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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종교는 아편일까? 신천지가 남긴 교훈

문영석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0-04-15 09:45

 문 영 석 

 종교인류학 박사·은퇴 교수


<1>

갑자기 세상이 정지된 느낌이다. 일상이 사라졌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만나도 경계부터 해야 한다. 국경이 봉쇄되고 항공기가 뜨지 않으며, 관공서와 식당과 술집이 문을 닫고 가게에 생필품이 동이 나는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이처럼 미증유의 대재앙이 세상을 덮고 있는데, 한국에선 신천지라는 한 종교집단이 이 사태의 확산을 몰고 온 진앙지로 매도되었다. 사태가 이런데도 주일예배를 강행하는 일부 교회들 때문에 지금 한국사회에서 종교는 거대한 바이러스 숙주로 떠올랐다.

필자는 토론토대학교에서 종교인류학 박사를 받은 후 평생동안 종교학과 신학을 강의해 왔다. 그러나 종 교학은 신학과는 달리 학문적 접근방법이 다르다. 종교학은 사회과학적 접근을 통해 엄밀하고 객관적인 입장에 서 종교현상을 기술 내지는 분석한다.

이 지면은 특정 교계의 신문이 아니라 일반 독자를 상대로 하는 신문이기 때문에 특정교계의 입장을 대변하 는 이단. 사이비 같은 단어보다는 신종교. 신흥종교로 분류하고 이 험난한 시대에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한 성 찰과 반성을 돕는 지적 근육의 힘을 함양하고자 한다. 힘이 있어야 면역력이 강해지고 이상한 종교적 바이러스들을 퇴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성과 조화되지 못하는 신앙은 너무나 위험하다.

우리는 종교계의 바람직하지 못한 일탈이나 신흥종교들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첫번째 반응은 흔히 사람 이 얼마나 우매하면 그런 집단에 빠져드나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곳에 빠져든 사람들도 거리에서 만나면 일상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는 멀쩡한 사람들이다.

요즘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젊은 청년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데 신천지엔 웬 청년들이 저렇게 많으냐고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2019 11월 신천지 시온기독교선교센터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교인 중 20~30대 비율 이 67%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과연 무슨 비결이 있기에 대학교육을 받고 비판력이 있는 젊은이들이 학업과 직업을 중단하면서까지 여기에 뛰어들어 귀중한 삶을 소비하는 것일까? 신흥종교들의 전형적인 수법은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건드린다. 제도 종교들이 구원이나 해탈을 먼 미래의 막연한 목표로 설정한다면, 신흥 종교들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힐 듯 코앞에 들이민다. 마치 “‘네 얼굴과 의식, 기분 그대로 영원히 산다고 강변해 개인적 자아 소멸의 공포를, 선택받은 그룹 안에 들어가 지배 계급이 될 수 있다는 약속으로 루저로 살아 야 할지 모른다는 사회적 자아 소멸의 두려움을 각각 해결해준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변상욱 기자는 모든 게 리셋(초 기화)되는 심판의 날, 지배계급 14 4,000명 안에 포함되기만 하면 그때까 지 터널을 지나오느라 견뎌야 했던 역경의 시간들이 전부 보상된다는 게 신천지의 유혹이라고 말한다.

신천지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신천지는 우리가 살고 있는 밴쿠버에서도 그들의 활발한 움직임은 여기 저기 감지된다. 정보 검색을 해보면 2017년에 작성된 신천지의 국제 선교부 현황보고서는 미국에 신천 지 8개 지부가 있으며 LA에도 1000 명이 넘는 신도가 있는 것으로 전하고 있다.

특히 2012 7월에는 신천지 총회장 이만희가 미국을 방문하여 뉴욕의 더 타임스 센터와 LA 근교 유명한 크 리스털 케씨드럴(수정교회)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 적이 있다. 캐나다도 토론토에 신천지 교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밴쿠버도 2015년 신천지의 모임이 밴쿠버 시내와 한인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코퀴틀람에 그들의 활약이 포착되고 있다고 현지 크리스천 신문은 전하고 있다. 신천지 12지파는 해외는 깃발을 꽂는 곳이 갖는 곳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해외 포교 경쟁에서 서로 각축하고 있다.

공산주의 철학자인 카를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비판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규정했다. 종교에는 원래 순기능과 역기능이란 측면이 있는데 마르크스는 종교의 역기능만을 부정적 관점에서 논했기에 물의를 일으켰지만 종교에 고통을 잊게 하는 순기능이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이 말이 나온 것은 1844년이고, 당시에 진통제는 아편이 거의 유일했다. 진통제는 원래 마약성분, 즉 아편을 이용한 약제이다. 수술이나 암 환자들의 지독한 고통을 진통제 없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사실 아편의 부작용을 정확히 몰랐던 시기에는 고대 희랍시대 이래 많은 의사들이 불면증, 두통, 현기증, 간질병, 뇌일 혈, 약시, 기관지염, 우울증, 나병, 요석 등에 치료약으로 썼던 일종의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했다. 문제는 아편이 인간의 극심한 고통을 잠시나마 완화시킨다는 점에서는 꼭 필요한 약제 임은 사실이지만, 자칫 오용하여 상습화되면 중독 상태가 되어 정상생활이 불가능해지고 결국 아편의 노예가 된다는 점이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고 통은 비켜가지 않는다. 때론 굉장한 치유의 기적을 체험했다고 해서 소위 간증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일시적 일 뿐 인간을 죽음에로 이끄는 병고에 서 영원히 해방시켜줄 수는 없다. 모 든 사람은 결국 죽는다. 예외는 없다.

그러나 신앙생활이 주는 최대의 특혜는 이처럼 고통을 비켜가게 하진 못 해도 그 고통을 싸워 이길 수 있는 힘 을 준다는 점이다. 맨 정신으로는 차 마 견딜 수 없는 고통도 신앙으로 인 해 의미를 찾고 거뜬히 견디어 내는 것을 보면 신앙은 가히 고통의 묘약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받 고 있는 심각한 영적. 심리적. 육체적 고통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고통을 극 복할 수 있는 기제를 발견한다는 점에서 신앙생활은 여전히 유의미성을 가지게 된다.


<2>

 마약이 의료기관에서 고통의 치유 제로서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마약이 쾌락의 도구가 되어 상인들의 손에 들어가 축재의 수단으로 악용되기 시작하면 그 파급효과는 개인의 운명을 파괴시키기도 하지만 역사상 중 국의 아편전쟁에서 보듯 국가의 운명을 흔들어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달콤한 말로 천국에 대한 환상을 파는 장사치들이 있다. 마치 모르핀처럼 사람을 황홀하 게 만들고 여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 도록 중독 상태로 만들고 급기야 자신의 수중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노 예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비극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실상 종교중독 의 문제이다.

종교 중독(Religious Addiction)은 종교나 기타 종교적 행위에 통제력을 상실할 정도로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마치 술을 기분전환을 위해 한두 잔 마시는 것은 괜찮지만 이것이 습관이 되어 잠시라도 술이 없으면 불안하고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이미 중독 상태에 접어든 것이다.

그런데 종교중독은 주로 신흥종교 집단에만 있고 기존의 제도 종교 안에 는 없는 것일까? 매일 매일 교회에 나 가고 성경공부나 기타 신심 회합에 참석하며 교회 안에서 온갖 단체장이나 소위 중직을 맡은 사람들을 우린 흔히 신앙이 좋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위 신앙이 좋 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상대방을 불편 하게 만들고 공동체를 분열하는데 앞장을 서는 모습을 많이 본다. 특히 교민 사회는 교회나 성당이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욱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흔하게 눈에 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을 보면 실상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중독의 문제 이다.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개인의 심리적 문제들과 얽혀 있다. 우리는 사회생활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해보면 상대방이 공감과 경청을 잘 할 때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고 다시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대화가 매우 불쾌하게 느껴지고 기분이 나 빠져서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심리적 건강의 척도는 바로 이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편안해야 남도 편안하게 만들 수 있다. 전염병만 전염 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도 전염되기 때문이다. 만사를 신앙이라는 척도로 재단하고 입에 성경 말씀을 올리고 살지만 병적인 콤플렉스나 신경증 장애인 환자인 경우가 너무나 많다. 우리 교민사회가 어디 가나 분열과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온갖 송사에 휘말리는 것도 실상은 이런 환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신천지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주범으로 떠오르면서 여론의 집 중적인 포화를 맞았다. 그러나 비난과 공격만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이런 때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원인 을 분석하고 성찰하는 것이 더 성숙 한 태도이다. 그래서 이 기고문의  제를 신천지가 남긴 교훈이라고 부친 것은 일방적 비난에 가세하기 보다 는 차라리 이 사태를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인가를 기술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무슨 사건이 일어나 면 당사자를 공격하는 건 잘 하지만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그 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반성에는 매우 부실했기 때문에 매번 똑같은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약 7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국제종교문제연구소에 따르 면 한국 신흥종교 지도자 중에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만 20여 명, 재림 예수를 자처하는 경우가 50 명이 넘는다.

이 밖에 하느님의 부인이나 보혜사 성령, 혹은 성서 속 인물인 엘리야나 다윗을 자처하는 사람도 있다. 숫자만 보면 자칭 하느님이나 재림 예수라 주장하는 이들의 90% 이상이 한국에 존재하며 성업 중이다.

신천지는 빙산의 일각일 뿐 한국에 는 수백 종의 신흥종교들이 출몰을 거듭하고 있으며, 시대에 발맞추어 끊임 없이 진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직간 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200만 명 정도라고 추산된다.

기독교계 신흥종교들은 처음엔 일 반교회 주변에 머무르며 활동하지만, 교세가 늘고 주류 교회의 배척과 압박 이 시작되면 점차 그 경계를 벗어나 독립한다. 선지자나 성령, 재림 예수 를 자처하다 말년엔 스스로를 신의 반 열에 올려놓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전도관의 박태선은 처음엔 감람 나무 혹은 동방의 의인이라 칭하더니 나중에는 스스로를 천부 즉 하나님이 라 칭하고 교명도 천부교로 바꾸었다.

요즘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왕성하게 지교회를 늘려가는 하나님의 교회도 교주 안상홍을 재림주 또는 성령이라 칭한다. 물론 두 분 다 죽었 다. 한국의 하나님들은 생로병사를 비 껴가지 못한다.


 <3>

심리적 측면에서 본 종교 중독 요인으로는 외적 억압과 현실 도피의 욕구를 들 수 있다. 기도나 묵상 중에 종교적 엑스터시 즉 황홀경을 경험한 이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황홀경은 일시적이지 영구한 황홀경 은 없다. 문제는 이러한 황홀경을 계속 느끼기 위해 또는 우울할 때, 기분을 향상시키거나 전환하기 위해 끊임 없이 종교적 행위를 되풀이하려는 욕구를 절제할 수 없을 때 종교 중독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십자가의 성 요 한은 사탄은 감각으로부터 영에 이르는 통로에 서있다고 갈파했다. 신비체험은 종교적 체험의 원형이기에 종교의 본질이기도 하다. 현학적인 교 리보다는 개인의 직관적 체험을 중시 하는 신비체험은 영적으로 갈증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는 문자 그대로 신비스러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갈증이 심해지면 물의 청탁을 가리지 않는다. 우선 마시려고 한다. 신흥종교의 교주 들은 인간의 이런 약점을 기막히게 잘 포착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하느님 혹은 어떤 궁극적 실재에 대해 논리적이고 사변적인 교리해설을 듣기보다는 차라리 그 실재를 직접 체험하고 싶어 한 다. 인간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신비 주의적 감수성을 각성시키는 것은 이 공허를 채워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기제이다. 그러나 개인의 신비 체험이 학문적인 조명이나 검증이 없이 주관적인 체험에 함몰되어 버리면 여기서 유사종교가 태어난다. 유사종교란 실상 유사 신비체험의 탈선에서 생긴 사생아이다. 이들의 열광적 집회를 보면 참석자들에게 강력한 흥분을 만들어 내는 특정한 기술을 전개한다.

종교적 황홀경에 대한 집착이나 강박적인 종교 행위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리적 상태와 그로부터의 일탈이 나도 피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주위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거나 보았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는데 이런 현상은 개인적 환청. 환시. 환각이지 진정한 신비체험의 본질은 아니다. 진정한 신비체험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모든 지성적작용과 일체의 지적 유희를 단절하고 시각. 청각. 감각을 초월한 직관적인 체험에서 일어나는 몰아적 상태이며 합일의 의식과 절정감 그리고 새로운 경지에 대한 개안이다.

종교중독이 심각해지면 종교적 자폐성 증상을 보인다. 소위 방주 콤플렉스라는 증상인데 자신이 경험한 세상, 자신이 깨달은 것만을 절대화하고 이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기 종교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강변하며 타인에게도 자신의 신앙과 가치관을 강박한다. 신흥종교의 교주들은 보통 신비체험을 통해 자신이 하느님의 힘()을 입어 하느님 혹은 재림예수가 됐기 때문에 죽지 않으며, 자기 종교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원을 독점하고 있다는 폐쇄적 의식은 스스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믿게 하는 선민의식과 동시에 다른 신 앙을 가진 이들을 배척하고 경멸한다. 심지어 거리에서 웃고 지나가는 일반 인들을 보면 구원도 못 받은 것들이 뭐가 좋다고 웃고 있나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논리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종교적 우월감 혹은 반지성적 우월감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며 다른 종교를 타락한 바빌론 혹은 마귀숭배라고 극렬하게 공격하거나 평가절하 한다.

기독교인들은 신천지 문제만 나오면 거기는 이단이고 우리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천지 교인 들의 절대다수가 한때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들이었다. 인간은 원인과 이유를 묻는 존재이다. 실상 신천지의 전도방식이나 전략, 전술들은 거의 대부분 기존 기독교 대형교회들의 전략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래서 이젠 기독교 내부에서부터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 의 옥성득 한국기독교학 교수(목사)는 신천지를 개신교 토양에서 나온 새 품종이라고 규정했다. 옥 교수가 보기에 최근 10년간 신천지의 급성장 은 국내 대형 교회들의 성장 전략을 고스란히 따라 한 결과다.

중국 정부가 우한에서 기독교를 탄압하는 바람에 코로나19가 유행했다는 일부 보수 개신교 측의 해석이 나, 신천지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 마귀가 코로나19로 시험하고 있다는 신 천지 이만희 총회장의 주장은 놀라 울 정도로 닮아 있다고 분석했다. 옥 교수는개신교든 신천지든 근본주의 집단은 적을 만들어 공격하면서 자신 들의 정체성을 유지 한다개신교는 중국이나 공산주의를, 신천지는 마귀를 코로나19와 연결시키는 게 다를 뿐, 배제와 혐오의 언어를 동원해 내부 결속력을 다지는 것에선 똑같다고 지적했다. 개신교계의 원로라 할 수 있는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교인 수를 늘리는 데 집착하고, 개인의 구원과 물질적 축복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지도자를 신격화하고…. 신흥 종교 집단에서 보이는 이런 모습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해 보라. 대형 교회에서 계속 봐 온 모습 아닌가.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교인 들이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4>

 1992년 여름방학기간 동안 잠시 귀국을 했을 때였다. 서울에 들어가니 곳곳에서 종말론 환자들이 플래카드 를 게시하고 전도지를 뿌리며 거리 모퉁이에서 종말이 가까웠다고 고함을 치는 환자들도 있었다.

이장림 목사가 이끄는 다미선교회 라는 단체가 1992 10 28 24시에 신자들이 공중으로 올라가 예수를 영접한다는 황당무계하고 유치찬란한 소위 휴거 이야기가 사회를 혼란하게 있었다. 당시 얼마나 사회를 혼란스럽게 했느냐 하면 한국의 주요 언론기관들이 그해 10 28일 밤이 되자 마포구 성산동 다미선교회 본부 앞 으로 몰려가 중계를 준비하고 있었고 안에서는 흰옷으로 단장한 신자들이 임박한 종말시간을 앞두고 열광적인 찬송과 기도를 하고 있었지만 정작 밤 12시가 되어도 민망하게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건물 밖에서 북 새통을 이루던 군중들의 야유 속에 실 망한 신자들이 10월 하순의 싸늘한 밤 공기 속에서 후줄근한 모습으로 회관 에서 빠져나오던 모습들이 기억난다.

이장림 목사는 당시 외화 등 무려 30억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수사당국에 의해 구속됐지만 교도 소에 들어갔다가 나온 후 아직도 하늘로 올라가시지 않고 서울에서 버젓이 사업을 하고 있다고 신문은 그의 근황을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한국사회에는 90년대에도 먹혔고 현재도 먹혀 들고 앞으로도 먹힐 것이 다. 문제는 한번 이들의 주장대로 종말의 시간이 몇 달 내로 임박했다고 가상해보자. 어차피 곧 천국에 가서 살 건데 지상의 학업이나 직업, 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교주 들은 임박한 종말론으로 긴장을 최고조로 높인 후 지상에서 의미가 없어진 맹신도 들의 재산과 시간을 갈취한다.

그리스도교의 구원이란 인간을 옭아매는 모든 슬픔과 고통, 시련과 분노, 두려움, 죄악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의 권세를 쳐부수고 인류를 해방시켜 주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휴거론 자들의 주장처럼 공중에 올라가 하얀 옷을 입으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런 동화적 세상이 아니라 예언자 이사야는 다가올 유토피아적 이상향의 세계를 새 하늘과 새 땅 즉 신천지라고 묘사했다.

그 해방의 구조는 일차적으로 하느님의 자기 비움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자기 부정적 응답을 통하여, 개인 의 실존과 사회적 통합이라는 사회구원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와 해방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인데도 정작 많은 성직자들이 자유와 해방 대신 순종과 복종, 겸손, 거칠게 말하면 노예 윤리를 강요하고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으면 대뜸 신앙이 없다고 질타한다.

. 구교를 막론하고 끊이지 않는 성직자들의 성추문, 위선, 무례한 태도, 인문학적 소양 부족, 성장지상주의. 중대형 교회들의 세습 같은 문제들 때문에 오늘날 한국 교회는 사회적 공신력을 잃어버렸다. 신용도가 낮 아지니 개신교는 소위 가나안(안나가), 가톨릭은 냉담자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안티 기독교 세력들도 우후죽 순 늘어났다.

기성교회의 약점을 파고든 것이 신흥 종교들이다. 오죽하면 서울대 우종학 교수는 교회가 우민화 정책을 쓰 고 있다며 한국교회의 반지성적 풍토에 대해 일침을 가하였을까. 모든 우매한 독재자들은 똑똑한 백성을 싫 어한다. 왜냐하면 바로 자신의 정체가 단박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간을 옭아매는 종교는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참된 자유와 해방을 주어야 하는 종교 본연의 목적에 어긋난다.

종교 중독자가 스스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기성교회 내부의 힘만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바깥의 시민사회들과 연대하고 개방을 통해 종교 중독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고 공론화 과정 을 통해 총체적 문제 해결의 길을 모 색해야 한다. 일방적이며 단선적인 거부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날 공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에 사교육이 번창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 하고 있다. 그러나 공교육이 왜 부실 해졌는가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전에는 사교육의 번창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신흥종교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홍수처럼 밀려오는 상업화된 갖가지 종교적 상품들의 범람은 현대인들의 영적 갈증과 위기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자신의 신자들이 영적으로 익사당하지 않기 위해 더욱더 깊은 신앙적 성숙과 혜안을 지닐 수 있도록 새로운 시대의 진정한 영성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끝>


*문영석 교수는 토론토대학교에서 종교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 종교학과,서강대 신학대학원 등에서 종교학과 신학을 강의해왔으며, 

강남대 국제대학 학장을 역임하면서 캐나다학과도 국내최초로 개설하였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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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지역을 우리는 섬이라 말한다. 어느 곳은 썰물이면 육지와 맞닿아 있다가 밀물 때면 수면위에 떠 있는 섬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망망대해에 고고히 떠 있는 섬을 외로움과 고독에 비유하는가 하면 인고를 견디는 삶을 대변하기도 한다. 물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는 섬처럼 떠 있고 고립된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수많은 친구들이 있다고 하면서도 혼자가 되면 금방 외롭다하는 모습이 그렇고, 사과밭 한가운데...
자명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 은은한 향기가 감돌고 있다. 무슨 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싫지 않은 냄새, 내 앞서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흔적일 것 같다.나는 향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강렬한 향은 더욱 그렇다. 화장품도 향이 짙은 것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수수한 것을 선호한다. 사실 냄새란 무엇이건 그 자체만으로도 나기 마련이다. 미미한 것은 미미한 대로, 짙은 것은 짙은 대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스치기만...
최원현
사순절의 약속 2024.04.02 (화)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 언약의 증거이니라만물이 소생 하는 봄의 문턱에서텅 빈 가지마다 약속이나 한 듯꽃망울이 송알 송알 맺히게 하는 일그 또한 언약의 증거일 터몸과 마음이 움츠려 들 무렵사순절을 맞이하여 고난을 당하신주님을 잠시 생각해봅니다40일 광야에서 금식하시며십자가를 짊어지고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담장 너머 새 한 마리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을 머물다가봄 소식이라도 가져오려는...
유우영
사람이 사람을 피한다. 오고 가는 사람들끼리 나누던 정다운 인사는 사라졌다. 맞은 편에서 사람이 오면 ‘누가 먼저 비껴서나’ 기 싸움을 한다. 대부분 옹고집으로 뭉친 의지(?)의 한국인이 이긴다. 그러나 덩치가 검은 곰만한 사람이 전방 1미터까지 접근하면서도 비껴 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도리 없이 내가 양보한다. 그리고는 중얼거린다. 이것 봐라. 젊은 놈이 예의도...
이원배
아프리카 대자연의 푸른 초원과 그 속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온갖 야생 동물들과 그들의 사냥 장면을 지프를 타고 관찰하는 사파리 여행은 아프리카의 상징이다. 아프리카에는 남아공의 크루그, 나미비아의 에토샤, 오카방고 델타,...
정해영
푸른 달빛이 앞마당에 내려앉은 추운 겨울이에요. 턱밑에 앞발을 모은 프린스는 은별이 누나와 헤어지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비행기를 타기 전 누나는 나를 꼭 껴안고 약속했었지, 우린 다시 만날 거라고.’프린스는 며칠 전부터 시골 은별이 누나 외할머니댁에서 살게 됐어요. 오래된 한옥 마루 밑에서 살아야 하는 믿지 못할 일이 시작됐지요. 함께 살게 된 바우는...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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