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모습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 그냥 사는 사람과 어떻게 든 살아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살아내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삶은 하나의 서커스다. 한꺼번에 접시를 세 개 돌리거나 허공에 몸을 날려 공중그네를 타는 서커스 단원처럼, 그날 하루의 공연이나 무사히 마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오랫동안 배를 탔다. 비바람 불고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로 남편을 내보낼 때마다 두려웠다. ‘우리가 무사히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 서커스였다. 남편보다 저녁 9시 뉴스 앵커의 얼굴을 더 많이 보고 살아야 하는 내 자신에 대한 연민도 컸다. 어디엔 가 마음을 기대고 싶었다. 그때 만난 게 수필이다. 수필을 읽고 쓰면서 사람이 사람답다는 게 어떤 것인지, 우리가 어떻게 나이를 먹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의 시어머니는 종종 이렇게 말하셨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면 아마 열 권으로도 모자랄 거다.” 어디 나의 시어머니만 그럴까. 누구나 다 가슴속에 이야기책 열 권쯤의 사연을 품고 산다. 오랫동안 가슴에 쌓아 둔 이야기, 누군가에게 꼭 털어놓고 싶었던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 보면 수필이 된다. 이렇게 쓰는 동안 지난날의 상처가 치유되기도 하고 내 자신과 화해할 기회도 생긴다.
글을 쓴다고 하면 상대방이 어떤 장르냐고 묻는다. 수필이라고 답하면, 조금 전 치켜 올라갔던 그의 눈꼬리가 절반은 내려온다. ‘뭐 대단한 건 아니네.’하는 표정이다. 수필쯤 이야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수필은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문학이기에 진정성이 첫째 조건이다. 수필의 주된 소재를 일상에서 가져오긴 하지만 사유와 관조, 철학과 논리,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들어있어야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수필은 쓰기가 어렵다.
수필은 많은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고 있다. ‘빽’ 없고 돈 없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보듬어주고, 세상에 대해 적의와 원망을 품고 사는 이들의 마음까지 따뜻이 어루만져준다. 하루하루 서커스 하 듯 살아가는 이들의 곁을 지키며, 그들을 안전하게 받아 내기 위해 수필은 오늘도 널찍이 그물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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