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베로니카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잠을 깨운다. 시계를 보니 4시가 조금 넘었다. 이 시간에 눈을 뜨면 더는 잠들기가 힘들다. 뒤척이다 아침을 맞이하기 일쑤다. 그런날은 머리도 개운치 않고 몸이 찌뿌드드한 게 기분도 별로 안 좋다. 아침에 눈을 뜨면 늘 그랬듯이 똑같이 시작하는 일상이 딱히 변한 건 없는데 왜 이리 감옥에 갇힌 듯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까? 요즈음은 생각이 더 많아져서인지 자주 잠을 설친다. 앞날의 불안감이랄까, 이런 삶을 계속 살아야 하나 등등, 생각이 꼬리를 문다. 사실 그 전의 삶도 특별히 별다른 건 없었던 것 같은데 왠지 코로나 때문이라는 핑곗거리로 이유를 대면서 합리화를 이어간다. 이 나이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젊은 세대들은 얼마나 더 복잡하고 앞날이 암담할까, 그들이 살아낼 긴 인생의 여정이 참 안쓰럽다.
시끄럽게 지저귀는 새 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그들은 인간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관도 없이 그저 제 짝을 찾으려고 열심히 노래부르고 목청껏 울어댄다. 도도한 관을 쓰고 청색의 고운 자태를 지닌 불루제이 두 마리는 무엇 때문인지 시끄럽게 울어대면서 까마귀 한 마리를 결사적으로 쫓아다닌다. 맹공격을 하는 모양이 아마 품고 있던 새끼에게 해코지를 한 것 같다. 벌새 두 마리도 매일 꿀을 먹으려고 테라스에 매단 먹이통을 방문한다. 가끔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듯 예쁜 잠자리 날개를 퍼덕이면서 귀여운 몸짓으로 화답한다. 두 마리가 번갈아 가면서 날갯짓을 하는 그 모습을 보면 너무 아름답고 예뻐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들은 창조주께서 서로 도우면서 즐기고 사랑하라고 인간을 위해 만드신 작품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모든 것을 파괴한 인간의 한 없는 이기심과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받는 이 세상은 모두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임엔 틀림없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인간의 삶만 조금 불편해졌다. 그것도 얼마 지나면 익숙해져서 그런 데로 살아갈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시간만 무의미하게 보낸다는 건 나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는 것 같은, 어딘지 모르게 인생을 낭비하는 죄를 짓는 기분이 든다.
다행히 바닷가 산책로도 다시 개방하고 조금씩은 일상으로 돌아오는 듯하지만, 아직은 아무도 이전처럼 하고 싶은 데로의 생활을 누리지는 못한다.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아무런 구속도 없이 살아온 많은 나날이 축복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참 편하게 잘 살아온, 아름다운 잊지 못할 나날이었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갈까? 열심히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고민거리를 가지고, 같은 생각을 하며 같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서 동병상련의 서글픔을 느낀다. 무엇이든 내일로 미루지말고 하루의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 즐기는 것이 인생을 제대로 사는 현명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상황이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암흑의 세상은 아니지만, 깜깜한 밤이 지나고 내일의 해가 떠오르려고 하는 새벽 여명의 순간인 것 같다. 여명이란 아침의 찬란한 해를 맞이할 준비의 시간이 아닌가? 우리에겐 여명이 보여주듯 희망이 있다. 인생에 있어서 위기는 참 많았지만, 요즈음의 이 사태도 온 인류에게 닥친 위기임엔 틀림없다.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지는 현실 앞에 사람들의 마음은 더 각박해지고, 이웃을 돌아보기가 힘들어지고 감정은 더 메말라 갈 것 같다. 인간이 서로를 피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 힘들게 한다. 서로 만나면 반기면서 보듬어주던 때가 있기는 했던가, 먼 옛날인 듯 아득하다.
아마도 예전처럼 식구들이 모이고 친구들도 모여서 먹고 마시며 노는 시절은 쉽게 올 것 같지가 않다. 이 상황을 함께 껴안고 살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에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라는 반갑지 않은 이웃이 하나 더 생겨서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세상으로 바뀐다면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동안 우리가 겪은 어려움과 비참함에서 느꼈던 반성과 자성의 시간마저 잊어버리고 더 이기주의로 빠질까 두려워진다.
나에게 주어진 많은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온 지난날들이 부끄러워서 나를 움츠리게 만든다. 요즈음은 하루를 집에서 보내는 게 익숙해지려고 한다. 오히려 외출하려고 준비하고 나간다는 자체를 잊어버렸다고나 할까, 옷 장에 걸린 외출복도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계절의 변화도 못 느끼고, 오늘이 며칠 인지 인식도 잘 못 하는 날이 많아졌다. 벌써 이 생활이 편하다고 느끼는 걸 보면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친구 만나러 가는 날은 왠지 설레고 예쁘게 차려입고 들뜬 마음으로 나서던 게 이젠 먼 옛일이 되어가고 있다.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한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온 지난날들이 어쩌면 이토록 그립고 아쉬운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감정이 솟아오른다. 차 한잔 앞에 놓고 즐겁게 나누던 그 많은 얘기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만나지 않은 시간 속에 싸인 추억거리도 없고 생활의 변화도 없으니 당연히 주고받을 대화의 폭도 그만큼 줄어든 게 사실이다. 서로 주고받던 아무 의미 없는 한마디의 즐거운 얘기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사랑과 연민을 안고 서로를 아껴주지 않았던가? 일상으로 누리던 차 한 잔의 소중함이 우리에게 준 많은 의미가 소소한 행복이었음을 새삼 느낀다. 그때가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그 차 한 잔 속의 낭만을 그리면서 오늘도 하루속히 여명이 걷히고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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