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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대학 동창 카톡방에 손주들을 돌보는 할머니들의 어려움과 애로 경험담들이 올려져서 동감하기도 하며 웃음이 나기도 한 일이 있다. 한 동창의 작은 딸네 손자가 너무 버릇없는 말을 해서 분노한 동창은 다시는 딸네 집에 안 간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다른 동창네 손자는 한글을 깨치자마자 자기 방문에 “노인 출입 금지”라는 글을 써 붙였다고도 한다. 이래저래 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아이들과 주파수가 맞지 않아 섭섭증이 생긴다고...
김현옥
모래의 시간 2022.11.07 (월)
이 세상 끝에 와 있다는 느낌그 사이로 강물이 흘러가고발자국들이 지나가고슬픔 같은 이끼가 툭툭 걸음을 멈추게 하는데나는 건너갈 세상을 돌아본다어둠 저 끝에서 몰려오는 바람소리누군가 내 등 뒤에서 마음 한 끝을비수로 꽂고 달아난다이 세상 황량한 이중성의 간판들점멸등처럼 깜빡이는데어제는 바람이 되었다가오늘은 사과가 되고 오렌지가 되고 박제가 되어몸의 꼬리를 감추는 사람들탓하지 마라, 눈동자의 크기만큼 보이는세상 안에서...
이영춘
무주의 맹시 2022.11.01 (화)
여자와 만난 곳은, <상담소>라는 작은 팻말이 붙어있지 않았다면 그저 낡은 오피스텔이었을 공간이었다. 창 너머로 환하게 피어난 백목련 외에는 딱히 눈길을 줄 곳이 없을 만큼 실내는 휑했다.-    어서 오세요. 이메일로 예약하신 윤해진 님이시죠?나는 “혜”를 아무 고민없이 “해”라고 발음하는 눈 앞의 여자를 잠시 가만히 바라보았다. ‘미스코리아 머리’ 에, 취향이 그런 것인지 넉넉한 체구를 가리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곽선영
만일 필자가 어느 누구에게 평생 게으름을 피면서 살라고 하면 뺨을 맞을 것이다.10년, 1년 또는 한 달 만이라도 그렇게 살라고 해도 욕을 배가 부르도록 얻어먹을것이다. 그러나 이게 하루가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까짓 거 하루 정도야! 새털같이 많은 나날인데 오늘 하루쯤 게으름을 피면서 빈둥거리면 어때? 그게정신건강에도 좋다고 하던데.  그러나 하루가 이틀, 금방 일주일, 일주일이 한달, 한달이 1년...... 그러다 사람의일생이 휙 지나가...
정관일
어느 가을 날에 2022.11.01 (화)
하루를 사는 삶저마다 같은 듯 달라깊은 산속에서도바닷가 외딴 섬마을에서도북적대는 도시에서도같은 시간 다른 하루홍시 같은 낙엽이 나무 끝에 매달려 가을을 재촉한다같은 색같은 모양 낙엽처럼비슷하게 살아도 다른사람들 하루가 간다하늘에 걸린 해가어제 오늘이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듯쌓인 낙엽이 다른 듯 같아 보이는 것처럼흐르는 시간이 강물 위에 떠 가는 낙엽처럼
전재민
몸 속 들여다보기 2022.10.24 (월)
위 대장 내시경이 끝났다. 두려움도 끝났다.얼마나 기다렸던 내시경 검사였던가? 매년 휴가엔 한국에 계신 어머니를 방문하지만,이처럼 절박하게 휴가를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속은 더부룩하고, 가스는 차고, 입에선냄새가 나고, 배변은 검은색이고, 명치 아래 배는 칼로 찌르는 통증으로 잠을 제대로이룰 수 없었던 날이 얼마였던가? 가정의에게 내시경을 부탁했지만, 위에서 출혈이있어야 전문의를 통해 내시경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제산제 처방만...
박광일
바람의 질량으로 속없이 무너지던그들은 산맥아래 또 다른 무리를 지어견고한 스크럼을 짜며 농성하는 중이다서투른 직립조차 포근한 이름이여떠도는 별을 품어 산이 흔들거리면숲으로 오는 저녁을 가슴속에 담는다물안개 흠뻑 먹고 산촌을 지킨 하루함께 산다는 것은 장엄한 축복이다서로를 사랑한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이상목
무소유 속의 풍요 2022.10.24 (월)
 나는 지금 한국에서 70여 인생의 삶 중에 가장 한가하고, 가장 편안하게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동생네로 숙소를 정하려 했으나 오미크론 등으로 계획을 바꿔 장기 투숙할 수 있는 호텔로 들어왔다. 방 면적이 17평이지만, 실 평수는 절반이니 좀 답답하다. 처음 며칠간은 침대에 누우면 바로 앞 벽이 가슴을 압박하는 것 같아 잠들기가 힘들었다. 물론 시차도 있었지만. 현관을 들어서면 기다란 실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현관 왼쪽으로...
심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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