, 기자와 마주 앉게 됐다. 이 자리에서 손지현씨는 “자전거 페달을 밟게 되면, 여행의 모든 순간 순간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차로 하는 여행은 이제 여행이라 할 수 없다. 차를 타면 바로 자버리는 습관 탓이다. 손씨는 “내게 자동차 여행은 한 지점에서 한 지점으로 가는 이동일 뿐이다”고 덧붙였다. 이성종씨에게도 자전거 여행의 매력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자전거로 느리게 여행하다 보면, 새롭고 소중한 인연을 만날 기회가 많아진다”며 그것이 자신이 자전거 여행에 푹 빠진 이유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볼께요. 여행을 오랫 동안 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요?
이_경비가 많으면 보다 편안하고, 또 긴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닐 거에요. 하지만 넉넉하지 않아도,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어요. 우리만 봐도 그렇잖아요. 여행지에서의 우리들은 짠돌이 그 자체에요. 거의 돈을 쓰지 않지요. 하지만 꼭 즐겨야 할 때, 이를테면 호주에서의 스카이다이빙, 아프리카에서의 사파리 체험 등을 할 때는 지갑을 열었어요. 평소에는 아꼈다가, 이럴 때 한번 즐겨보는 거죠. 

손_우리는 돈은 없지만 부자에요. 정확히 말하면 시간 부자. 나를 위해서 내 시간을 언제든 낼 수 있으니까요.


시간 부자? 추가 설명을 요구하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내 인생에서,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을 내 마음대로 펑펑 쓰고 있어요. 그게 부자 아니겠어요?” 두 사람은 아낌없이 투자한 시간을 바탕으로 <동갑내기 부부의 워킹홀리데이 자전거 여행>(엘빅미디어), <거침없이 방황하고 뜨겁게 돌아오라>(엘빅미디어), <동갑내기 부부의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엘빅미디어), 이렇게 세 권의 여행책을 썼다. 내년에는 알래스카까지 질주할 계획이며, 현재는 캐나다 에드먼튼에 머물고 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당연한 얘기겠지만 여행지에서의 우리는 모두 친구, "지구인"이다. 사진제공=이성종·손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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