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아파트 9층인 우리 집 거실에서 베란다 쪽 소파에 앉으면 사거리가 보인다. 건너편 아파트와 시내로 나가는 길이 교차되는 길이다. 그 사거리를 바라보며 가끔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다. 신호에 따라 밀려왔다 밀려가고 달리다 멈추고 하는, 하등 신기할 것 없는 차량의 행렬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저렇게 많은 차들은 대관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새벽부터 밤중까지 끊임없이 굴러가는 지친 바퀴들은 언제 어디쯤에서 쉬게 될 것인가.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던, 황동규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다던 그 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나는 바퀴를 보면 세우고 싶어진다.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지고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바퀴들이 일순 멈추어 설 때가 있다. 좌회전해 들어오는 차량도 없어 움직임이 정지된 일순간의 고요, 나는 그 정적이 좋다. 세상의 바퀴란 바퀴들이 온통 멈추어 버린 정경, 시간은 더디게 흘러가고 사람들의 낯빛은 더없이 평화로운, 공해도 없고 교통사고도 없는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본다.
인류의 역사는 바퀴의 역사이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는 수메르의 유적에도 전차용 바퀴가 등장한다. 찬란했던 마야와 잉카 문명이 멸망에 이르렀던 중대한 이유가 바퀴가 없어서 였다는 말도 있다. 인류 문명의 원동력이 된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 그 바퀴 덕택에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동물이 되었다.
어디로든 굴러가는 둥근 바퀴는 세상을 많이 가깝게 만들었다. 바퀴의 회전 속도가 빨라질 때마다 사람 사이의 거리도 좁혀졌다. 손수레에서 우마차로, 인력거에서 자동차로, 더 빨리 더 편하게 움직이는 동력이 만들어졌다. 바퀴 달린 동체에 날개를 달아 하늘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사람들은 무한의 속도 경쟁을 벌인다.
바퀴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세상이 여유 있고 한가해졌는가.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바퀴가 만들어내는 여가는 바퀴를 굴리는 데 다시 쓰인다. 바퀴가 만들어낸 광활한 공간은 사람들을 더 멀리 까지 불러낸다. 활동 영역이 넓어진 사람들은 해 넘어가기 전에 밥상머리에 앉지 못한다. 바퀴 때문에 허약해진 근육을 단련시키기 위해서 어디론가 바퀴를 굴려 가야 하고, 바퀴 때문에 생겨난 여가를 누리기 위해서도 또다시 어디론가 바퀴를 굴린다. 바퀴의 구심력과 바퀴의 원심력을 동시에 사랑하게 된 사람들은, 더 크고, 더 안전하고 더 잘 굴러가는 바퀴를 선망한다.
아파트 주차장에 바퀴 달린 애마들이 늘어서 있다. 백마, 흑마, 은빛 말들이 줄 맞추어 서서 주인을 기다린다. 당근도 채찍도 필요치 않다. 기름밥만 먹여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듬직하고 충직한 현대판 적토마들, 이슬이 내리는 노천 마구간에서 밤새 그렇게 제 주인을 기다리다, 주인이 올라앉기만 하면 사통 팔달로 달려나간다. 큰 말, 작은 말, 늙은 말들이 이어달리기 선수처럼 길거리를 달리고 또 달린다.
달리는 차를 볼 때마다 바퀴가 몹시 불쌍한 생각이 든다는, 마음 여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차체의 제일 밑바닥에 엎드려 쉴 새 없이 제 몸을 굴려야 하는 바퀴, 그 신세가 가엾고 처량맞아 타고 있는 것조차 미안해진다 했다. 무거운 차체를 이고 제 몸을 굴려 동력을 얻는 바퀴를 보며 그 사람은 어쩌면 가장이라는 버거운 짐을 떠받치고서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가야 하는 고달픈 제 신세를 생각했는지 모른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굴려 너무나 멀리까지 와 있는 우리. 세월의 바퀴를 멈출 수 없듯 굴러가는 바퀴들을 붙잡을 수는 없다. 가상 공간을 종횡 무진하는 디지털 바퀴가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초고속 시공간을 누비고 있는 지금, 바퀴 없는 세상이란 상상조차도 불가능해 보인다.
날마다 바퀴 덕을 보며 살긴 하여도, 나는 바퀴를 보면 세우고 싶어 진다. 숨이 차도록 내달리는 세상에서, 모든 바퀴들을 추방하고 싶어진다. 세월 따라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는 내 시간의 바퀴를, 천천히 가도록 붙잡아 두고 싶다. 수명이 다할 때까지 굴러야 하는 바퀴처럼, 짐을 지고 길을 가는 이 땅의 아버지들, 그 지친 바퀴들도 가끔은 편안하게 쉬어 가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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