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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참전용사들의 벗 가이 블랙(Black)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6-06 11:16

“평화를 위한 24시간 행군에 한인사회를 초대합니다”
가이 블랙(Black)씨는 우선 ‘헌신’이란 단어로 소개될 수 있다. 적어도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만큼은, 조금은 낯간지러운 이 단어 선택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블랙씨는 역사책 한구석에 감금되어 있던 무명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기억하는 일에 투신해 왔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았으니 그런 그를 헌신이란 단어로 수식하는 것은 거짓이 아닌 ‘참’에 훨씬 가깝다.

이쯤에서 궁금증 하나. 푸른 눈의 이 백인 남성은 왜 한국전 참전용사들에게 남다른 정성을 쏟고 있는 걸까?  ‘한국, 혹은 한국전쟁과 남다른 인연이 있었겠지’라고 짐작할 수 있겠지만, 정답과는 아예 동떨어진 얘기다.

“원래 군(軍)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다가 2003년에 군사 박물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게 됐고, 그때부터 한국전쟁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블랙씨의 수집품은 군대에 대한 그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우선 2층짜리 그의 집 앞에는 1943년산 군용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지난 빅토리아데이 퍼레이드 행사 때도 초대된 명물이다. 윗층으로 올라가면 오래된 군복부터 훈장, 그리고 사진까지 군과 관련된 물품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그 중에 눈을 끄는 것은 수백 통의 편지다.

“한국전 기념우표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정부 기관 등과 수백통의 편지를 주고받았어요. 그때 받은 답장만 이렇게 쌓인 거죠.”

기념우표는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셀 수 없는 시간과 적지 않은 돈이 들었기에 블랙씨가 느끼는 허탈감은 더욱 컸다. 인간적으로 다소 지쳤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참전용사들을 위한 또 다른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24시간 동안의 행군’이 바로 그것이다.
 
“참전용사들, 특히 한국전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한 21명의 캐나다인을 기리며 24시간 동안 총 72km를 걸을 거에요.”

행군은 6월 21일 오전 9시 밴팅미들스쿨(Banting Middle School)에서 발대식을 가진 뒤 시작된다. 오전 11시 30분에서 12시 사이에는 SFU 주차장에 도착하고, 그 후에는 마운틴 시모어 스키장 주차장까지 걷게 된다. 종착지는 버나비 센트럴 공원 평화의 기념비 앞이다. 몇몇 정치인들이 그와 동참하기로 했다.

“한인들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완주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한 구간, 아니면 비교적 짧은 거리라도 저와 함께 걸어준다면 큰힘이 될 것 같습니다.”

블랙씨의 말처럼 24시간의 이번 행군은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못한 21명의 캐나다인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도널드 헤이스팅(Hastings)씨는 그들 중 한 명으로 노스밴쿠버 출신이다.
 
“헤이스팅씨를 위해 자그마한 현판 하나를 마련했습니다. 이 현판은 오는 9월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그래서 완전히 잊혀진 거나 마찬가지인 한 호숫가에 자리잡을 예정이에요.”

현판 제작 이외에도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기 위한 또 다른 ‘의식’이 마련되어 있다.
 
“항아리에 캐나다의 돌을 담아 축성한 뒤, 이를 한국으로 보낼 계획입니다.”

이 항아리는, 그 속의 돌멩이는 오래 전 사라진 낯선 이름의 병사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과 다름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는 것은 대한민국정부와 한인사회의 몫이기도 하다. 이번 행군의 조력자인 손병헌 전(前) 재향군인회 회장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위한 가이 블랙씨의 헌신에 늘 고마운 마음이 든다”며 “좀 더 많은 한인이 이번 행사에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용준 기자 myj@vanchosun.com







가이 블랙씨는 사진 속 노란색 치셔츠를 입고 행군하게 된다. 
손병헌 전(前) 재향군인회 회장(사진)은 "밴쿠버총영사관이 티셔츠 제작을 후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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