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양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인터넷이 하도 발전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영상물을 만들어 퍼트리니 그것을 통해 덕 보는
일도 있지만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기도 한다. 그렇긴 해도 요즘 같은 세상에 소셜 미디어
(SNS)와 가깝지 않다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어찌 따라 갈 수 있을까! 주고받는 영상물을
통해서 새 정보는 물론 좋다는 말과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하도 많이 쏟아져 나와서 어떤 말
을 한다 해도 하나도 새롭지 않을 것 같다. 생각지도 않던 COVID-
19의 확산으로 모든 사회활동이 중단되어 자연히 뇌도 많이 쉬고 있다. 이것을 ‘때문’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덕분’이라 해야 할지, 노년기의 주부로서 가정 일은 전과 별로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여유의 시간이 많아져서 책을 더 보게 되고 이것저것 들추어 정리도 하고, 무료로
보내주는 유명한 연주회나 오페라 등을 감상하며 불안정한 가운데 좋은 점도 꽤 있다. 글자
를 오래 드려다 보고 있으면 눈이 쉽게 피곤해져서 오디오 북을 많이 이용하게 됐다. 국내
외 작가들의 여러 작품을 접하며 전에 하지 않던 일이라 고마운 생각이 든다.
지금은 어디를 가도 사회적 거리를 두고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우리의 독특한 민족성
인 ‘빨리빨리’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어느 회사에 신입 사원 모집에 일차 서류 심사에 합격
한 사람들을 한 방에 모아 놓고 면접을 기다리게 했단다. 삼십 분이 지났는데 아무런 면접
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왜 시간을 안 지키지?’ 하며 불평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더 지나
도록 아무 소식이 없자 ‘뭐 이런 회사가 다 있어!’ 하며 이 사람 저 사람 더욱 불평을 쏟아
냈는데 그 중에는 ‘무슨 사정이 있겠지!’ 하며 참고 기다리는 지원자도 있었다. 한 시간 삼
십 분이 지난 후에 드디어 채용관이 나타나서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오늘 면접은
이상으로 다 끝났고 합격자는 결정되었다고 했다. 모두 의아한 가운데, 그 결과는 불평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리던 사람이 뽑힌 것이다. 그 대기실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지원자의 모
습이 모두 녹화, 녹음되어 면접실로 통하고 있었던 것이란다.
남편의 오래 전 어떤 일이 떠오른다. 밴쿠버의 큰 회사에서 회계감사로 오래 일하다가
한 정부 기관에서 감사 책임자를 구한다는 것을 알고 서류를 냈다. 인터뷰하기로 한 날 오
후에 예정된 시간 보다 십 분 일찍 도착해서 대기실에 있는데 예고하지 않았던 필기 시험을
삼십 분간 치르게 했다. 좀 의아했다. 그 후부터 한 사람씩 면접실로 들어가 인터뷰 받고
나오는데 차례가 맨 나중이던 남편은 그 대기실 직원이 퇴근 하는데도 아직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한 사람이 나와서 오늘 너무 늦었으니 내일 다시 오면 어떻겠느냐고 하여 은근히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누르며 그냥 하겠다고 해서 결국 면접실로 들어 갔다. 네 명의 면접
관과 이야기하는데 긴장과 피곤이 겹쳐 몇 마디 대답하고는 언짢은 심정을 이야기하니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그 후에는 기분을 가라 앉혀 제대로 인터뷰를 마치고 속으로 ‘이 자리는
내 것이 아닌 모양이다’ 고 생각하며 한 마디 더 하고 싶다 하고는,
“사실 기다리는 동안에 마음이 언짢았고 집에 가서 이 회사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하는 것 보
다 지금 다 이야기하고 오늘 일은 잊겠다.” 하며 털고 나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뜻밖에
그 면접관 중 책임자로부터 어느 날부터 출근할 수 있겠느냐고 전화가 왔다. 오랜 후에 들
은 이야기이라는데 기다림도 기다림이었지만 그 날 마지막으로 던지고 나온 말 한 마디 때
문에 결정 되었다는 것이다. 회계감사라는 자리의 특성상 이러한 태도가 오히려 필요했던
것 같다고… 그 후부터 종종 자기는 늘 ‘회개’ 하고‘감사’ 하면서 산다고 말한다.
학교가 전에 없던 온 라인으로 수업을 함으로 손주들이 컴퓨터를 쓰게 됐다. 때가 되면
선물하고 싶은 품목이었던 차에 미리 선심 쓸 수있는 좋은 기회다. 공부하는데 필요할 테
니 원하는 컴퓨터 사라고 짧은 메모를 각각 붙여 수표 한 장씩 보내주었다. 며칠 후, 꼭 필
요한 컴퓨터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매우 감사하다고 신나는 목소리가 전화통을 울렸다
. 이 기회를 놓칠세라 공부 열심히 하라는 소리를 힘 안들이고 하면서 앞으로 더 자주 연락
하라고 다짐할 수 있었다.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손주들과 새로운 통신 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코로나 덕분에!
이번 기회에 ‘빨리빨리’의 습성이 좀 나아지기 바라면서 기다림의 교훈을 되 뇌어 보며,
오늘도 감사하는 하루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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